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를 버렸다

늘은 너를 버리는 날이었다.

왜였을까? 갑자기.

네가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나를 느꼈다. 그곳엔 권태로운 내가 있었다. 내가 너를 버린 이유는 그런 내가 질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원인은 그 곳에 있었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고통스러우니, 네가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 버림으로써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겨울에 너를 버리는 것은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잘 자라고 있는 너. 그런 너를 저 찬바람 쌩쌩 부는 바깥에 잘그락 하니 던져놓기에는 내 마음이 좀 그랬다. 그렇다. 나는 너를 버린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생각했는지 미안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너를 버릴 것인가를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너를 구매했던 곳에 버리기로 했다.

전에 키우던 네 친구들 중 소천하여, 화분이 빈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가져다주면서, 다른 식물을 키우기로 얘기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생각했다. 나는 너를 깨끗이 포장하여 봉투에 넣었다.

“안녕하세요.”
너를 버리러 들어간 그곳은 네 친구들의 온기와 습기로 훈훈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거.”
나는 네가 담긴 봉투를 상대에게 건넸다.

“하나는 죽었는데, 다른 하나는 분갈이하실 건가요?”

그녀는 내게 너의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켜 줄 것인가를 물었다. 나는 너를 이 곳에 버리러 왔는데.

“음, 다른 화분으로 바꾸어 가려고요.”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너를 버린다는 것이 현실로 와 닿았기 때문인걸까.

“그렇구나. 조금 둘러보세요. 생각해 본 건 있어요?”

얼마 전, 나는 회사에 집에서 키우던 녀석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 참 맘에 드는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이 없어서 집이 한창 허전하다 생각했었다. 나는 그 친구와 닮은 친구를 심어가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것은 없었다. 그녀에게 녀석이 언제 들어올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언제 들여올지 모른다고 했다.

“얘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제 그녀는 직접적으로 너에 대해 묻고 있다.

그래.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
“두고 가려고요.”

그러나 나는 또 돌려 말해 버렸다.

“버리는 거예요? 왜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다. 나는 너를 공손하게 버릴 줄만 알았지, 버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나는 얼토당토않는 말로 너를 버린다는 것을 설명했다. 저희 집에 있는 선반이 이만한데, 얘가 쭉쭉 자라서 집이랑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새 식물을 들이고 싶은데, 그러기엔 집이 너무 좁고요-같은 말을 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냥 길에 버리지 그래요. 그러면 누가 가져갈 텐데.”
그녀는 무심한 척 말했다.

“아 그래요?” 나는 또 길게 맞장구를 쳤다.나는 너를 버린다는 사실에서 달아나려 굴었다. 그녀는 이제 그런 나를 놓아 줄 때도 됐다 생각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그런 나의 태도를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손님과 사장의 관계가 누나, 동생이 되어도. 누나, 동생이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도, 서로 비껴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누나는 내가 너를 버리러 왔다는 것에 대해선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하얗고 예쁜 친구를 골랐다. 늘상 했던 질문도 잊지 않았다. 물은 얼마나 주어야 하나요? 키우기 쉬울까요? 바로 다음 주기 물 주는 날은 언제예요? 했다.

“너무 정성 쓰지 말아요. 지나친 정성 때문에 제때 물 준 적 없었잖아.”
누나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식물들에게 물 주는 게 취미다. 너와 함께 버리게 된 빈 화분의 주인도, 지나친 관심 때문에 뿌리가 썩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관심을 주었던 어제의 나와, 권태로운 오늘이 질려버린 지금의 나. 이렇게 두 명이 그 범인이다. 그런데, 내가 버리는 것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 죽어서 나를 떠난 빈 화분과 너다. 차라리 잘 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아귀가 느슨하여 또 다른 네가 죽음으로서 나를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

“버리는 거 인정하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이제 새 친구를 예쁜 감색 포장지로 감싸고 있었다.

“네.”
나는 이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무리 다 알아도 음성으로 이것을 선언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인 것이다.

“어떻게 해.”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그래도 어쩌겠어. 이것이 이 미물의 운명인걸.”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게요.”
나는 ‘그러게요’하는 네 음절에 한숨을 담아 길게 뱉었다.

“예쁘게 담아주실 필요 없어요. 그거, 다 돈인데요.” 내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 않고, 새 봉투에 친구를 예쁘게 담아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고, 웃는 얼굴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습하고 푸근했던 공기는 어디 가고 성마른 겨울바람이 내 콧속을 말렸다.

나도 기억한다.
나도 한때, 너를 열렬히 좋아했었다.

네게 매일 물을 주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고, 너를 보고 싶어서 아침에 설렜던 날이 있던 내가 생생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나를 마음 아프게 하는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참 아쉽다. 참 아프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것을 인정함으로 더 멋있는 사람이 되거나, 양심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는 그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존재의 소중함을 한번 더 체득해야 한다. 너는 그런 역할로의 이별인 것이지, 그렇지.

설령 어느 날. 내가 너를 다시 찾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는 서로가 닿기 어려운 곳에 있어 서로를 애타게 찾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새로운 친구를 노트북 옆에 세우고, 커피 한 잔, 케이크 하나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홀짝대는 커피와 짙은 단맛이 스며드는 케이크를 음미하고 있다. 그리고 너를 버린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다. 이렇게 잔인한 미물이 나다.

오늘 나는 대신해서 버렸다.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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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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