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2): 여성 화가가 그린 미인과 남성 화가가 표현한 미인, 그 간극에 대하여

울미술관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다>와 함께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과 <백성의 그림展 ‘대호’>를 전시 중이다. 본 기획은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전시로, ‘미인美人’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

  • 한국의 미인 편
  • 전시기간: 2015년 10월 23일 ~ 2016년 3월 20일
  • 전시장소: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이전 미인의 방이 서양의 미美를 형상화하고 표현한 결과물을 감상하는 방이었다면, 이번 방과 다음 방은 한국의 미인에 대해서 탐구하고, 본 전시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인을 그린 그림 하면 흔히 여체와 나신(裸身)을 떠올린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여성의 누드를 그린 화가들이 있다. 그러나 서양 화가들과 달리, 동양 화가들은 독특한 표현 방식과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에서 느껴지는 바가 다른 것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부, 1942, 이인성

이인성 화가가 그린 <나부>는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 시기의 누드화는 다분히 남성적 시각의 구성을 갖춘 경우가 많다. 여성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나, 전체를 조망하듯 굽어보는 구도가 그렇다. 그러나 <나부>의 화가는 여성을 아래서 위로 우러러 관찰하고 있다. 풍성한 가슴의 크기만큼이나 도드라지는 손의 방향과 크기는 어딘가 모르게 든든하다. 피사체의 외모는 향토적이고 머리는 똑단발로 남성적이다. 화가는 일제시대의 횡포를 이겨내는 강인한 여성을 그리고자 했다. 그가 그린 아름다운 사람은 힘차고 단단한 여성의 이미지인 것이다.

누드, 1981, 캔버스에 유채, 60.6x50cm, 권옥연

권옥연의 미인은 다소곳하고 그 행동이 조심스럽다. 누드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자신의 전신을 틀거나 팔꿈치로 가리는 행위를 통해 비밀스럽게 노출한다.

누드, 1955, 캔버스에 유채, 160×127.5cm, 박영선

박영선의 <누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들의 집합이고 또 다른 스토리텔링이다. 피사체의 배경에는 화가가 현재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창가 쪽에는 그가 요즘 수집에 빠져 있는 도자기의 형상이 보인다. 화가 본인이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들의 집합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작품 가운데 있는 전라의 여인은 작가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동치다.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The Gift Series, 2002, 김원숙

김원숙 화가에게 성性은 선물이다. 는 성서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성서에 의하면 성은 하나님께서 결혼한 남녀에게 성숙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주신 선물이다. 베델성서에 의하면 성性은 하나님이 부부에게 주는 선물이며 창피하게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완벽한 결합과 이를 위한 둥근 몸짓이 김원숙에겐 미인의 형상이다. 여기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 5:18-19)

누드, 1991, 캔버스에 유채, 59x71cm, 이원희

천경자 화백의 <초원 II> (아래)는 한국 미술품 거래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 작품은 한국 여류 화가 작품 경매 최고가(12억 원)를 기록했다. 작품의 가격이 걸작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감상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다.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격이 높은지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초원 II, 1978, 종이에 색채, 104x129cm, 천경자

천경자 화백은 풍족한 경제적 환경과는 달리 늘 불안에 시달렸다. 동생은 폐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첫 번째 남편과는 결별했다. 두 번째 남편(김남중)도 그녀에겐 애증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김남중)는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고,
주변에 항상 여성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자괴감과 그의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천경자는 그를 기다리면서도 결별을 결심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화백의 <초원 II>에는 울다가 지쳐 코끼리 등 위에서 잠든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천경자 화백 자신이다. 화백은 여행을 사랑했다. 아프리카를 다녀오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초원을 그렸다. 수묵담채임에도 물 그림 특유의 일렁임이 없다. 이는 50회가 넘도록 덧칠하고 말리는 과정의 반복 때문이다. 선생은 그렇게 정성스럽게 활류하는 생명과 함께 자신의 절망과 좌절을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

우리는 미인의 정의를 재고하기 위해서 작품 앞을 서성인다. 찰나의 깨달음, 그 행운과도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누드의 방이 끝나고 파란색 방이 보인다. 반쯤 개방된 벽 사이로 빨간색 방이 보인다. 파란색과 빨간색 방은 각각 남과 여를 상징한다. 화가들의 성별을 나누어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전시해 놓았다. 남성이 표현한 미인, 여성의 이미지와 여성 스스로가 표현한 자성自性이 만나는 방이다. 이런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미술관장, 큐레이터의 안목과 컬렉터의 작품 보유 스펙트럼에 탄성이 난다. 감상자들은 아마도 두 방 사이를 오가며 오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미인의 정의를 재고하기 위해서 작품 앞을 서성인다. 찰나의 깨달음, 그 행운과도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원하면서.

여심, 1955, 캔버스에 유채, 44.5x38cm, 김인승

화실, 1982, 캔버스에 유채, 임직순

파란 방의 작품은 모두 다소곳한 여성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과장하자면 다소 순응적으로 보인다 표현할 수도 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여성들의 눈빛은 공손하다.

화실, 1982, 캔버스에 유채, 임직순

이제 시선을 옮겨보자. 남성의 방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김흥수 화백의 <미의 심판>이다.

미의 심판, 1982, 캔버스에 유채, 170x331cm, 김흥수

김흥수 화백은 ‘한국의 피카소’라 불린다. 그는 하모니즘이라는 조형 기법의 창시자이자. 서로 대비되는 색을 한 작품 안에서 조화롭게 사용한다. 직선과 곡선의 자유로운 변용 역시 그의 특징이다. <미의 심판>에서는 붉은색과 녹색을 조화롭게 녹여냈다. 사각형의 배경 안을 채우는 여신들의 곡선도 자연스럽다. 그의 작품이 곧 하모니즘이다.

미의 심판, 1982, 캔버스에 유채, 170x331cm, 김흥수

<미의 심판>은 파리스의 심판이 주제다. 파리스의 심판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부분으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움을 놓고 경합하는 이야기다.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새겨진 황금 사과를 놓고 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겨룬다. 화백은 지덕체(智德體)의 경합을 하모니로 묶었다. 양립 불가능한 존재(주제의식과 표현 방식) 두 가지가 병치하는 세계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정(Sentiment), 1987, 혼합재료, 131x245cm, 김흥수

흑과 백, 적색과 녹색, 그리고 직선과 곡선이 하나의 주제의식을 향해 조화롭게 내달리고 있다.


이제 필자는 빨간 방 앞에 선다. 빨간 방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천경자 선생을 만난다.

청춘, 1973, 종이에 석채, 채색, 57x38cm, 천경자

내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는 유독 꽃이 자주 등장한다. 화백은 생전 꽃을 사랑했다. 만약 자신에게 천국에 단 한 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면 ‘꽃’을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다. 그녀의 화실에는 꽃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꽃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화사한 꽃과 의상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성말라 있다.

여인, 1974, 종이에 잉크, 20.5×15.2cm, 천경자
여인, 1977, 종이에 채색, 51x43cm, 천경자

<청춘>, <여인>, <고孤>는 천경자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에서 그녀는 동공이 텅 빈 존재로 등장한다. 머리에 꽃을 얹고 화려한 의상을 입어봐도 도무지 감추어지지 않는 내면의 쓸쓸함이 드러난다. 아래 작품 <고孤>는 그 닉네임이 ‘미스 고’일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고(孤)의 한자는 ‘쓸쓸할 고’다. 편한 말로 ‘미스 쓸쓸함’이다.

고孤, 1974, 종이에 석채, 채색, 38.5×25.3cm, 천경자

청혼, 1989, 종이에 채색, 40x31cm, 천경자

김명희 화백의 <김치 담그는 날>은 그 표현이 재미있다. (아래) 화가는 칠판 위에 김치 담그는 날을 모사했다. 사진에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녀의 머리 양쪽으로 흰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녀의 왼편에는 버들가지가 바람 잘날 없이 몸을 흔든다. 작품 속 여성은 조용히 야채를 따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은 아우성이다. 묵묵히 가사를 하는 여성의 복잡하고 가시지 않는 불안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김치 담그는 날, 2000, 칠판에 오일 파스텔, LCD 모니터, 120x240cm, 김명희

복잡하고 불안한 사람의 광경이 여성 작가들이 표현하는 미美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김원숙 화백의 는 사랑받는 여성의 마음속에서 주체적으로 터져나는 사랑의 마음이 꽃으로 나타났다. 사랑에 푹 빠져 행복의 춤을 추는 여인. 흥에 겨워 발끝을 말아 올린 여인의 자태가 따뜻하다.

Dance of the Beloved, 2002, 캔버스에 아크릴, 203x148cm, 김원숙

한 편의 영화 같았던 기승전결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자리에는 시대를 풍미하는 미인들이 이어진다. 한효주, 메릴린 먼로, 소피 마르소와 같은 미인들이 우리를 지난다.

전시의 끝에는 거울이 있다. 거울 속 대상의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미인이라는 메시지리라.

미술관 앞에서 7016이나 110A 번 버스를 타면, 버스는 종로를 스쳐 용산을 지난다. 차가운 한파를 뚫고 슬슬 봄기운이 느껴진다. 서울에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서울미술관은 연인,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색다른 면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도심에서 단 10분 거리만으로 똑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가방을 가볍게 비우고 서울미술관을 향해 보자. 미술에 자신이 없다면 미술관 꼭대기에 있는 석파정에 머물러도 좋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차가운 회색도시 같던 서울이 새삼 온화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도심에서 단 10분 거리만으로 서울에서 똑 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가방을 가볍게 비우고 서울미술관을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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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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