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1): 미인은 여성에 한정된 단어가 아니며, 남성의 소비 대상은 더욱 아니다

울미술관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다>와 함께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과 <백성의 그림展 ‘대호’>를 전시 중이다. 본 기획은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전시로, ‘미인美人’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

  • 전시기간: 2015년 10월 23일 ~ 2016년 3월 20일
  • 전시장소: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 참여작가:

김기창, 김덕용, 김명희, 김원숙, 김인승, 김호걸, 김흥수, 문학진, 박영선, 박항률, 손수광, 이봉상, 이숙자, 이원희, 이인성, 임직순, 정명조, 천경자,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조지 콘도  (George Condo), 줄리안 오피  (Julian Opie), 펑정지에 (Feng Zhengjie)

‘미인(美人)’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을 의미하며,
주로 얼굴이나 몸매가 아름다운 여자를 이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온 미인은 외모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내용을 반영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사회나 매스컴에서 외모의 경쟁력이 강조되고 있는 현시대에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미는 우리가 신에 대한 의문을 조금도 갖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훌륭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본디 미인美人이라는 한자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미인’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선이 아름다운 여성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은 미술계에서부터 시작되어 매스미디어로 이어지는 형상(形象)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예로부터 미술계에서는 여성의 몸을 신의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으며, 작품의 표현 방식이나 구도는 다분히 남성 위주였다. 체모體毛가 없이 그려지는 여성의 몸은 남성적 시각에서 그려진 미적 표현의 대표적인 예다.

조선미인보감(祖先美人寶鑑)
전시실 첫머리에는 조선미인보감(祖先美人寶鑑)이 전시되어 있다. 보감에는 당시 미인들의 성격이나 취미, 사는 곳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얼핏 보면 아름다움을 정리해 놓은 인명사전 같지만, 실은 조선시대 유명한 기생들의 명부가 적혀있는 주소록이다. 미인이란 단어가 조선에서 어떠한 이미지로 소비되었는지 드러난다. 조선미인도감 바로 오른쪽에는 현대 아이돌의 앨범 재킷이 있다. 어떤 아이돌일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제 시선을 조금 옮겨보면, 박항률 화백의 <저 너머에>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저 너머에, 2009, 캔버스에 아크릴, 181.8×227.3cm

박항률 화백은 세종대 서양화가 교수다. 그의 후기 작품은 소녀가 주된 주제로 등장하는데, 이 소녀는 화백의 누이다. 누이는 몸이 약해서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 박항률 화백은 누이를 ‘문학소녀’로 회상한다. 그의 회고로 구현되는 소녀의 이미지는 몽환적이고 신비롭다. 가까이서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한 공간에 다채로운 색깔이 발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프로타주(frottage) 기법으로 대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로타주 기법은 질감이 있는 표면 위에 종이를 얹고 탁본을 뜨는 방식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화백은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을 켜켜이 누적하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주제를 드러낸다.

저 너머에, 2009, 캔버스에 아크릴, 181.8×227.3cm

아래는 임직순 화백의 작품이다. 임직순 화백은 아카데미즘 화가다. (아카데미즘은 순수하게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풍을 말한다) 임직순 화백에게 진리는 ‘소녀와 꽃’이다. 화백은 순수한 마음으로 소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정감 있는 색채의 사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백의 손으로 나타난 소녀의 복식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 할 수 있다. 화백의 미적 수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소녀의 볼에 녹색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표현이나 명암 대비는 임직순 화백만의 독특한 화풍이다.

꽃과 여인, 1984, 캔버스에 유채, 81.5×69.5cm, 임직순

소녀, 1986, 캔버스에 유채, 임직순
결-하루, 2009, 나무에 자개, 혼합재료, 108x158cm, 김덕용

김덕용 작가는 캔버스에 작품을 표현하는 대신, 소나무 문 위에 주제를 표현한다. 문을 깎고, 사포로 마감한 뒤 다시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의 특징은 자개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자개는 그의 작품에 은근하게 스며있다. 빛의 흐름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자개는 시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점정(點睛)이다.

결-하루, 2009, 나무에 자개, 혼합재료, 108x158cm, 김덕용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다는 여인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와 도라 마르가 교제할 당시 피카소는 네 번째 연인과 이별하지 않은 상태였다.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다는 여인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다. 도라 마르는 사진가였다. 문헌에 의하면 도라 마르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진 않았지만 지성이 빼어난 여성이었다고 한다. 다소 덩그러니 방치된 듯하지만 엄연한 진품이다.

피카소는 생전 일곱 명의 공식 연인이 있었다고 한다. 도라 마르는 다섯 번째 (공식) 연인이다. 작품 속 도라 마르는 무뚝뚝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피카소와 도라 마르가 교제할 당시 피카소는 네 번째 연인과 이별하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그녀는 피카소에게 자주 신경질적으로 굴었는데, 이런 모습이 작품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도라 마르는 그의 명작 <게르니카>에서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피카소와 그의 다섯 번째 여인 도라 마르

여성들의 육체와 나신(裸身, 알몸)이 주로 등장하는 전시에서 샤갈의 <부케>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부케, 1982, 캔버스에 유채, 81x65cm, 샤갈

샤갈은 러시아 출신 화가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샤갈은 ‘꽃’을 통해 아름다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샤갈의 작품에는 꽃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작품 <부케>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벨라’를 생각하며 그린 것이다. 샤갈이 살던 당시의 러시아는 가부장적이었다. 부부가 그 날의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에서조차 신부는 숨어 있어야 했다. 러시아의 결혼식은 남성들의 연회였다. 이런 샤갈이 프랑스로 망명을 온 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프랑스의 결혼 문화였다.

신부가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과 그런 주인공이 드는 부케는 샤갈에게 아내 벨라의 부재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샤갈은 일찍 세상을 떠난 벨라를 꽃으로, 그리고 부케로 승화시켰다. 그가 벨라에게 해 주지 못 했던 모든 아쉬움이 꽃으로 피어난다.

부케, 1982, 캔버스에 유채, 81x65cm, 샤갈

개인적으론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의 작품은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가버린 감이 있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철없던 시절, ‘비싼 그림 =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줄리안 오피를 알고 있다는 것은 필자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알아선 안 되는 보물을 혼자 간직하는 기분이었다. 지금에야 조금 순화된 안목을 갖게 됐지만, 과거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어설픈 지적 오만을 은근히 드러내던 필자의 초상마저 순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잡한 요소를 제외하고 단순한 선으로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오피의 화풍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했다. 이 설렘이 작품의 감상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날의 초상 때문인지, 아니면 여전히 비싼 그림이라는 금전적 이유 때문인지는 이제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말린, 여학생Malin, Schoolgirl, 2003, Vinyl on wooden strecher, 192x160cm, 줄리안 오피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푸른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보인다. 조지 콘도는 뉴햄프셔 주에서 태어났으나(1957) 곧 뉴욕으로 옮겨와 키스 해링, 장 미셀 바스키아와 친분을 나눈다. 그의 작품은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즈와 같은 거장들의 테크닉을 가져와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인물은 괴기스럽다. 피카소의 그것과는 다소 상이하다. 인물을 표현하는 요소는 대칭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색과 형태의 차용으로 얼굴을 완성한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소녀, 2007, Oil on Canvas, 127.4×106.7cm, 조지콘도

흉물스러워 보이는 작품의 제목에는 ‘소녀少女’가 들어있다. 소녀라는 문자가 주는 이미지 때문일까. 어딘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진다. 크기가 다른 도형들이 마치 가베 놀이를 하는 듯 묘하게 비례가 맞아 들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진다. 크기가 다른 도형들은 마치 가베 놀이를 하는 듯 묘하게 비례가 맞아 떨어진다.

컬렉션은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자유로워진 역사가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과 같은 여성 화가의 작품이 도드라지는 이유다. 여성 화가들의 작품은 이번 전시의 주제의식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마치 이들의 공통된 주제의식을 끌어내기 위해서 남성 화가의 미인 그림이 배치된 것 같다. 작품은 관객들에게 ‘소비되던 여성’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미인美人의 기준이 재정립되는 순간이다.

음악 하는 소녀, 1924, Oil on Canvas, 72.4×92.2cm, 마리 로랑생

마리 로랑생은 20세기 화가다. 당시 사회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용인하기 시작했지만 그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문학가로서, 화가로서, 그리고 동성애자로서 당당한 삶을 살았다. 로랑생의 그림에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표현하는 소녀의 모습은 그 선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의 색 활용과는 달리, 색色 간의 경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녀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나약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관용적이고 너그러울 것만 같다. ‘참는 것’과 관용은 다르다. 참는 것은 약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단방향의 여유다. 남성 화가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여성의 관용을 로랑생의 작품에선 확인할 수 있다. 그녀의 ‘소녀들’이 아름다운 이유다.

미인美人, 2편에서는 <한국의 미적 기준>과 <아름다움에 대한 해설>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

부디 본 전시의 가치와 즐거움이 읽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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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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