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주 인터뷰

이민주는 1996년, 첫눈이 내릴 즈음 태어났다. 한성과학고를 졸업했다. 그는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 배아세포종이라는 암에 걸린다(2016년). 이듬해 2월 28일 오후 10시 58분 별세한다(2017년). 배아세포종은 전체 뇌종양의 1%를 차지하는 병으로, 신생아에서 일곱 살까지 그리고 십 대와 이십 대 초반 사이에만 발생한다. 이 질병의 현재 밝혀진 외부적 원인은 없다. 본 기록은 그가 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재발 판정을 받는 사이에 남았다. 인터뷰엔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진단 결과 종양의 위치가 수술이 가능한 부위에 있었고, 인터뷰 직후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수술은 잘 안됐다’. 본 기록은 그와 나눈 대화를 녹음하고, 그것을 수기로 옮겨 적어 편집한 것이다.

그는 내성적이지만 가진 정 많은 이었고, 외로움을 타는 중에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그는 우리 주변에 하나쯤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란, 그 부재를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숫자다. 쌀쌀한 바람을 뚫고 그를 만났다. 그는 두꺼운 회백색 패딩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린 반갑게 인사했고, 마주 앉았다. 시답잖은 농담 두어 개로 안부를 대신했다. 나는 준비했던 노트를 폈고, 녹음기를 켰다.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우선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건, 아프게 되고 나서부터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아프게 되고 나서부터요?

아니요, 뭐. 평소예요. 음, 많았던 것 같아요. 병에 걸리고 나서 휴학했어요. 휴학하고 쉬는데 엄청 편한 거예요. 뭐가 나를 힘들게 했을까? 그 전에는 뭐가 그렇게 부담이 됐길래 이런 시간이 편할까. 최근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조금 놀랐어요. 사실은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러니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일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을 했어요. 뭐가 그렇게 편해진 거예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당장 부담이 없다는 것? 그 전에는 항상 일 인분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일 인분이요? 네, 일 인분.

그는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일 인분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조금 더 설명해달라는 말 대신 침묵했다. 그가 말했다.

일 인분이 뭐냐면요,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서 먹고살고 하는걸 일 인분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2014년, 대학교 첫 학기 때는 용돈을 받아서 생활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학기부터는 용돈을 안 받았어요. 아르바이트하여가지고, 그러니까 국가근로장학생 그게 됐거든요. 그때부턴 계속 용돈을 안 받게 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제가 지금 나이에 직업을 구할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공부를 더 잘해서 계속 그 장학금을 받아야 했어요. 그때부터 부담을 느끼면서 학점을 챙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부담이 안되도록 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일 인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 인분이란 단어가 그런 뜻이었군요. 그래서 병이 생기고 나선 일 인분이란 부담을 살짝 놓을 수 있었거에요? 네, 집에서 그러라고 하니까. 그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직접 말해줬거든요, 저한테요. 그리고 그게 제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그렇군요. 그런 건 없었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이래라-하는 것들이요. 지금 상황을 예로 들어서. 그러니까 일 인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일 인분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진짜로, 진짜로 아니라고 하는 순간에도요.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그런 생각이 들긴 했죠. 그런데 정말로 그 사람들(가족들)을 위한다면, 그걸 제가 신경 쓰는 게 맞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신경을 끄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났어요. 병에 걸리기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아프면서, 그렇게 그걸 제가 신경 쓰면서 끙끙 앓다가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경을 끄는 게 이 사람을 위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은 단번에 결론이 나게 되는 건가요? 아니면 시간이 좀 걸렸나요? 그 말을 듣고 한 두 달 정도를 계속, 천천히. 그러니까 매 순간 그걸 가지고 고민한 건 아니지만,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생각하면서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아요.

고민이 끝나자마자 탁 하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니면 한 달을 겪으면서 서서히 마음이 편해진 건가요?사실 마음이 편했던 건 딱 입원해야 한다 하니까. 당장 5학기에 대한 부담이 다 사라지니까. 머리는 미친 듯이 아픈데 당장 마음은 편하고. (일동 웃음)

보통 마음이 편하고 몸도 같이 편안을 느끼잖아요. 근데 그건 정말이지, (웃음)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겠어요. 네, 아파 죽겠는데 당장 마음이 편한 거예요. 아, 이제 시험은 안 보는구나. 이제 등록금 걱정은 안 하는구나.

하긴, 그게 당장 부담일 때가 있죠. 네, 맞아요.

뭔가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겼을 때, 덕분에 일을 더 안 해도 되겠다는 그런 안도감. 그런 거구나. 네, 그런. 맞아요.

저는 그걸 되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됐다는 상황을 표현하면서 일 인분이라는 단어를 쓴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보통 학교를 다니는 사람으로서의 단어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면 책임을 지고 있어야지 일 인분인 거잖아요. 원래 일 인분이란 그건, 딱 제한된 양. 식당에 가면 나오는 그런 건데. 그런데 일 인분이란 말을 책임 대신 사용했다는 거는 자기 역할이 되게 명확했단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잖아요? 아, 그런가요?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네, 안 해봤어요.

주변에서는 많이 쓰나요? 일 인분이라는 단어를? (잠시 생각한다) 듣고 나니까 많이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런 표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 인분이라는? 그냥, 나 다운 표현이다?

그래요? 그러면은 이제 주제를 바꿔서, 일 인분. 그러니까 나 답다. 나 답다라는게 어떤 뜻일까요? 민주는 민주를 어떻게 생각해요? 흐음. 어렵네요.

좀 어렵죠? 음. 저는 저를 안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네? 그게, 서서히 이렇게 된 걸 텐데요 아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되게 힘들었었거든요. 성적 같은 부분에서요. 제가 저를 성적 부분에서 극복하지 못한 기분이 남아있어요. 그래서 저는 저를 좀 안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분들은 제게 이렇게 말해요. 너 고등학교 선행학습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고, 그 정도까지 했으면 잘했다.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제 생각은 그게 아니거든요. 나는 더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 해서 (입시를) 이따위로 만든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그래서 서서히 제가 싫어졌어요. 그게 심해져서 2015년 여름엔 거울도 안 보게 됐어요. 거울 속에 웃는 제가 소름이 끼쳤어요. 그래서 거울을 아예 안 봤어요.

2015년도요? 재작년이네요. 네.

1학년 때잖아요. 2학년이에요. 14년도가 1학년이었고, 15년도에 2학년.

그러면 14년도에는 대학 새내기로서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더 열심히 하려는 그 마음. 그런 마음이 함께 올라와서 갈등이 심했었겠어요. 그렇죠. 1학년 1학기 때는 특히 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그래서 친구가 없었고, 학교를 혼자 다녔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땐 시험을 보고 나면 해방감이란 게 있잖아요. 혼자 다녀도 막 이틀은 쉴 수 있고. 그런데 대학교 오니까 그런 게 없더라고요. 허무하고.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드라마에 빠져 살았어요. 맨날 <닥터 후>만 봤어요. 그러다가 그 해 여름에 지금 친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학교생활이 많이 편해졌어요. 친구가 생겼거든요.

친구가 생겼군요. 그럼 그 전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어요? <닥터 후> 보는 거 말곤 없었어요? 푼다? 그냥 (스트레스를) 푸는 게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드라마 몇 시즌이 길어야 1년을 채우진 않잖아요, 그래도 혼자 남을 땐 어떻게 보냈어요? 보통은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일기를 썼군요. 그때도 계속. 네, 일기는 계속 썼어요. 조금은.

매일 쓰는 편이에요? 매일 쓰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생각나면 썼어요. 그랬더니 맨날 우울한 내용만 가득해가지고. (웃음)

다시 보니까요? 그때가 많이 좀 우울했었나 봐요, 어때요? 그때 한참 우울했던 때가, 15년. 15년이 정말 딱 우울했던 것 같아요. 14년은 오히려 새로운 게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래 가지고 약간 공조(共助)하는 상태였다면, 15년은 새로움마저 익숙해지기 시작하니까 점점 침체되더라고요.

아, 그랬군요. 그러면서도 계속 한 사람의 역할을 하기 위해 또 공부도 해야 하고. 그랬던 거죠? 맞아요, 맞아. 맞아.

정말 거울을 안 보게 돼요? 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사실은 내가 싫거나, 못생겨 보이거나, 내가 맘에 안 든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떻게 보면 씻기 위해선 간간히 거울을 보긴 하잖아요. 그런데도 절대 안 봤다? 거의 안 봤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의식적으로 피하는 거죠. 씻을 때는 솔직히 얼굴을 인식하지 않으니까 괜찮은데, 의식적으로 거울을 휙 피하고. 그리고 제가 되게 웃는 걸 못하거든요. 활짝 웃질 못해요. 그래서 사진을 다 못 찍는데, 엄마 말로는 이상하게 웃는다고. 입에 힘주고.

(손을 들어 입에 갖다 댄다)

입에 힘주고 이렇게 웃는 거. 드라마에서 보는 그 어색한 웃음 같은 거. 이렇게 하고(손가락을 양 볼에다 건다) 제 사진이 다 그랬어요 그때.

지금은 표정이 많이 좋아졌나요? 의식하지 않아도 웃음 잘 짓나요? 네, 이젠 어색하지 않게 잘 웃는 것 같아요. 의식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그때는 진짜 놀랐어요. 여름방학이었는데, 제가 거울을 보고 씩 하고 웃었거든요. 그랬는데 소름이 돋는 거예요. 내 얼굴 보고, 너무 싫어서. 그래서 그때 이후로 거울을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장면이 되게 생생하겠어요. 그러면 지금은 본인이 좋아요? 어때요? 지금은 좋다기보다는 그냥 좀, 서로 휴전하고 있는 느낌? 너 몸 상태도 안 좋은데 무리하지 마라. 이렇게요. 그래서 점점 몸이 낫고 있나 봐요.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하고, 그리고 애초에 이 얘기를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죠.

그렇네요. 그리고 이렇게 자기 고백적인 말을 하는 걸 안 좋아했어요. 어쩌다 제가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다고 하면, 본질적인걸 말하는 게 아니라 빙 둘러서 말하고. 결국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를 장황하게 꺼내놓곤 아 힘들어, 이러고. 그럴 거면 그 얘기를 뭐하러 하나 자책하고.

그렇죠. 본질을 얘기하지 않고 드러나는 것들로만, 현상적인 거만 이야기하고. 그렇죠. 그래 놓고 또 남들이 나 위로 안 해주면 실망하고, 또 실망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실망하고.

맞아요. 다시 한번 더 실망하죠. 그러면 민주는 본인의 본질적인 중압감을 고백했던 사람이 있어요? 한 번. 술 마시고 학회 엠티 가서. 학회에 H라는 형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했어요. 그때 후회했어요. 술 먹고 내가 이 지랄을 (웃음).

그랬어요? 그 뒤로는? 없어요.

그때 무슨 이야기 했어요? 기억은 나요? 조금은요. 집안 얘기했었고.

민주가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장에도 조금씩 그런 것들이 보여요. 사람이 중심을 말하기 싫어서 주변을 에둘러도 부분 부분 그 본질이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민주가, 말 못 하는 일들이 참 많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A라는 위로를 받고 싶다면 A라는 말을 하는 게 제일 빠르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B를 말하고.

그래 놓고 또 실망하고. 네.

저 같은 경우는 그래서 안 보게 된 사람도 되게 많아요. 저는 그렇거든요. 제가 막 관계를 끊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에두를 거면 사람을 뭐하러 볼까, 하다가요. 그래서 저는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게 됐어요. 주변 얘기도요. (얘기를) 하게 되면 나는 또 에둘러서 위로받고 싶어 할 테고. 그러면 또 에두른 위로에 내가 실망하고. 나는 또 그 사람을 보내고. 그래 놓고 또 자위해요. 내가 너를 싫어해서 떠나는 거다. 이렇게요. 방어기제죠. 너는 그냥 나한테 딱 이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되는 거죠. H형이랑은 잘 지내요? 네. 지금도 잘 지내요. 참 특이한 사람이라. (웃음)

갑자기 그런 얘기가 나와서,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어가지고. 저는 그런 상황이 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상처내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상처를요? 나를 계속 갈군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갈궈요? 그냥 계속 자책해요. 왜 그런 말을 꺼냈을까. 대신 더 잘해줘야겠다. 이런 식으로요.

부럽네요. 저는 민망해져서 안 보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멀어진 건데.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은 나의 치부도 들어줬는데 잘해줘야지.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네.

정말 부럽네요. 그래요? 그래도 그만큼 나를 좋아하고, 신경 쓰니까 내 속마음을 말하게 되는 건데, 떠날 순 없어요. 저는 저를 좋아하질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거로 공백을 채운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를 좋아해 주는 타인을 떠나보낼 수 없어요.

그렇군요. 그런 경험도 있을 것 같아요. 애정을 100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스스롤 한 60 정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나를 70, 80 정도 좋아해 주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그런 감정 느낀 적 없어요? 많죠. 아프게 되고 특히 많았어요. 이번에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리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 소식을 듣고 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놀랐어요. 울 정도의 이야기라고 생각진 않았거든요. 나를 위해 울어주는구나, 그랬어요.

민주에게 운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그만큼 감정이 격해진 거죠. 내가 내일 죽어, 하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치료 중단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최근에 울어본 게 언제예요? 아파서 말고. 감정 때문에. 가장 최근에요? 저 치료 중단 결정을 알리고 나서, 집에서 이제 민간요법이라도 해보냐, 다른 약을 써보냐 그런 얘기가 나왔거든요. 그거로 아빠랑 큰누나가 되게 싸웠어요. 그래서 그 주제로 편지를 쓰다가 울었어요. 아빠에게 원래 쌓여 있던 원망도 있었고, 그리고 그런 원망을 평소에 드러낸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그걸 표현하는 일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몇 년만에 집에 들어와서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렇게 쓰는데 되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냥.

그렇죠. 편지, 누나에게도 썼어요? 가족 모두에게 쓰는 편지였어요.

어떻게 줬어요? 카톡으로. 텍스트 파일로 저장해서. (웃음)

아무래도 가족들이 각자 일인분씩 하던 시기에 있다가 아프게 되고 나서부터는 민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겠어요. 그렇죠, 아무래도.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그것도 아까 말했던 맥락이에요. 내가 부담스러워하면 이 사람들이 힘들어할 거다. 그냥 받아들이자. 제가 막내고 아들이다 보니까 집이 제 중심이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받아들인다는 건, 결국엔 자기 자신을 좀 괴롭혀서 관계를 돌린다는 느낌도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음. 아마도 그렇게 깊게 생각지 않아서 외롭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적어도 올 한 해는. 제가 원래 깊게 생각하면서 괴로워지는 편이라서요.

평소에는 생각을 깊게 하는 편이에요? 네, 평소에는 그런 편이었는데. 괴로운 건 이제 깊게 생각 안 하려고요. 일부러라도 더.

그렇구나. 보통 민주는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괴로운 게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런 거죠. 나는 남을 괴롭게 하고 나면 더 괴로운 사람이니까.

아까 자신을 표현할 때, 두 명의 자아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자신을 싫어하는 자신과, 지금 민주의 의식이 존재하는 공간. 그걸 가르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가르는 거라면요?

또는 다른 민주의 속성? 왜 그 아이는 지금 민주에게 어떤 종류의 요구를 하거나 화를 내요?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건 아니라고 꾸짖어요? 걔는… 되게 욕심이 많아요. 제가 더 나아지길 바라니까. 그런데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니까 화를 내는 거예요. 만약 제가 잘 한다면 격려해줄 거예요, 분명히.

그러면 안주하고 싶은 자신? 또는 포기하는 자신인가요? 지금 자신의 편에 있는 민주요. 아마도요. 게으른 나. 그게 딱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질문을 해 볼까요? 작은 누나가 휴먼즈 오브 서울에 나왔죠. 당시 누나가 이런 인터뷰를 해요,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지금 저에겐 안정적인 게 중요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뒤로 미루자고 결론을 내린 상태예요”라고. 누나가 말한 안정적인 게 뭘까요? 작은 누나는 상업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리곤 졸업하자마자 취직했어요. 누나는 원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프게 되면서 엄마가 일을 못하게 됐고, 집에 안정적인 소득이 없어졌어요. 누나가 대신 일을 찾음으로써 경제적 안정을 찾은 거죠. 그런 의미의 안정일 거예요.

그렇군요. 인터뷰 이야길 다시 하니까 어때요? 당시 휴먼즈 오브 서울 인터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누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런 거?

역시라면 어떤 역시일까요? 그러니까, 역시 굳이 저렇게 취직을 한 게 나를 위해서였구나. 집안을 위해서였던 거구나 하는 거요.

작은 누나는 어떤 사람이에요? 작은누나 얘기는 여기서 못하겠어요.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요? 왜 못하는지. 작은누나는 많이 힘든 사람이에요. 제가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힘든 사람이라서요. 이렇게 보이는 곳에다가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작은누나는) 지금도 힘들고 예전에도 힘든 시기를 보냈나 봐요. 네.

되게 각별하겠어요. 그렇죠. 아무래도 친구처럼 지내고.

가족들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작은누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작은 누나는 (저를)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럼 본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역할을 해 주는 편인가요? 요즘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요.

그건 왜요?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왜냐면 (내가) 없어지면은 그 준비를 하게끔 해야 하니까요.

누나 본인은 민주가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요? 글쎄요. 아마 알지 않을까요. 일부러 나에게 모질게 하는구나, 일부러 이러는구나.

일부러 무얼 했어요? 옛날엔 받아주던 말도 막 안 받아주고, 고민도 이제 스스로 해보라고 말했어요.

그럼 작은누나에겐 민주 말고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때요?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었다. 한껏 풀려있던 몸도 다시금 긴장을 찾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우리의 침묵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는 듯 보였다.

11월 24일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아요? 모르죠 저야. 그냥 11월 24일인 거겠죠 (웃음).

그 날부터 민주는 자신의 페이스북 일기에 날짜를 붙이기 시작해요. 언제일 것 같아요? 그 날이 아마 입원하고 딱, 저 혼자 이 치료 그만둬야겠다고 결정한 날.

그 날은 동시에 재발 판정을 받은 날이었어요. 만약 민주가 그 날을 치료를 그만두는 날로 기억을 하고 있다면, 재발 판정을 받으면서 ‘아 치료 그만 받아야겠다’하고 생각한 건가요? 다시 한번만 더요.

24일부터 일기에 날짜를 붙이기 시작해요. 그런데 제가 이 날을 기억하냐고 물었죠. 그리고 본인은 치료를 안 받겠다고 생각했던 날이라고 답했어요. 어떻게 보면 재발 판정을 받은 날, 그러니까 본인은 이성적으로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감각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생각을 했던 걸까요? 음 그렇죠.

재발 판정이 맞아요? 당시엔 의사가 재발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번복했어요, 번복했다고. 그걸 두고 저랑 엄마가 얼마나 화를 냈는지.

정말로 화를 냈어요? 직접 화를 내진 않았어요. 대신 가족끼리 있을 때 “걔는 왜 그러냐”라고 했어요.

그럴만해요. 정말 놀랐겠어요. 그렇죠? 만약 그때 재발이라 하지 않았으면, 더욱 어떤 치료도 추가적으로 받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의사가 재발 의심이 된다고 했으면 치료를 안 받았을 거란 말이죠? 네. (주치의가) 급하게 재발 판정을 했어요. 원래 그 날은 통원 치료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재발 판정을) 해 버리고, 병원에서 다음날 입원을 시킨 거예요. 병실 예약과 진료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죠. 만약 재발이란 말이 없었다면 이렇게 충격을 받을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는 일이 급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었을 거예요. 분명히.

의사는 결국 재발 판정을 번복했으니까, 그 사이에 민주가 치료 과정에서 제동을 걸었을 것 같네요. 맞아요. 쉬면서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어요. 떨어졌던 종양 수치가 살짝 오른다고 해서 재발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담당 선생님께서도 제 말에 동의하셨거든요.

잠깐 쉬었다가 할까요? 그렇게 해요. 시간이 금방 가네요.

우리는 인터뷰하는 동안 서로 닿지 않도록 접어두었던 다리를 폈다. 찌릿한 감촉이 무릎을 타고 장딴지 아래로 흘렀다. 앞을 보니 그 역시 같은 증상을 겪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편 다리를 보다가 얼굴이 마주쳤고, 특정한 대답이나 질문 대신 피식하고 웃는 것으로 설명을 대체했다. 그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찬장에서 머그를 하나 꺼내 대충 씻은 다음 그의 손에 쥐었다.

이렇게 인터뷰해 보니까 어때요? 왜,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둥둥 떠다니잖아요. 그런데 정리되어 말이 되고, 글로 나오게 된다 생각하니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저는 처음 민주가 병원을 갔던 날이 기억나요. 저는 그 소식을 K로부터 들었는데, 그 날은 너무 피곤하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카톡을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면서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저는 전해 들은거여서요. 그때가 작년 2월이었으니까, 1년 전이었어요. 당시엔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어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아파요? 안 보이는 게 아니고? 그게 전부가 아니었나 봐요. 네, 보이지도 않았어요. 머릿속에 물이 차 있었대요. 그리고 종양이 시신경을 통과하는 벽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머리가 말도 못 할 정도로 아팠죠. 병원에 가서도 그 증상은 한동안 지속됐어요. 병문안 온 친구들 중에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친구도 있었어요. 만날 “으… 진통제!”하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어요. 왜, 너무 아프면 시야가 핑 돌잖아요. 그때는 머리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게 두통 때문인가 헷갈릴 정도였어요. 그렇게 첫 번째 항암을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이, 첫 번째는 항암을 받으면 다 낫겠구나 했다는 것. 이 암이 당연히 나을 거라 생각했고, 두 번째는 아까 말했듯, ‘아, 이번 학기는 쉬는구나’ 하는 평안한 마음이었어요.

맨 처음 했던 생각이 이때 들었던 거군요? 그렇죠. 머리 아픈데 막 “항암 시작합니다” 하고.

그러면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던 때는 언제였어요? 당시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후에 얼마나 지나서야 병을 알게 된 건가요? 따로 자세히 들을 수 있던 때는 없었어요. 계속 단편적인 걸 들어서 정보가 쌓였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찾아보고. 그래서 지금은 들은 게 뭐고, 찾아서 알게 된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배아세포종에 대해서 진지하게, 긴  시간 동안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때는 없었고요? 그거는 이번에 제가 해보자고 했는데 거부한 치료가 고용량 항암치료 요법이거든요. 그거 얘기하면서 길게 얘길 들을 수 있었던 것 말곤 (없었어요).

진단하는 거로. 자세히 듣진 못했다? 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게, 주변에 환자 부모님들이 알려주고 해가지고.

주변 환자 부모님이요? 아무래도 이 병이 아무래도 애기들 아니면 20대 초-중반까지만 생기는 암이다 보니까 우리 병실엔 다 비슷한 또래 남자애들이랑 그 부모님들이 있었어요. 그분들께 병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처음 암 진단받았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입원하는 건가? 이렇게. 별 생각이 안 들었어요. 나중에는 막 극적이어야 될 것만 같은데 평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잔하다- 참 극적이지도 않다 하나도. 그냥 잔잔하다.

그런 거였군요. 그, 인생그래프. 인생그래프요?(웃음)

그는 페이스북 일기에 인생그래프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언젠가 학원 수업시간에 인생그래프를 그렸던 때가 생각난다’며 시작하는 일기로, 그는 그곳에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다.

아, 그거 초등학생 때 했던 건데.

근데 일기로 올렸잖아요. 이걸 올릴 때 무슨 마음이었어요? 그 일기는 입원하기도 전에 썼던 거예요. 인생 그래프 얘기 나온 게 아마, 한참 우울해서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해가지고 꺼내보자 했던 거거든요. 인생그래프. 인생그래프는 그냥, 거기 제가 썼던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아마도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쓴 걸로 기억해요. 저는 그게 되게 진심이었거든요. 왜냐면 미래가 불확실해 보였어요. 퇴직한 이후 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웃기더라고요. 퇴직 이후는 걱정하면서 취직 걱정은 안 하는 거예요, 내가. (웃음)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다는 게 웃겼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선 큰 두려움이 없나 봐요. 그런데 끝나고 나서, 그 공백기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게 좀 있나요? 고등학교 이후부턴 시작과 끝. 모두 다 두려워요. 두려움이 많아졌어요.

왜요? 어떤 사건이 있었어요? 그냥요. 고등학교 시절 했던 일들이 대부분 잘된 게 없어가지고요. 특히 공부와 관련된 것들에서는 더. 내신이 되게 안 좋았어요.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고등학교 처음 중간고사였어요. 수학 시험지를 받았는데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다 서술형이었거든요. 그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저는 원래 수학을 잘 하고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론 점점 수학을 못하게 되고, 싫어하게 됐어요.

한 방이 되게 강력했네요. 네, 그리고 심지어 대학엘 와서도 서술형 같은 문제가 나오면 덜덜덜 떨었어요. 한참 동안을요.

‘아는 것에 대해 쓰시오’라니. 정말 막막하죠. 네 정말로.

그런 의미에서 인생 그래프를 다시 한번 그려볼까요? 진행 정말 매끄럽네요. (웃음) 별롤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좀 그려봐요(웃음). 그릴 수 있으면 좋지요. 그때 어떻게 했어요? 타임라인이 쭉 있고, 이렇게, 나이가 눈금 처져 있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한번 해 봐요. 이렇게 있고, 음. 간격이 좀 작은가? 10, 20, 30, 40, 50, 60.

정말 딱 60까지만 그리네요. 여전히 생각은 바뀌지 않은 거예요? 네, 저는 늙기가 싫어서. (웃음) 이때가 딱 제 수명이었으면 좋겠어요. 여기(60)까진 좋은데, 이 뒤로는 늙고 싶지 않아요.

태어날 때. 시작은 어땠어요?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까진 좋았죠. 이렇게, 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좋았어요. 그리고 5학년 때 아빠가 집을 나가서 힘들었어요. 중학교 때에도. 중학교 초반엔 적응을 좀 못했어요. 제가 좀 그런 스타일이에요. 어디 새로운데 가면은 반년 정도 혼자 지내는 스타일이요. 계속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교에서도 그랬어요. 다 그랬어.

그는 인생그래프를 천천히 추락시켰다

다 그랬군요. 네. 그리고 이렇게 (연필 긁는 소리) 상승하는 건, 과학고등학교 원서 내고 합격했을 때에요. 근데 이때는 불안정한 시기기도 했어요. 왜냐면 원서를 내고 일차를 붙었을 때 기분이, 기쁘면서 불안했거든요.

왜요?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요. 왜냐면 (과학 고등학교)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선행학습이다 뭐다 준비를 많이 하는데, 저는 준비를 하나도 안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공부는 또 안 해요. 불안하면서.

그때부터 모순된 자신이 조금씩 등장하네요. 네.

인생그래프요, 저점(低點)일 때는 어디까지 떨어지는 거예요? 글쎄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뭐 중학교 때까지?

중학교 시절은 어땠어요? 그냥 무난했어요.

무난했다는 건? 남들이랑 비슷했다고 해야 하나. 크게 힘든 일 없고, 크게 좋은 일도 없고.

네, 좋아요. 계속 그려주세요. 이때는 열여섯 살,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이 시기는 솔직히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를 계속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는 추락했던 그 선을 조금 끌어올린 후, 일렁이도록 진동하는 선을 그렸다

왜요?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어요? 안 좋은 부분은 공부 관련된 거랑, 초반에 적응 못한 것이요.

적응하는걸 어려워하나 봐요. 그래요. 낯을, 그러니까 사람을 되게 어려워해요.

낯을 많이 가리면서 혼자 있는 게 즐겁진 않고? 네. 보통 혼자 있으면 다른 애들이 좀 무시하고. 그런 게 있잖아요. 고등학교 땐 특히. 그런 게 저를 (다운시켰어요). 그리고 좋았던 거는, 과학 과목을 좋아했어요. 실험이나 프로젝트, 이런 거 다요. 그리고 이 때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가 무얼 하겠다 하는, 그게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어요. 그런데 이때(펜으로 18세 지점을 가리킨다). 이때 엄청 좌절했어요. 입시가 끝나는 시기였거든요. 원치 않던 컴퓨터공학과를 써야 했어요. 그리곤 예비 합격자로 겨우 붙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전화해서 한 말이, 누나들이 잘 해서 (합격) 된 거니까 앞으로 잘 해라, 이렇게. 이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누나들이 잘 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이때가 작은누나가 고등학굘 막 졸업해서 돈 벌어다 주던 시기였거든요. 큰누나는 제가 자기소개서 쓸 때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엄마 생각엔 제가 되게 한 게 없다고. 이때.

그랬군요. 이 시기에 아빠는 없었나요? 계속 없었어요 아빠는. 제가 아프기 전까지. 지금도 같이 살고 있진 않아요. 집 근처 다른 곳에 사무실이랑 아빠 집이 따로 있어요. 자주 오는 정도.

연락은 아예 없었어요? 있었어요.

그렇군요.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가 민주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쳤다 볼 수 있나요? 아빠의 부재는 확실히 영향이 있었어요. 왜냐면 아빠가 나가고 엄마에게 부담되지 않게 살자. 이게 제 모토가 됐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는 잠시 손을 턱 아래에 괴곤 깊게 숨을 골랐다. 그는 이것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러나 잔잔히 내뱉은 정제된 표현. 그것은 정돈된 표현만큼이나 오랜 시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숙성의 기간 동안 그가 자랐다.

좋았던 건 실험하는 낙. 그리고 탐구하는 낙. 책 읽고. 물리 내신은 지지리도 못하면서 공부하는 거 좋아했어요. (웃음) 그리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어려운데요?

대학교 와서는요, 이렇게 침전된 감정 상태가 심하지 않고 진동하는 정도였어요. 아프기 전에는. 아, 아프기 전에는 이-렇게 됐고.

그는 다시 한번 인생 그래프의 머리를 땅으로 기울인다.

자괴감 들던. 그 시절인 거죠? 자기혐오가 고2 때부터 시작됐고, 쪽 이렇게. 이렇게 내려가죠.

그러니까 이 시기가 15년도.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네요. 그거는 제 실수예요(웃음). 아마 여기쯤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영점 가까이 있던 인생그래프를 마이너스로 수정한다.

감안하고 볼게요. 그러면 저 시기는 절망이에요? 아니면 초등학교 4학년, 아버지의 부재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비슷한 수준. 그렇지만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 시기엔 꿈도 잃었거든요.

꿈을 잃었다? 꿈은 뭐였어요? 계속 물리 공부하는 거요. 대학원도 가고.

그런데 컴퓨터공학. 적응하고 싶지 않은데 적응해야만 하는 그런 거였네요. 네.

이후론 어떻게 돼요? 그 이후로는 엄청 좋았어요. 다 좋아서 이렇게 플러스 방향으로 올라가고.

무엇이 이 시기를 행복하게 했나요? 아프면서 갖게 된 마음가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싶은 거 하고 지내니까요.

뒤는? 20대 이후요? 바라는 건 이거죠.

그는 자신 있게 펜을 잡던 손에 힘을 주고는 플러스 방향으로 수평선을 긋는다. 그 선은 더 큰 행복을 탐하지도, 행복의 기복도 없는. 수평한 행복이다.

안 올라가네요? 그냥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건가요? 안 올라가요. 그리고 지금이 최고의 상태는 아니어도, 지금 정도로 쭉 가면 좋겠어요. 올라가면 더 좋겠지만.

이게 지금의 마음이란 거죠? 지금 정도의 마음이에요. 지금 정도로만 살 수 있다면 쭉 행복하게 사는 거니까.

그런데 더 올라가진 않고? 그렇네요.

그쵸? 수정할 마음도 없지 않아요 솔직히? 네. 특이하네요. 오늘의 소득이야.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깊게 다시 뱉었다.

안 올라가요. 그렇네요.

인생그래프요, 옛날엔 어떻게 그렸어요, 그럼?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도 지금과 비슷하게 그렸던 것 같아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여기쯤 밖에 안 그렸을 거 아니에요(4학년). 그리고 그 뒤는 지금처럼 수평한 행복을 추구했을 것 같아요. 미래엔 잘 살 거라고. 행복하게, 이렇게 쭉.

지금처럼 될 줄 몰랐겠죠? 네.

그는 굴곡진 자신의 생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각 고/저점마다 시기를 적어줄 수 있어요? 이때가 2007년,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그다음에 중3, 그리고 이때가 고등학교.

고등학교 전체의 감정이 인생그래프에 반영된 건가요? 네. 고등학교. 그리고 이때가 중학교. 그리고 이렇게 올라가는 게, 앞으로.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또 잘 모르겠어요. 지금 이 세상은 이쯤(60살)에서 끊길 거라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거란 말이죠.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이러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최저점을 찍은 저 날은 언제예요? 자괴감이 저를 덮어버린 날. 15년 12월에서부터 16년 2월까지.

3개월. 이 정도면 되게 기네요. 네, 이게 왜 이렇게 됐냐면, 우울이 시작된 건 15년 8월부터였어요. 그런데 엄마가 다이어트하라고 무슨 단백질 셰이크만 먹였거든요. 그때 살이 많이 빠졌어요. 그러니까 자신감이 붙고,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다시 자신감이 생기고. ‘어, 너 하면 되네.’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아까 말했듯, 제 초자아는 잘하면 격려해줘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났더니 운동하는데 매달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죽을 것 같이 달리고.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제가 저를 죽일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그 감정을 컨트롤하느라 우울함이 찾아올 새 없었어요.

또 다른 강박이 되는 건가요? 네.

그래도 덕분에 불행이 많이 미뤄졌어요. 맞아요. 강박을 내- 참고 있다가 우울해지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요.

어떤 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인생 그래프. 다시 그려보니까 어때요? 재밌었어요.

그런데 과거랑 다르게 60을 가지 않고 인생 그래플 끊어버린 건,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저는 높다고 생각해요.

왜요? 재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구에게도 말 한적은 없어요? 네, 그렇죠.

그리고 이건 좀 미신 같은 건데요, 꿈을 꿨어요.

이것도 처음 이야기하는 거죠? 네. 직전에 종양 수치가 30이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그 수치가 60이 될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곤 검사 결과를 봤더니 정말 종양 수치 60이었어요. 그리고 다음엔 그 목소리가 ‘너 4개월 남았다’ 했어요. 그 이후예요.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누군진 모르겠어요. 그런데 꿈에 그런 말을 했어요. 저는 그래서 4개월 까진 아니더라도, 그렇게 길게 남진 않았겠다-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4개월이란 숫자 말고, 어떤 생각을 했어요? 길게 남지 않았다. 제가, 제가 길게 사는 걸 바라지 않고 있구나 했어요. 왜냐면 꿈에서 짧은 수명을 예언한다는 것 자체가 잠재의식이 그걸 알고 있단 것 같아서요. 제 안에서 그렇게.

타인의 목소리라고 생각지 않는 거군요, 꿈을. 그러니까 민주 자신 안에서 드는 생각은 다 자신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죠.

자신의 대한 인식이 되게 촘촘하네요. 이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맞는 말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내성적이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남들보다 그물을 짤 시간이 많았을 거예요.

인생 그래프 어땠어요? 살짝 보는 주마등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직접 그린 주마등이요? 네. 원래 인생 그래프의 지향점이 미래를 위한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번 그래프는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미래의 일도 더 그려줄래요? 미래요? 미래는 계속 행복하고, 수평해요.

취준, 막 이런 거 없어요? 떨어지거나 이런 거 없어요? 없어, 없어.

이혼 막. 아, 결혼을 안 할 거예요.

결혼 안 할 거예요? 네. 혼자 사는 게 행복할 것 같아요 저는. 그리고 같이 살아도 그냥, 연애하는 정도?

왜요? 결혼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연애랑 결혼의 차이는 뭐예요? 결혼을 하고 나면 가족이 된다는 거? 아마 책임감의 차이가 아닐까요?

그렇네요. 그렇다고 초등학생처럼 “책임 안 지는 결혼 할 수 있잖아!”이럴 순 없고. 심적이든 법적이든 책임감의 차이가 있겠죠. 그래서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는 거예요? 네.

더 큰 책임을 지게 되니까? 네.

(결혼하면) 민주를 책임 지우는 게 싫은 건가요, 아니면 그 반대가 싫은 거예요? 딱 저는 저를 책임지는 것 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을 책임져줄 수는 없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네. 그래서 결혼은 못할 것 같아요. 안 할래.

본인을 책임지는 것 까지는 괜찮다? 네.

그렇군요.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결혼을 하면 그 이상을 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서로가.

그럼 이민주 2세는 못 보겠군요? 그렇겠네요. 그리고 아마도 저, 불임일 수도 있어요.

(일동 웃음)

이거 항암치료 시작할 때, 그 뭐야. 그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나중에 혹시 임신 계획 있으면 정자은행에 (보관) 하라고 했는데 안 했거든요.

그런 과정이 있군요. 몰랐어요. 어떤 사람은 애를 다섯이나 낳겠다고 했다는데,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서. 그리고 만약에 결혼을 한다 해도 애는 절대 안 낳을 거예요.

민주는 미래에 대해서 닫아놓고 생각을 하나 봐요. 다시 생각해도 열려있는 느낌은 아니에요. 마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는… 아니네요. 그렇죠, 아마도 저는.

저랑 조금 다르네요. 저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왜냐면 이렇게 닫아놓아도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간인데.

열어놓아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열어 놓으면 더 불확실해지니까.

그렇네요. 과학 실험이랑 비슷한 면이 있네요. 변인을 통제하는 거예요. 그렇네요. 다른 질문이에요. 아까 인생그래프를 그리는 동안 같이 했어야 하는 질문이에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비가 너무 세게 내려서 땅이 뒤집힌 거죠 (웃음). 어떤 삶을 살았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총평 하나 해 줘요, 인생에게. 총평이요? 그동안 수고 많았구나.

수고 많았다? 네. 아무래도 안일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뭔가 계속 치열했어요. 네. 그래서 요새 더 게으르다 느끼는 게 아닐까 해요.

다른 걸 이야기해 볼까요? 언제 가장 행복감을 느꼈어요? 뭐 할 때, 뭐 먹을 때라던가. 그런 장면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건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옛날에 막 배가 아프도록 웃잖아요, 친구들끼리. 그런 장면들? 그런 식으로 웃은 일이 많아요. 최근에도 드립 치다가 막 웃고 (웃음).

하나 공유해 줄래요? 중학교 시절에 겨울방학 방과 후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억지로 제가 수업 듣는 걸 째게 했어요. 그리곤 제가 싫어하는 농구를 시켰어요. 그런데 그게 좀 행복했어요. 왜냐면… 왜였을까? 그게 되게 행복했어요.

해방감 때문이었을까요? 싫은 기억은 아니었나 봐요. 네, 그런데도 재밌는 게, 저는 농구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웃음)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방학중에 기숙사, 외박 써놓고 집에 안 가고 친구들이랑 맥도널드에서 밤새 얘기하고 그랬던 게 생각나요.

어떤 장면이 떠올라요? 맥도널드에 셋이 앉아 있던 장면이 생각나요. 남자애 한 명이랑 여자애 한 명 이렇게. 더 말해야 돼요?

더 없어요?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그러게요. 네. 그런데 이런 질문이랑 비슷하게 휴먼즈 오브 서울 후기 인터뷰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거기서도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 행복했던 순간이 있고, 언제였냐는. 저 그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렸거든요.

그때는 뭐라고 했어요? 적당히 얼버무렸던 것 같아요.

하나만 더 얘기해줘요. 하나요?

네. 알겠어요. 어디 보자. 아, 딱 고등학교 최종 합격 났을 때. 저는 그게 오후 10시에 결과 발표가 나는 줄 알았어요. 요일도 생각나요. 그때가 수요일이었어요. 학교 가는 날. 저는 그래서 친구한테 제 수험번홀 알려줬어요. 그 친구가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오전 열 시쯤 그 친구가 저를 찾더니 딱 한마디 했어요. 민주야 너 합격이야.

기분 좋았겠어요. 네. 그땐 정말 순수하게.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정말 좋았어요.

같이 본 친구는 어땠어요? 아, 아니에요. 그 친구는 그냥 같은 반 친구였어요. 그 친구는 과학 고등학교를 응시하지 않았어요. 그냥 아이패드 있어서. 그냥 어, 뒷자리에 앉은 친한 친구요.

(웃음) 이름 없어요 이름? 있어요, YY라고. K.

친구 이름 발음하기 되게 어렵네요. 그래서 애들이 여비라고 불렀어요. 어렵다고.

재밌네요. 아, 있다 있다. 맞아 맞어.

네? 중학교 졸업식 때. 그때 제가 감수성에 젖어 있었거든요. 아, 이제 졸업하는구나 하고.

민주한테 감수성에 젖는 때가 있었어요? 있어요! (같이 웃는다) 계속 들어봐요. 그때 졸업장을 담임 선생님이 직접 나누어 주셨어요. 그런데 그 졸업장을 받는 거. 그때 제가 출석번호가 남자고, 뒤에 있어서 계속 다른 친구들 (졸업장) 받는 거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다들 졸업장을 하나씩 받는 걸 보는데, 그런데 다들 무사히 졸업하는 거니까 축하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 혼자 박수를 쳤어요.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이 계속 손뼉 치는 저를 보고 웃어요. 그래도 꿋꿋이 쳤거든요 이렇게.

그는 손을 모아 박수를 몇 회 쳤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니까 모두들 박수를 쳐 주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내가 되게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민주 말고는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어요? 네, 그러더라고요. 막 “민주야 너무 웃겨.” 이렇게나 하고. 그런데 제가 졸업장 받을 때가 되니까 다 같이 박수 쳐주고.

그 뒤에는 박수 안쳤어요? 다른 친구들. 네, 또 특이하게 안치더라고요.

군중심리 때문에라도 뒤에는 또 다 같이 쳐주는데. 그러니까요.

중학교 어디였어요? 연희중학교라는 곳 이예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있는 곳. 연희동 아닐 거예요 아마.

연희중학교요? 고등학교가 어디라고 했죠? 한성 과학고등학교.

기숙사는 거기에 있고요? 네, 학교에.

군부대 있고, 시 외곽으로 넘어가는 거기 아니에요? 독립문도 많이 봤겠어요. 네.

독립문 하고, 연대(연세대학교). 네. 막 학교 앞에 있는 버스 타면 신촌까지 올 수 있었어요.

독립문에서 많이 놀았겠어요. 그곳에선 많이 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독립문 근처 공원 가봤어요? 그렇긴 했는데 많이 놀진 않았어요.

그래도 또 독립문에서 언덕 하나 넘어가면, 종로. 거기는 어때요? 종로도 잘 가지 않았어요.

주로 학교에 있었군요? 네.

그런데도 좋은 기억이 많네요. 그러게요. 가끔 생각나고 그래요.

좋은 이야기 해봤으니까, 다른 이야기 해 볼게요. 자신이 언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불행하다? 음.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요? 아무래도 한 부모 가정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엄마가 그걸 체감하지 못하도록 해줬어요. 그게 행운이었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났어도 당연한 건데. 난 참 행운아다-하고 생각했어요. 불행하다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제가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 많이 하셨거든요, 엄마가.

그렇군요. 반은 실제로 그렇다 느꼈고, 반은 그렇게 억지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주 없는 세상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혹시? 제가 없는 세상이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달라질 게 있을까요? (웃음) 왜냐면 제가 없는 세상은 저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요새는 생각을 좀 해봤어요. 뭐냐면, 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없어진 이후에 (저를) 빨리 잊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기일이 되면 ‘얘가 어땠었지…’하고 찾아오는 건 괜찮아요. 오래 슬퍼하지 않고, 저를 빨리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민주는 기대 수명이 다른 사람들보단 짧잖아요. 60세니까 (웃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민주를 추억할 확률이 높을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렇겐 생각해본 적 없는데 (웃음).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민주를 기억할 날이 더 많겠죠. 아, 나 60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구나.

네. 맥스로 당겨 살아도 60인데, 남들은 막 80, 100살까지 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민주는 빨라봐야 70이고. 그렇죠? 그런데도 내가 없는 세상에 남는 이들은 나를 빨리 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네. 빌려온 표현을 쓰자면, ‘강물이 흐르는 걸 보면서 슬퍼하는 사람이 없듯이.’ 내가 죽는 것도 그냥 그렇게. 슬퍼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들이라 하면 누구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해 주는 사람들. 두 집단이 다른 경우도 있어요? 아니요.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요? 옛날에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도 구분을 짓고 그렇진 않았어요.

그렇군요. 왜 (친구들로부터) 빨리 잊히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냥요. 저의 부재를 슬퍼할 것 같아서요.

민주의 일기장에서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본인은 너무 큰 부담 덩어리’라는 표현을 자주 해요. 그중에 가장 크게 마음이 갔던 부분이 뭐냐면, 2007년에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의 기록이었어요. 그때 민주가 일기장에 “어머니는 내가 아직 몰라도 될 것을 일찍 알게 하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에 정말 노력하셨고, 그 노력은 성공하셨다”라는 말을 해요. 네.

그렇단 얘기는 어머니의 ‘노력’에 대하여 모른 체 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어머니의 노력을 몰랐는데 크고 나니 알게 된 건가요? 모른 체 하고 있었어요, 거의. 그런데 또 제가 정말 모르는 부분도 있었어요. 경제적인 면이 그랬죠.

경제적인 면에서 알게 되었던 사실은 뭐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어디 놀러 갔다 온다 하고 사실은 일하러 다녀오시고. 이런 거요.

그렇군요. 경제적으로 불안정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신 것 외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신 건 또 다른 노력이잖아요. 그 노력을 성공했다고 민주는 이야기한 거고.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너무나도 큰 부담 덩어리란 표현을 같이 써요. 그래서 일기장의 민주는 그런 부담 덩어리인 자신을 의식하면서, 어머니의 노력까지도 함께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줬어요. 참 무거운 감정인 것 같아요. 네. 저는 그렇게까지 무겁게 느껴지진 않아요. 이게 생각이 오래되어서 그 무게가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는 걸 수도 있어요.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가족의 상황을) 이야기한 적은 절대 없었어요. 아버지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느냐 이런 것들은 절대 꺼내지도 않으셨죠. 다만, 엄마가 힘들어하는 장면을 몰래 보거나 이런 식으로 그것을 확인했던 거예요.

그리고 또 당시에는 “그래도 너희 아빠다.”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니까. 지금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아빠를 미워하지만은 않게끔 노력하고 계신 거죠.

그렇군요. 아마 그때 쓴 글도 막연하게 짐작했던 걸 쓴 거라서.

그러면 딱 하고 꺼낼 수 있는 사건은 없었던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가정 상황을 숨기려는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마 성격이 또. 그렇게 세심하게 감정적으로 신경 써주시는 분은 아니셔서요. 그냥, 내가 그렇게 혼자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이 시간은 민주가 느끼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니까요. 현재 느끼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면 돼요. 어머니가 가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노력을 하셨고. 그렇죠.

같이 성장한 누나에게는 그런 게 느껴지진 않았나요? 어떤 점이요?

아버지가 계시지 않다는 거를 민주에게도 의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누나들이 노력한다거나 하는 거요. 아무래도 당시 누나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이었으니까. 절 위해 그렇게까지 생각해주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그런 역할을. 누나 둘 다 사춘기를 지독하게 겪었어요. 둘 다.

민주가 그 사춘기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을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내가 더 잘 해야겠다. 이런 연장선이 됐죠.

잘 모르겠어요. 일 인분, 일 인분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더 잘해야겠다? 네. 왜냐면 큰누나가 엄마에게 있어서는 첫딸이기도 하고, 장녀기도 하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셨거든요. 그런데 큰누나는 그게 또 부담이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중학생 시절에 큰누나가 집을 나가서 일을 구하고, 그런 방황의 시기가 있었어요. 엄마는 그 일로 힘들어하셨죠. 그래서 저는 공부를 더 잘 하고, 삐뚤어진 모습 보여드리면 안 되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언제요? 제가 중학교 때니까. 누나는 당시에 스물둘, 스물셋이었어요. 우리 누나, 고등학교 때는 엄청 말 잘 듣는 딸이었어요.

작은누나는 어땠나요? 그 시기(사춘기)의 작은 누나는, 인사만 해도 저에게 욕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성격이었어요. 저는 누나가 싫지 않았는데, 본인이 되게 날카로운 상태였어요. 그래서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누나는 이유 없는 반항. 이런 느낌?

놀랐던 적은 없어요? 또는 작은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사춘기가 저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당시 민주는 사춘기가 아니었고요? 보통 중학교 시기를 사춘기 기간 안에 포함하잖아요. 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나는 그냥 사춘기일 수도 있겠다. 사춘기구나. 하고 더 이상 생각지 않은 거예요? 네. 왜냐면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너무 날카로워서 잘못 건드리면 되례 제가 베일 것 같았어요.

그랬군요. 민주는 작정하고 공부를 했겠네요. 작은누나가 일인분을 위한 반면교사가 됐던 건가요? 큰누나 둘 다. 아니 아빠까지 셋이요. 셋 다 (반면교사가) 됐던 거죠. 아무래도.

그렇군요. 지금 이야길 들어보면 그 시기의 가족은 세 사람과 민주, 민주 어머니 이렇게 두 편으로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아요. 상처를 주는 쪽과 받고 자라는 쪽. 이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그렇진 않아요. 왜냐면 저는 각자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형은 제가 이야기하는 말로서만 사태를 파악하지만, 저는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요. 그러니까 반면교사로 삼을 일은 그것으로 삼고, 이해가 가는 부분은 충분히 수용하는 식으로 지냈어요. 선은 없어요. 굳이 있다면 저랑 가족들. 지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요? 네.

왜 가족들의 범위에 민주가 없을까요? 음.

제가 말을 잘못한 걸까요? 가족들의 범주에 제가 없다기보단, 제가 인간관계를 대할 때 누구든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팔을 둥글게 모은다) 울타리를 치고, 이 안엔 나만 있는 곳. 자기만 있는 곳, 그리고 다름 사람이 존재할 곳.

울타리를 친다는 것이, 벽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민주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항상 그랬었나요? 항상이라는 건 언제부터일까요? 항상이라는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 전에는 솔직히 별생각 없이 지냈어요.

중3 때 어떻게 울타리가 있다는 걸, 어떻게 울타릴 쳐야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 혼자 생각해야 할 일과 친구랑 나누어도 될 일이 있단 걸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이런 울타리랑, 이런 울타리랑.

사건이라는 게? 사건이라는 건 없었어요. 솔직히.

그런데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다? 그렇죠.

교에서 남는 우유를 집으로 가져가서 먹었다던 시기는 이때 얘기예요? 아, 그건 초등학교 때.

아, 저는 중학교 시기가 한창 성장기여서, 그땐 줄 알았어요. 울타리 얘기를 마저 하자면, 그것은 중학교 때부터 자아 형성이 되기 시작해서 그런 거군요. 그렇게 된 거죠. 교과서 마냥, 시간이 지나서 벽이 생겼다. 이런 거죠.

2월 26일… 이렇게 날짜로 말하면 전 모르죠.

이게 첫 빡빡이가 된 날이에요. (웃음)

사실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기도 하잖아요, 20대라는 게. 뭐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머리요? 음. 그때는 뭐. 꽤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당장 건강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렇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은 빨리 머리가 자랐으면 좋겠어요.

신경 쓰이는 건가요? 자의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건가요, 아니면 타인이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가요? 굳이 구분하자면? 제가 신경이 쓰이는 거죠. 한 9:1 정도로. 다른 사람이 신경을 쓰는 것도 결국 제 문제가 되니까, 제가 신경을 쓰는 거겠죠, 천상.

기본적으로 자아가 단단하군요. 어떻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자아가 단단하다는 말이요. 맞는 말 같아요.

투병을 하다가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장 심했을 때가, 그 시기가 4차, 마지막 항암이었어요. 그 항암제가 센 거였어요. 보통의 항암제는 두, 셋째 날까지도 아무 느낌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 날은 약이 딱 들어왔는데 숨이 턱 하고 막히더라고요. 메스꺼워지고. 그 상태로 약물 다 맞고 오로지 빨리 퇴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퇴원 수속하고 집에 왔어요. 그런데 24시간 만에 열이 39도까지 오른 거예요. 머리는 핑핑 돌고. 그래서 병원에 다시 왔죠. 그런데 열이 5일 동안 떨어지질 않는 거예요. 입 전체는 구내염이었어요.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영양제 달고 살고, 머리는 계속 아프고, 기침도 하고.

기침은 왜 힘들어요? 구내염이 난 상태라서 더 힘든 건가요? 지금 이야기하면 조금 웃기긴 한데, 항문 쪽 그곳이 약에 영향을 받는 기관이거든요. 그래서 항암 치룔 받으면 그곳이 약해져요, 붓고. 그래서 좌욕도 하는데, 기침할 때 엄청 아파요.

정말 온몸이 아픈 거네요. 네. 병원에서 힘들었을 때가 이때였고, 집에서 힘들었던 건 9월이었어요. 8월 말에 감기가 걸렸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구토하고 두통이 심해서 병원엘 갔는데, 검사하니까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종양 수치가 이상해서 항암치룔 했거든요. 치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그때가 힘들었죠.

아, 또 있어요. 감기 걸리고 구토 날 때 스테로이드를 맞거든요. 그런데 그 약의 부작용이 뭐냐면 다리를 가만히 못 두는 거예요. 막 움직여야 돼요. 그래서 내내 산책하고, 병실 빙빙 돌아다니고. 그런데도 밤에 누워있질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뒤척였어요.

왜요? 떨려서요? 아니요. 다리를 가만히 두질 못하는 거죠. 계속 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여야 되는 거예요. 주물러도 낫질 않고. 한참을 그랬어요. 일주일 정도.

다리만 분리된 것 같이 욕구가 생기는 건가요? 분리됐다기보다, 정말 가만히를 못 있겠는 거예요. 움직이고 싶다고 뇌가 계속 명령해요.

이렇게 이야길 나누다 보니 타임라인이 그려지질 않아요. 1차 항암부터 4차 항암까지, 그 시기를 말해줄 수 있나요? 2016년 3월이 1차 항암. 3월 말에 2차. 2차 항암치료 이후엔 응급실에 입원했어요. 열나서.

그 전에는 통원했었나요? 1, 2차는 모두 입원했어요. 약 4-5일 정도? 그리고 3차 항암 치료가 4월 중순이었어요. 1차와 3차 항암 치료는 약해서 3차 때는 병원을 그리 자주 가진 않았어요. 4차가 5월, 6월 정도? 감기가 걸린 건 9월이에요. 그 사이엔 방사선 치료가 있었고, 그 치룐 7월 중순에 끝났어요.

병원 많이 다녔네요. 방사선 치료 땐 매일매일 통원했어요. 방사선은 치료 시간이 짧거든요. 치료할 때 머리랑 척추랑 부위를 나누어서 하거든요. 머리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척추 방사선 쐴 때 메스꺼워가지고, 어휴.

그게 기계 들어가서 누워있어요. 그 사이에 방사선을 쪼이는 건가 봐요. 척추는 전이되지 말라고 쬐는 건데, 척추에 골수가 있으니까 몸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기분은 어때요? 아무 느낌도 없어요. 아무 느낌도 없이 치료받고 나오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메스껍고, 음식 냄새 맡으면 헛구역질하고.

맞아요. 병원에 있다가 보면 병원 음식 냄새가 자극적으로 느껴져요.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저자극 음식인데도 엄청 자극적이라고 느껴져요. 제가 또 후각이 예민해가지고.

2차 때도 쉽지 않았나 봐요, 1/3차 항암치료가 약했다고 하는 걸 보면. 2차는 4차 항암 때랑 비슷했는데, 강도가 달랐어요. 2차 때 처음 응급실을 갔거든요. 열나서요. 그때 열나서 몸이 덜덜 떨리는 걸 처음 겪었어요. 이온음료를 마셨는데 속이 안 받아서 다 토했어요. 되게 놀랐어요 그때는.

스스로요? 네. 막 멈추지 않고 쏟았어요. 저때도 구내염 있었어요. 구내염은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로 생겨요.

몸을 많이 떨었나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요. 덜덜덜덜덜. 열나서 떨리면.

그렇군요. 그리고 더워졌다 추워졌달 반복해요. 그래서 핫팩으로 몸을 덮었다가, 다 던지고. 다시 끌어안고. 그걸 계속해요.

아프니까 밤새 하는 거겠어요? 네. 제가 5일 동안 아팠으니까, 계속 그랬어요.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거죠.

감기가 두 번 왔네요, 그럼. 5, 6월 괜찮다가 9월에요. 네. 7월에 방사선 치료 끝나고 되게 괜찮았어요. 그래서 내년에 복학 가능하겠다 했죠. 그런데 감기에 걸려서 되게 상심했어요. 아파지니까 마음도 심란하고, 예민해졌어요. 감정 상태가 육체에도 영향이 바로 미쳤어요. 기분이 좀 나쁘면 다 토하고 그랬어요. 신기했어요.

감정 표현에 기복이 생겼어요? 주변에 짜증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주변이라 하면? 가족들. 우울하다, 이렇게요. 그렇게 9월에서 10월 중순까지가 지났어요. 10월부턴 상태가 낫기 시작했고, 11월에 좀 돌아다니기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12월에 종양 수치 확인차 가족들이랑 병원엘 갔더니 재발 판정을 받은 거예요.

가족들 안에, 아버지가 포함돼요? 네, 들어가요.

아버지가 등장했을 때, 민주가 느끼는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저에게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내색하지 않으려는 그런 느낌?

보여요? 아니요. 나중에 들어서 알았어요. (가족들이) 많이 울었다고.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음. 안타까웠다고 해야 할까요?

왜 안타까웠어요? 내가 아닌 우리 가족 중 하나가 그렇게 되면, 되게 슬프고 힘들 것 같으니까요. 그 사람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겠구나 생각했어요. 가족들도 나 때문에 같은 감정을 느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어요.

죽을지도 모르는. 죽을 가능성이 높은 병에 걸린 사람이 가족이다. 이 사실 자체가 되게 힘들게 다가오는 거거든요. 그것을 누나들이나 아빠가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안타까웠죠.

아빠의 등장에 가족들이 많이 운 게 아니군요. 가족들이 이 병을 앓게 된 민주를 위해 울었다는. 제 앞에서만 안 그랬죠.

아버지의 등장에 대해서는요? 아버진 이 일이 아니어도 왕래가 없진 않으셨어요. 그래서 아빠의 등장에 특별할 건 없었어요. 연락이야 계속했고.

누구에게요? 따로따로 했던 것 같아요. 작은누나랑은 확실히 (연락) 했고, 저랑도 가끔 했고.

아빠는 우리랑 아예 떨어져 산 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 채 살고 그런 건 아니었죠.

소식이 끊기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네. 그렇진 않았어요.

원망한 적 있어요? 원망은 했었, 했었지요. 아빠를 안 좋아했었어요.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 할 걸 내팽개치고 나갔다는 것 때문이에요. 그리고 본인이 어떤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에 충실해서 혼자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 돈 벌어다주겠다고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요. 지금은 고맙죠. 병원 생활하면서 보호자로 함께 있어주고. 아버지 차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투병하면서 계속 차로 실어다 주시고, 그런. 그런 걸 되게 잘 해주세요 아빠는. 다른 사람 보살펴 주는 일이요. 속이 메스껍다 말하면 휠체어 태워서 바깥바람 쐬게 해 주시고.

그렇군요. 1인분 이야기를 했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생각이 드는 건.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아빠 역할을 잘 해주신다는 거예요. 경제적인 면만 빼고. 그것도 본인이 뭐야, 그게 있으세요. 예전에 채워주지 못했던 마음 한꺼번에 보상해주려는. 그래도 아빠 역할은 충실하세요.

민주는 아빠와 최근에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와 여행도 다녀왔어요. 이번 여행. 아빠랑 둘이 다녀온 거, 엄청 잘 갔다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거예요. 우리한테 필요한 건 돈 보다도 같이 있어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마음과 달리 아버지는 그냥 나가버리셨죠.

지금은요? 지금은 그냥.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도 함께 있어주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아빠랑 엄마랑은 정말 안 맞거든요. 두 분 어떻게 결혼하셨는지 몰라. (웃음) 그래서 지금은 이런 관계가 딱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당시에는. 당시에는 우리와 함께 있어주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죠.

그렇군요. 아버지는 왜 다시, 계속 민주를 찾고 연락하는 걸까요? 어머니 말대로 자식이고, 아빠라서 그런 걸까요? 그렇겠죠.

그러면 지금은 그런 위치들. 그러니까 가족들의 현재 궤도가 가장 적당한 거리이고, 안정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번 질문은 좀 웃기다 생각할 수 있어요. 민주에게 암은 어떤 존재인가요? 암을 통해 얻게 된 게 있다면, 역시 암이 제 일이겠죠. (웃음) 농담이고, 여유죠, 여유. 계속 말했듯.

여유라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건가요? 아니면 민주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진 건가요? 그런 것보다 좀. 마음의 여유가 커졌어요. 여전히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그냥 좀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묘사해 줄 수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뭔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도 ‘그것밖에 못 하겠냐’하고 스스로를 책망했을 거예요. ‘놀면 뭐하냐’라고. 그런데 지금은 제가 놀고 있으면 ‘그래, 놀아라.’ 해요. 그리고 열심히 일 하면 ‘그래, 잘 하고 있다’하고 칭찬해요.

스스로에 대해 관대해졌네요. 네.

건강해지면, 예전의 민주로 다시 돌아갈까요? 네. 완치가 되면 다시 빡빡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 얘기를 한번 해 볼게요. 민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친구와 기억 같은 게 있나요? 많은 영향이라…

여러 명이어도 좋아요. 음. 특별히 많은 영향을 받은 친구는 없어요. 왜냐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더라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면요? 제가 이걸 영향받은 게 아니라 배웠다. 이런 식으로? 제가 친구에게 배운 거죠.

왜일까요? 그냥 제가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 물든다는 말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겠네요. 물든다? 네. 저는 친구와 영향에 대해서 그렇게 물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 가장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던 친구와 그런 사건은 뭐가 있었어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누가 얼마나 강한 자극을 주었냐의 문제라기보다, 저의 주변은 그냥 비슷한 수준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면, c라는 친구랑 올해 4월쯤 메신저로 대화를 했어요. 그때 주제가 저와 C를 아우르는 친구들 인상 이야기였거든요.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제가 물었죠. “그럼 나는 어때?” 그랬더니 C가 “너랑은 드립밖에 안쳐봐서 모르겠다” 했어요. 그게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왜죠? 저는 C에게만큼은 말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마음을 많이 열었죠. 그런데 그런 친구에게 조차도 저는 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걸 깨달은 거죠. 내 얘길 거의 하지 않았구나, 나는.

그렇군요. 제가 아는 C는 조금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긴 해요. 그런 걸 감안하고서라도 놀랐다는 거죠? 네.

그런 생각이 들었군요. 지금 저는 C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제가 민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은 타인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아까 가장 친한 친구는 중학교 친구라고 했죠? 그 친구와는 쌓인 추억이 많을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왠지 민주를 잘 알 수도 있겠죠. 저와 C는 대학에 와서 알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겪은 민주 성격으로 추측하건대, 아마 C도 제가 (민주를) 아는 수준보다 조금 더 아는 수준으로 민주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맞는 말 같아요.

자기 얘기. 잘 안 나오죠? 네.

맞아요. 잘 안 나와요. 저 역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이야길 하고 싶은데. 어려워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내가 좋아하는 것, 사모하는 것. 그런 게 다 저인데. 저는 그런 나를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아무래도 저는 친구들 사이에선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에요.

그렇죠. C가 “드립만 해서 아는 점이 없다”라고 했을 때, 많은 것을 느꼈겠어요. 여러 가지 감정을. 네. ‘내가 참 내 이야길 안 했구나.’ 했죠.

인생에 있어 후회할만한 행동을 했던 적 있나요? 후회될만한 행동이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행동을 한 적 없다? 네.

어떻게 그래요? 살면서 실수가 없진 않았겠죠. 그런데 받아들이기는, 제가 만약 후회할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 받아들여요. 결과적으로 후회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실수를 했을 지언정이요. 네. 받아들이기 나름인 거죠.

민주라는 자아가 한 번 더 필터 한 후에 수용하는군요.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요. 그렇죠.

현상을 보고, 검열을 한 후에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네요. 앞에 자신이라는 체가 있고, 다른 자신은 그렇게 걸러진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는 건가요. 맞아요. 말하면서 느끼게 되네요. 후회할만한 것도,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것도.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렇기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후회하지 않아요.

벌써 네시 반이네요. 약속이 다섯 시라고 했나요? 시간 빨리 갔죠? 되게 빠르네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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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민주 인터뷰”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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