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 | 色卽是空, 313 Art Project 박선기전

Reflection | 色卽是空

박선기

2016.03.10 – 04.08 (전시종료)


선기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불교의 색즉시공을 읽는 것 같다. 그의 전시는 반야심경 구절인 색즉시공에서 시(時, 시간)를 시(是 이것)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이다. 불교에서 색즉시공은 “색이 곧 공이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불가의 색즉시공은 공즉시색과 함께 짝을 이룬다. 이 구절은 공간적 무아의 개념을 가르친다.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색(色), 그러니까 물질적 존재는 바로 이 순간 여지없는 공(空, 빈 공간)이라는 뜻이다.

공이란 연기하는 것이며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아(無我)다. 결국 물질이란 미래에 인연이 다하면 스러질 것이기에,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미래에 스러질 공의 표현이다. 앞서 불가의 색즉시공은 공즉시색과 짝을 이룬다고 했다. 이는 앞의 말을 어순을 바꾸어 반복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데, 색즉시공이 사물을 가루로 환원하는 표현이라면 공즉시색은 빈 공간을 유로 만들 수 있다는 강한 긍정이다. 논리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색즉시공이 충분조건임과 동시에 약한 필요조건이었다면, 공즉시색이 옆에 놓임으로써 공과 색은 필요충분조건의 완성인 것이다.

박석기가 만약 색즉시공을 불가에서 가져왔다면, 그것의 시(時)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본인의 작품을 지칭하는 의미로서의 시(是, 이것)로 작품을 완성했다 할 수 있다. 그는 시점에 따라 사라질 것만 같다가도 다시 눈에 들어오고, 눈에 들었다가도 점이 되어 소실될 것만 같은 작품들을 완성한다. 박석기는 색의 소실과 등장의 반복으로 사리자(舍利子, 지혜롭지만 대지혜를 탐구하는 인물, 관객)에게 자신의 법을 설한다.

Reflection 20160301, Coloring on mirror, nylon threads, etc. 박석기, @도산대로 313 아트 프로젝트
313 아트 프로젝트
Reflection 20160301, Coloring on mirror, nylon threads, etc. 박석기

전면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은 뒷면이 채색된 수많은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가 거대한 거울을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작업을 하듯, 작가는 기존의 정형화된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거울을 깨뜨리고, 이것의 불규칙적이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파편들로 작품을 만든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공기와 바람, 그리고 유리창을 통과해 거울과 마주하는 태양광 등의 주변 요소들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요소들의 균형적인 조합을 통해 공간 내 찬란한 빛과 색의 향연을 선사한다.

갤러리 내에서 바라본 리플렉션과 바깥 공간

작품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감상자와 바깥 풍경과 함께 완성된다. 깨어진 색 조각 사이로 비치는 바깥 모습과 본인의 모습은 번갈아가면서 차원을 축소 / 확장하며 감상자와 소통한다.


An Aggregation – Space 20160305

Space 20160305, 2016, Charcoal, nylon threads, etc. 2016, 박선기

그의 작품은 대제목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 전시의 것에는 집적(An Aggregation)과 시점(Point of View)이 작품마다 붙어 있다. 의 경우 집적의 제목이 대제목으로 따라붙는다. 집적의 요소는 본질을 이루는 것들의 바탕이다. 박석기는 숮으로 숲을 재현한다. 숮이 숲이 될 수 있음은 그것이 나무라는 물체의 본바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숯은 시간이 들어 생명이 다한 존재다. 그렇지만 그 조각들은 나무의 것으로 숮 하나하나는 나무의 존재를 증거 한다. 심벌(Symbol)이다. 이것에 남아 있는 나뭇결은 숮이 존재했고, 관람자의 눈 앞에 존재한다는 아이콘(Icon, 증거)이다. 관람자는 ‘In’이라 쓰인 곳으로 따라 들어가며 작품의 뱃속을 탐구한다. 박선기는 이것을 “숲을 걷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Index)를 통해 관람자는 색즉시공을 체험한다. 작품은 관객이 그것을 통과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1층 내부는 작가의 오랜 작품 재료인 숯을 위한 공간으로, 작가는 숯으로 이건의 근원인 나무 숲을 재현한다. 숯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함축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실재로, 작가는 재료가 가진 이러한 상징성과 형태미를 작품 완성의 주요 기제로 삼는다. 천장 빼곡히 매달린 숮은 하나둘씩 모여 우거진 숲을 이루고, 숲의 중간에는 관객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작가는 관객이 하나의 감각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감각을 복합적으로 이용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관객은 시간이 분해해버린 숲속을 걷는다
관람자는 In이라고 씌여진 공간을 따라 걸으며 작품을 탐구한다

An aggregation – 20130714-2, 2013, Coloring on charcoal with pencil, etc. 2013 박선기

박선기는 3년 전부터 숯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나무를, 그리고 숲을 완성하는 실험을 했다. 새까맣게 타 버린 숮 위로 사각형의 연필 자국(흑연)이, 그 위에 금박이 씌워져 있다. 공식 설명을 참고할 순 없었으나 흑연과 숮이라는 나무 위 요소에서 뽑아낸 본질이 황금(진리)로 승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Point of View

작가는 시점을 바꿀 때마다 공간을 축소했다가 늘어났다 하는 작품을 완성한다. 이것은 오브젝트이지만 관람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면으로 그 차원이 한 번 축소된다. 관람자가 시선을 움직이며 면을 만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무를 향해 한없이 소실한다. 작품은 시점의 변화에 따라 부활과 소멸을 반복한다.

Point of View – 20160123, 2016, Coloring on the mixed media

책의 형상 속 계단은 시점에 따라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상투적인 구절이 떠올랐다.


Point of view – 20150417 Owl, 2015, Coloring on Bronze

작품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맞춰 알아볼 수 있는 형상에서부터 소실되기 직전까지의 선으로 생과 사를 반복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색이지만 그것의 본질은 공이다.


Point of View – 20160229, 2016, Coloring on the mixed media
부드러운 질감의 사물도, 의 단단한 청동도 시점이라는 블랙홀 속에서 손쉽게 구부러진다.

작가는 인간 개개인의 시점을 파고든다. ‘인지’한다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시작되는데, 시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지각하는 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약 40%의 뇌가 시각정보체계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뇌는 시각 기관을 통해 유입되는 다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패턴화’, ‘범주화(Categorized)’하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매우 빠른 뇌의 능력 덕분에, 인간은 유사한 일부분을 봐도 기억 속에 인지하고 있던 특정 이미지로 확정적으로 인식해버리는 오류를 발생한다. 즉 ‘아는 것’을 더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한 예로는 옵아트(Op Art), 착시아트(Anamorphic Art) 등이 있다.

– 박지형, 우양미술관 학예연구사

Point of View – 20160307, 2016, Coloring on the mixed media

전시는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조각, 평면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는 공통적으로 시선에 따라 다른 형태로 인지되며,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입체 평면 연작을 포함. 아크릴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 등을 전시한다.

 

An aggregation – 20160210, 2016, Acrylic beads, nylon threads, etc

비쥬는 시점에 따라 하나의 점이 되기도, 집합을 이룬 하나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관찰자의 이동을 가만히 기다렸다가 재빨리 그 형상을 전환(transform)한다.

박선기 작가는 이러한 인간이 입체를 보는 분석적 시각의 불완전성에 기초한다. (…) 한 땀 한 땀 공간을 꿰어 매 듯 매다는 방법이다. 모든 작품에는 어떠한 한 특정 시점을 관객이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몸을 앞 뒤와 높낮이를 움직이는 다양한 태도를 경험하는 능동성과, 짐작하던 형상이 시야에 나타나는 순간 감지되는 시각적 유희의 쾌감의 겹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감각은 인간의 뇌를 만들고 바꾸는데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감각을 통해 생성되는 수많은 ‘인식의 시점’이 수용될 때 예술을 통해 소통과 공감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박지형 우양미술관 학예연구사

An aggregation – 20160229, 2016, Acrylic beads, nylon threads, etc

박선기는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대학(Brera Academy of Fine Arts)에서 수학하였다. 이탈리아 유학 기간을 포함 영국 런던, 독일의 만하임 등에서 11년 동안 활동하였으며, 이후 귀국하여 현재는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전시로는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열린 313 아트 프로젝트의 해외 협업 프로젝트 전이 있으며, 2015년에는 우양미술관 개인전 <뷰티풀 View-tiful> 전을 포함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과의 콜라보레이션 전시인 <디올 정신(Esprit Dior)>, 현대자동차 프로젝트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등에 참석하였다. 전 세계 주요 컬렉션과 미술관 및 공공장소 등에 작품이 설치, 소장되었으며, 프랑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스위스 PKB Private 은행을 포함하여 국내는 국립현대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삼성전자 디자인 라이브러리, 서울 신라호텔 등이 있다.


전시를 나왔다. 차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할 수도 있었지만, 잠시 걷고 싶었다. 색즉시공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공간이 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나의 죽음, 풍화와 침식, 또는 철거로 인한 사물의 소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의심해 본다. 나는 가끔 <사토라레>나 <트루먼 쇼>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것은 내가 숨을 쉬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끊임없는 의심이다.

이 글을 쓴 작가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실재 역시도 의심의 산물이다. 독자는 이 글을 쓴 사람을 상상하지만 그것이 실제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물리적 만남 이후에나 확인할 수 있으며, 독자 역시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을 상상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물리적 순간 이후에 그것을 확정 지을 수 있다. 필자가 확인하는 ‘조회수’는 이것의 믿음일 뿐이고, 독자가 글을 통해 느끼는 필자의 이미지는 독자 자신의 믿음일 것이다.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나는 이제 도산대로를 조금 벗어났다. 걷다 보니 목이 말랐다. 저 멀리 쿤스트할레 하우스가 보였다. 술을 마시기엔 아직 이른 시각이었지만 감각을 조금 휘고 싶었다. 나는 텡커레이 진 한 잔을 주문했다. 투명한 얼음잔에 라임이 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알코올의 자극 이후에 열기가 훅 오른다. 고개를 한번 털었다. 시각부터 슬슬 왜곡되는 감각이 썩 괜찮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걸었다.

Hooka – Hyukoh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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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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