앞가슴: A breast

깃집에서의 일이다. 어설프게 젓가락을 정리하려다 나의 팔꿈치가 그만 절친한 친우의 앞가슴을 건드렸다. 타들은 눈치 채지 못하였지만 나와 그는 동시에 행동이 멎었으니 그이 또한 자신의 앞가슴에 내 팔꿈치가 닿음을 느낀 것이다. 동물적으로 느낀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하던 것을 마무리했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사과하지 못했다. 그것은 함께 앉은 이들에게 이러한 사건이 방금 발생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것은 타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며, 친우에게 제2의 상처를 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어찌 사과해야 할지,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추후에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깃불이 붙는 내내 고민이다.

허락되지 않은 부위가 우연히 닿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적잖이 당황한다. 나는 이것이 진화가 선물해 준 생존의 본능인지, 아니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생식의 의식을 감각이 먼저 들깨웠기 때문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구전으로 전해 들은 바로는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이후부터, 우리는 민감한 부위를 가리게 되었고, 그것을 내내 보호하다가 허락된 사람이 나타나면 그 대상에게만 조심스럽게 몸의 부위 부위를 내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부끄러움에 대한 설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곳에 팔꿈치가 닿고 난 이후, 부끄러움을 느끼는 연유를 모른다. 본능적 감각이 자극된 상황과 인지의 부조화. 그 결과로 따라붙는 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것을 그저 사실 관계로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성장기 나의 성적 호기심은 여타 남아들과 다를 바 없어서, 버스에 앉은 여학우들의 어깨와 치맛자락을 집요하게 숭배했다. 허리를 굽어 물건을 집는 여성의 가슴 사이가 잡아끄는 마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것이 본능이라는 것이며, 나와 다른 신체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느낀 것은 열 세 살 무렵부터였다. 나는 그것이 나쁘다, 무례하다, 혹은 관능적이다 학습할 겨를보다 빨리, 그것을 본능적으로 탐하고 있었다. 그것은 의식적 산물이 아니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혼이 빠져’ 있었다. 이것은 무궁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 없는 욕구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의 근본이 이성에 있지 않다고 나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관음과 함께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나의 신체 반응 때문이다. 이것은 의식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강도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연유를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아마 내게 지금 이것에 대하여 설명하라 한다면, 나는 ‘본능’이라는 두 음절 단어로 이것을 일축할 수밖에 없다. 본능. 그것은 설명할 길 없이 일어나는 동물의 충동적 발생을 단 한 방에 정리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단어 앞에 인류는 아직 어떠한 공통 근거도, 이유도 합의치 못했다. 그저 이것을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학설만 존재할 뿐이다. 왜 이러저러한 호르몬이 폭발하듯 분비되는지, 목은 왜 그렇게 타는지, 어둡지도 않은데 동공은 어찌 그리 커지는지, 인류는 아직 서명이나 학설로 합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떤 호르몬이 어디서 나와 표적 기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설명 말고, 왜 호르몬이 폭발하듯 뿜어 나오는가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를 겪는 인류는 이것을 절제하는데 특히 약한 면모가 있다. 아마도 성적 본능의 절제라는 것을 이제 막 시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옛날 영화가 되어버린 <몽정기>의 어설픈 에로티시즘처럼, 그들은 그것의 끝이 어떠한 모양인지도 모른 채. 일단 관음 하는 그 시선까지는 열렬히, 그리고 충실하게(충성 바쳐) 그것을 숭배한다.

소년들의 호기심은 대부분 그 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상상은 거의 대부분 두리뭉실하게 선이 그인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굴곡, 둥글고 부드럽게 모인 여성의 살결을 제멋대로, 그리고 쉬지 않고 상상한다. 그렇지만 소년들은 아직 때가 이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거나, 혹은 얼마나 성숙하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소년들에게 그것은 블랙박스에 담긴 상자다. 이것은 감히 열어보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들고 다녀야 하는 가족의 택배박스다.

소년들은 판타지가 구체화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이 눈 앞에 펼쳐진 이후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이 미지의 영역이며, ‘처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뇌는 언뜻언뜻 보이는 시각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하느라 이미 포화상태다) 때문에 그 시절 소년들이 하는 성적인 무엇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황스럽고 어설프게 짝 없다. 앞에 있는 정보도 제대로 해석지 못하는데, 그 이후, 이상을 어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그들의 성적 상상이 어설픈 에로티시즘에 그친다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무릎이 시뻘겋게 깨지면서도 씩씩대며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소년들은 자신과 다른 형상을 지닌 인류의 존재를, 그 속을 지구 끝까지 궁금해한다. 열렬히 자료를 찾는다. 뚫어져라 응시한다. 이것은 풀리지 않는 옷고름 속 형상에 대한 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적 요소라는 것이 청소년기에 풀리지 않는 난제 중에 가장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호기심은 일부 소년들 사이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되어 줄타기를 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어설픈 줄타기는 추락과 욱여쥠 그 사이에 있듯, 하등 쓸모없는 관음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불리한 사회적 입지를 거부하기 위한 몸부림과 대척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년의 어설픈 호기심은 꾸준한 교육과 절제, 그리고 어설픈 행동이 한데 어우러진 기이한 모습의 조화다. 부끄러움이 본능과 만나 바람직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의 분석은 여전히 우리의 부끄러움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하진 못했다. 나는 이제 고기의 반을 뭉텅 집어 뒤집고 있다.

스무 살이 갓 넘기 시작할 적, 갓 사귀기 시작한 친구가 있다. 하루는 그녀와 포옹에 신호가 온 적이 있다. 나는 당황했고, 허리춤을 뒤로 빼고 자연스러운 척했다. 나의 본능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상대가 그것을 느끼게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자신도 살짝 허리춤을 뒤로 옮겨 아의 민망함을 자신의 마음 주머니에 조금 덜어주었다.

하루는 그녀와 식사를 마치고 평행하게 앉았는데, 그분의 시선이 흔들흔들했다. 불안한 마음에 그 시선을 타고 내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내 바지춤을 향해 있었다. 아뿔싸. 지퍼가 열려있었다. 갓 스무 살에 들어선 어여쁜 숙녀 앞에서 그것은 검은 입을 쩌억 하고 벌리고 있었다. 끝도 모르도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 또한 한참을 당황스러워했다. 나야 어디까지나 본인의 신체이고, 그것을 신사답지 못하게 간수했으니 그에 대한 끝없는 부끄러움이 악악하고 복받친다 하여도, 그의 이성친구 된 입장에서는 그 광경이 어떠한 의도된 행동, 혹은 암시(?), 또는 실수일지 분간을 못 하면서 급하게 밀려 올라오는 민망함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말다 하였다.

그때 그 이가 지금까지도 아의 여자 친구라 하면, 허허 또는 쿡쿡대며 나의 부주의함을 비웃을 법하겠다. 그러나 그것의 충격은 스물 하나, 둘에겐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둘은 그것을 이후로 겸연쩍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모르는 사람이 이제는 되어버렸다.

이렇듯 다른 성별을 가진 이의 은밀한 부위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선 충격과 두려움으로 다가와 대상을 바짝 정신 차리도록 만들고, 그 바짝 곤두선 긴장감만큼이나 모든 판단력을 흐릿하게 만든다.

The naked Maja by Goya.jpg
옷을 벗은 마하(1797), 프란시스코 데 고야

그래서 옛 신흥 부자들은 자신의 은밀하면서도 그 몽롱한 유혹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벌거벗은 성화(성스러운 그림)를 부탁하여 집안 가장 깊숙한 곳에 두어 신과의 교류를 빌미로 그 육체를 관음 하였나 싶다. 스페인의 어떤 화가는 성서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나신(맨몸)을 옷을 입혔다 벗었다 하는 그림을 그려서 종교재판에도 불려 간 바 있다. 타성의 몸을 탐하기 위해 자신의 목을 뎅겅 걸고, 재판까지 갈 위험을 감수하다니!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마력을 가진 음욕의 연유일랑 세상의 기밀인가 싶다. 이렇게 육중한 금단의 상잣속을 참으로 명쾌하게 알려주는 서적이나 정보 하나 없이 스물 하고도 한 세기가 훌쩍 지났으니 말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둔덕에서 자신의 성기를 훤히 드러내고 다니던 그때. 둘은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정령 몰랐던 것일까? 오늘의 나처럼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뭇가지를 꺾다 아담의 팔꿈치가 이브의 앞가슴을 스치기라도 했을 그때. 둘은 가슴에서 어깨나 등짝을 툭 치는 것과 같은 감각을 느낀 것일까? 사건 이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과실을 나누어 먹었을까? 한참을 생각한들 뾰족한 답이 나올 리 없다. 나는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뱀이 가르쳐 주었다는 부끄러움에 순종하여 친우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처라고는 애먼 고기나 헤집어 친우들 그릇에 툭툭 놓았다.

이런 고민에 신경 쓰느라 친우들의 대화는 시답잖은 대답이 되어 나갔다. 어찌 시간을 보냈는지 어느새 훌쩍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무리와 인사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갈라진 골목으로 그들을 보내고 원래 길보다 반 호만큼 더 큰 원을 그려 걸었다. 나는 이제 나의 관음을 돌아보고 있다.

생각해보니 관음의 추상이 하나 더 있다. 때는 스물셋. 정말 좋아했던 소개팅녀의 여름 치마다. 그녀의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과 밝은 미소, 그리고 햇살처럼 퍼지는 플레어스커트가 뇌리에 아른했다. 당시 나는 그녀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우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 그 소리와 다르게 무게 있는 언행. 그리고 그녀의 무릎과 그 위에 살포시 얹힌 치맛자락이었다. 우리는 카페를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계단은 두 사람이 평행하게 오르내리기엔 비좁았다. 나는 배운 매너로 그녀 뒤에 섰고, 이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로 층계를 타는 그녀의 다릿 그림자가 일렁였다. 봄날만큼이나 아릿한 그녀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그녀의 걸음에 맞춰 하늘하늘 함께 계단을 탔다.

나는 곧 차라리 앞서 걸을걸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은 후회였다. 우리는 그렇게 이 분여의 시간을 나란히 걸었다. 그러나 빠르게 생기는 후회와 함께, 반대방향으로 질주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곧 나의 시선이었다. 나는 민망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내 눈동 자위는 갈등하듯 그녀의 그림자와 다리 사이를 오갔다.

순간 자신이 어리고 한심하다. 에잇 하고 눈 쌓인 둔덕을 발로 툭 쳤다. 성기게 얽힌 눈 뭉치가 내 잡념과 함께 팍 하고 퍼졌다. 나는 고개 털었다. 그랬다. 나는 그녀를 참 좋아했다. 그럼에도 나란 인간은 가자미 눈을 하고 그녀 다리 사이로 곁눈질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어렸다.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어색하고 미숙했던 나의 언행과 행동에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순수한 좋아함 위에 셀로판지처럼 덕지덕지 불순한 색을 끼워 넣었다. 참으로 알 길 없는 놈이다. 그러나 그놈이 자라서 지금 서 있는 이가 나였다. 나는 당시 그녀를 누구보다 순수하게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의 춤추듯 오르는 다리를 탐하던 이상한 자였다.

이러한 생각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면 변태로 몰린들 할 말은 없겠으나, 나는 이유나 알고 변태이고 싶은 궁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알 길 없는 충동에 매질당하고,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운 좋게 들키지 않은 게 지금의 나인가 싶다. 여기까지 사고가 그치니,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아서 이렇게 멀쩡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무색하게 나와 마주한 신촌의 수많은 얼굴이, 그들의 회색 표정이 정상인 게다.

아, 그렇구나. 내 충동이 문제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고개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것은 오늘 겪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이다. 모가지는 이제 어깨에서 빠져 땅으로 나뒹굴 것만 같다. 아스팔트 알갱이가 이렇게 두꺼웠던가 싶다. 갑자기 코끝이 근질하다 사르르 녹는 감각을 느꼈다. 진눈깨비다. 그치는가 했던 눈이 다시 하늘 위에 나리고 있다. 나는 목의 근육을 다시 세우고는 굴뚝마냥 큰 숨을 불었다. 찔러 넣은 주머니서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을 휘적하여 친우의 연락처를 더듬었다. 아까는 미안했다는 목적어 없는 일곱 글자를 그녀의 휴대폰에 들어 놓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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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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