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주 인터뷰(2)

이민주는 1996년, 첫눈이 내릴 즈음 태어났다. 한성과학고를 졸업했다. 그는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 배아세포종이라는 암에 걸린다(2016년). 이듬해 2월 28일 오후 10시 58분 별세한다(2017년). 배아세포종은 전체 뇌종양의 1%를 차지하는 병으로, 신생아에서 일곱 살까지 그리고 십 대와 이십 대 초반 사이에만 발생한다. 이 질병의 현재 밝혀진 외부적 원인은 없다. 본 기록은 그가 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재발 판정을 받는 사이에 남았다. 인터뷰엔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진단 결과 종양의 위치가 수술이 가능한 부위에 있었고, 인터뷰 직후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수술은 잘 안됐다’. 본 기록은 그와 나눈 대화를 녹음하고, 그것을 수기로 옮겨 적어 편집한 것이다.

1편에서 이어짐.


금 아무 단어나 다섯 개만 말해 봐요. 나비.

그리고 또. 낮잠.

피곤하구나? (웃음) 식물.

좋아요. 비슷한 거 말하는 건 그러니까, 초콜릿. 그리고 바다.

바다요? 네. 나비, 낮잠, 식물, 초콜릿, 그리고 바다.

왜 저 다섯 개가 떠올랐어요? 나비는 처음에 듣자마자 바로 생각났어요. 낮잠은 나비랑 함께 ‘나’로 시작하는 게 똑같아서. 그리고 ‘나비잠’이란 노래가 있어요. 최근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비 하니까 잠이 생각난 것 같아요. 뮤빈 별로야, 노랜 참 좋은데.

식물은 왜요? 아까 화분 보고 생각났던 게 아닐까요? 형네 집엔 식물이 많아. 그리고 단어들을 떠올린 게 최대한 전 단어들과 연관이 없는 걸 떠올리자 했어요. 그리고 초콜릿 먹는 걸 잠깐 상상했는데, 그래서 초콜릿이 떠올랐어요.

초콜릿 좋아해요? 좋아하죠 초콜릿.

저는 초콜릿 특유의 찐득한 식감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초콜릿이 좋군요. 네.

바다는요? 내일 가서? 바다는 문득 생각났어요. 이유 없이. 뭐, 초콜릿이랑 상관없는 게 있나? 하면서.

민주는 인터뷰 다음 날 친구들과 바다를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아빠랑 같이 다녀온 경험도 있고 해서.

물가를 좋아하나 봐요. 언제부터 좋았어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냥, 넓고 탁 트여서?

그냥 끌리는 건 가요? 그 흐르는 느낌이 마냥 좋아서.

벌써 작년이네요, 11월 28일, 민주가 어떤 일기를 쓰냐면, “감기에 걸렸다. 잘 듣는 기침약이 현탁액이라 너무 싫다.” (웃음)

“… 그렇게 집에 오고 싶었는데, 막상 오니 특별한 게 없다. 그냥 집이다. 그냥 집.” 지금도 계속 그냥 집이에요? 그렇죠. 아무래도. 그냥 쉬는 공간. 피아노 치는 공간. 저때보다 지금이 더 자유로운 집이지 않나 싶어요. 저때는 빨리 나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자.

병을 얻기 전에 집이라는 공간과 이후의 공간. 어떻게 바뀌었어요? 옛날엔 아무래도 밖에 있는 시간이 집보다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쉬는 공간, 이런 생각이 많았죠. 그냥 자고 가는 공간. 아, 그리고 제 방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이번 병 생기기 전까지요. 그래서 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느낌도 있어요. 아프고 나서는… 음. 아프고 나서가 더 쉬는 공간이구나- 왜냐면 병원에서는 치료받고 쉰다고 해도 외부고, 불편하고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런데 집은 편하기만 하고, 맨날 밥 있고. 그런 공간이에요. 그리고 요샌 외출이 잦아졌어요. 그래서 집은 외출 사이사이에 들르는 거점 같은 느낌이에요.

집은 민주의 느낌에 따라 형태가 계속 바뀌는군요. 네. 쉬는 공간이란 점은 바뀌지 않았지만요.

계속 좋아했던 거예요, 집을? 네. 제가 집돌이예요 집돌이. 여행 안 좋아하고.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네. 외출도 원래 한 달에 한 번만 있고, 학기 중엔 거의 없었어요. 왜 약속만 잡혀도 피곤해하고, ‘이걸 나가야 하나’ 그랬어요. 약속 날 아침엔 아프다고 하고 만나지 말자고 할까. 이렇게 생각한 적도 많아요.

달라졌어요? 네. 예전엔 피곤하고 그랬는데요, 요즘엔 친구 만나고 교류하고. 이런 게 좋아졌어요.

조금 밝아진 건가요? 어때요? 글쎄요.

(병을) 앓기 전의 민주와 지금의 민주가 다른 점이 뭐예요? 성격적으로요. 대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저를 조금 더 많이 보여줘요. 제 이야기를 더 하고, 제 기분에 대해 말하고. 보통 들어주기만 했었거든요. 그게 달라진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아니면. 아니요. 딱히 계기랄 건 없었어요. 원래 계속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어요. 내 이야기를 내가 너무 안 한다-하고. 옛날부터.

그럼 시기적으로 보면, 그냥 이 나이가 병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됐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생각만 많았지 바뀌지 않았을 거예요.

계기 아닌 계기가 됐네요. 그렇죠.

민주에게 소중한 거 세 개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세 개? 소중한 거 세 개요?

네. 만약 네 개면 하나를 덜어야 하는 거죠. 친구요.

친구. 그리고 피아노. 다른 하나 어떤 게 있을까, 잘 안 떠오르네요. 가족? 그래요 가족.

네 번째를 하나 더 생각한다면? 그러면, 나? (웃음)

친구랑 피아노가 가장 먼저 나왔고, 가족. 마지막으로 나. 네. 피아노는 ‘꿈’이라던가 ‘목표’같은 단어로 대체해도 될 것 같아요.

네. 왜 피아노예요 지금은? 지금은요, 제일 직접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피아노는 계속 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 학원을 끊게 된 이후로 10년을 못 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 들어가면 동아리에서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동아리가 생각이랑 달라서 많이 실망했죠. 그런데 이번에 병 생기고 나서 느꼈어요. ‘아, 나 정말 피아놀 좋아하는구나.’ 이렇게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대로 1년 쉬면서 한예종을 목표로 피아노를 칠까 하는 생각.

정말 즐거운가 봐요. 네.

어떻게 보면 소중한 거 두 개를 빨리 이야기했잖아요? 네.

나를 제외하고 세 가지를 물어봤으니까, 세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왜 소중해요? 피아노가 좋은 이유는 방금 이야기한 게 다인 것 같아요. 친구가 소중한 이유는, 친구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저에게는 특별히 더 소중한 것 같은 게, 제 성격이나 자아 형성에 있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혼자 생각하고 자아 형성하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친구들 이야길 들어주고, 얘기하고 그러면서 (자아 형성을 했어요). 왜, 전에 소시오패스 친구 있다고 한 적 있죠? 그런 친구들 만나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나를 보이기도 하면서 저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친구가) 소중해요.

친구를 통해서 자신을 아는 것. 그건 예전부터 민주가 자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었을까요? 네. 자각치 못하던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자각하고 나서는, 음. “지금 내 자아가 완성되는 중이군”이러진 않았고, 돌이켜보니까 일련의 우정으로 내 자아가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번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필터 같은 게 있었던 걸까요? 민주라는 필터가. 필터도 아마 성장하면서 생긴 게 아닐까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아, 필터 없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그러면 (필터가) 없던 시절에는 영향을 세게 받았던 날이 있었던 건가요? 네 맞아요. 그런 게 없었던 날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였는데, 친구 중에 되게 안 좋아하던 친구가 있어요. 어느 날 걔가 저에게 말을 되게 심하게, 우리가 싸운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막 시비를 걸고 막 함부로 했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필터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 저를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어요.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애였는데, 얘가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그런데 나중엔 싫어할 거면 싫어해라, 그래라 이렇게 바뀌었어요.

필터가 없을 때는, 필터 없을 때요? 그때는 얘가 나에게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유가 없잖아요, 사실.

(친구가) 어떻게 싫어했어요? 기억해요? (걔가) 사실 저를 싫어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싫어할만한 짓을 하고, 왜 때리고 도망간다던가 하는 장난 있잖아요. 그게 좀 심했어요. 말을 좀 짓궂게 한다던가. 그런데 기억은 잘 안 나요. 아무튼 그랬어요. 지금은 또 그 친구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지금은 어떤데요? 참 착한 애 같아요.

그래요? 당시엔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지 착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연락돼요? 네.

그렇군요. 가족이 소중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래요? 가족은, 좋은 일도 있었고 싫은 일도 있었지만, 저를 지탱해줬어요. 계속. 좋던 싫든 간에, 서 있기 싫든 간에, 앉아 있고 싶든 간에 계속 저를 서 있게 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방금 말한 것 중 우선순위가 있을까요? 친구, 피아노 가족. 친구, 가족이 일 번이고, 피아노가 2번인 것 같아요.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친구랑 가족이랑은 같은 순위? 네. 저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친구라 생각해요. 애인이 아니라면.

반대로 말하면 다 가족인가요?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좋든 싫든 간에 지내야 하는 사이잖아요. 강제로 맺어진 친구라는 느낌? 그런데 친구는 강제로 맺지 않죠. 그래서 결혼도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친구였던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거니까. 되게.

우정을 생각하는데 필터가 필요하게 됐듯,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 이미지가 달라졌다면. 그런 계기가 있었을까요?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일단 처음엔 아빠가 집을 나가고부터였어요. 제가 원래 믿고 있던 가족이란 게 바뀌었어요. 두루뭉술하던 구름 속을 누가 손을 넣고 헤집은 것 마냥 또 형체 없이 그 모양이 바뀌었어요. 원래 엄마 있고, 아빠 있고. 그런 게 가족이라 생각했었거든요. 또 막상 그렇게 되니까 두 분 다 있지 않는 집도 많더라고요. 그때 ‘이것도 평범한 거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후엔, 아프면서. 이번에 아프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래서 그때 다시 한번 가족을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요. 반대로 저도 이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프면서.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아니요. 사건이 있다면 제가 암에 걸린 게 사건이겠죠.

민주가 가족들을 소중하다 생각하게 된 것은요?

휴대폰이 울린다

잠깐만요. 이거 진동으로 바꾸고. 됐다.

음. 제가 아프면 가족들이 힘들어해요. 그걸 보면서 제 감정도 안 좋아지는 걸 느꼈을 때요.

그렇군요. (가족들이) 소중하다 말을 했지만, 전에는 ‘아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런 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픈 걸 보고 가족들이 슬퍼하는데, 그걸 보면서 제 마음도 안 좋아지니까. 가족들이 정말 내게 소중하구나 했어요.

네. 민주가 60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으니까, 만약에 60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뭘 이루, 무얼 했을까요? 결혼은 했을까요? 결혼은 안 했을 것 같고.

그래요? 여전히? 네. 결혼은 어쩌면, 모르겠어요. 애는 확실히 없을 것 같은데요.

애는 없어요? 애는 확실히 없어요. 애를 키운다는 건 상상이 안돼.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가 죽어서도요. 제 무덤 같은 곳에요, 죽어서도.

질문의 요는 60세에 무엇을 이루었을까에요. (웃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 제가 연구를 하고 싶어서, 60살에는 연구로 이름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교수가 돼도 막 학생들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연구도 잘 하고 싶어요.

교수들은 학생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지 않죠. 문제는 연구도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일적인 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요? 어떤 게 있을까요? 형은 뭐가 되고 싶은데요?

글쎄요. 저는 그냥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또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화낼 때 화 내고, 슬퍼할 때 슬퍼하고, 좋을 때 좋아했다 이 정도로 기억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렇구나. 저는 늙어서도 애늙은이인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지금도 생각이 많아요. 그래서 애늙은이란 소릴 많이 들어요. 그런데 내가 한 60이 되면 아, 쟤 100살 정도 되는 사람 같지 않냐? 하는 소릴 듣는 거죠. 예전엔 애늙은인게 저의 개성인 줄 알았거든요. 요새는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인 것 같아요.

계속 (정신연령이) 뒤에 있는 게? 네. 나이보다 더 많이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이제는 조금 더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어요. 가족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을 할 거예요. 엄마, 큰누나, 작은 누나, 그리고 아빠까지. 민주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평소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엄마는, 되게. 대단한 사람이죠. 왜냐면 혼자 남아서 애를 셋이나 키우고 돈도 모아서 집도 사셨거든요, 이번에. 여자 혼자서. 대학교도 졸업 못 했으면서. 그런데 일도 되게 많이 구하고, 돈도 아끼시고. 큰누나, 작은누나 그리고 나까지 셋. 일탈 없이 잘 키우고. 그래서 대단한 사람.

어떤 일을 하셨어요? 막 구청에서 청소부 같은 일도 하시고, 서빙도 하시고. 그리고 제일 오래 하신 게 아마 콜센터 일. 어휴 콜센터 일은 정말.

왜요?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아요. 전화를 하잖아요. 그러면 자동응답으로 “무슨무슨 특공대입니다”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전화를 건 사람이 “거기 무슨 은행 아니에요?”이렇게 뜬금없는 말을 해요. 그래서 “아니에요.”라고 하면 “왜 아니에요?”라고 물어봐요.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해줘서 아는 거예요 민주는? 네. 엄마가 이야기해 주세요.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군요. 엄마는 또 한편으론 되게 여린 사람이에요. 요새 특히 제가 아프니까, 같은 병동에 있다가 안 좋게 된 친구들. 그런 얘기 하시다 보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하시니까. 이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엄할 땐 엄하고, 상냥할 땐 상냥하고. 그리고 남에겐 좀 둔한 분이세요, 엄마가.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되게 잘하고. (웃음) 어, 아무튼 그런 분이에요.

그는 여러 번 입을 오물거렸다

(작은 소리로) 이거 되게 어렵다. 차라리 작은누나 얘기를 먼저 할까요?

좋아요. 작은누나는 어떤 사람이에요? 작은누나는. 작은누나야말로 정말 여린 사람이에요. 왜냐하면은 작은 누나랑 엄마랑 사춘기 때부터 계속 싸웠거든요. 그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게 대놓고 다투진 않는데, 감정이 남아 있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작은누나는 이걸 해결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엄마는 그런 의지, 없거든요. 그게 이제 와서 서로 고치고 하려면 더 힘드니까.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사는 게 맞다-하시는데, 작은누나는 그걸 되게 아쉬워해요. 근데 엄마는 그렇지 않으니까. 해결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군요. 그리고 (작은누나는) 감정적인 걸 되게 많이 갖고 있어요. 감정적인 면을. 어느 날은 제가 누나 출근할 때 장난으로 그랬거든요. “나 곧 죽어!”하고. 그랬더니 카톡으로 출근하는데 눈물바다 됐다고 그러고. 그게 참 감정적으로 풍부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큰누나는 작은누나랑 정반대.

작은누나는 이게 다예요? 더 설명해줘요. 더 설명해줘요? 그럼 자세히 물어봐요. 너무 뭉뚱그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만약에 작은누나가 여린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누나는 어떤 반응을 했고, 이렇기 때문에 여린 사람임을 알게 됐다-하는 거죠. 작은누나가 친구가 많이 없어요. 일단 중학교 때 여자반이었고, 고등학교는 본인과 전혀 상관없는 고등학교를 갔어요. 그래서 친했던 친구들이 별로 없었고, 있어도 (내가 알기론) 네 명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 밖에 잘 안 만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의존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우정같이? 자기 얘기 많이 하고, 자기 상황 얘기 많이 하고. 그런데 그럴 사람이 없어지니까.

민주는 손바닥으로 자신을 툭툭 친다

지금도 벌써 내가 있는데도 말 가려서 하느라 힘들어하고. 그런 게 눈에 보여요. 정신적으로 힘든 게.

민주가 있는데도 힘들어한다는 건? 그러니까 제가 누나 이야길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다는 거죠. 누나가 필요한 만큼 더. 그런데 제가 없어지면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굉장히 의지하고 있네요. 맞아요.

왜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본인이 낮을 가리는 성격이긴 한데. 사람을 잘 안 믿는 게 아닐까요? 사람을 잘 안 믿을 것 같아요, 솔직히.

왜 안 믿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안 믿는다기보다, 그. (사람을) 가까이하는걸 어려워한다 해야 하나? 왜냐면. 가까워지면 멀어질 수도 있잖아요. 사이 틀어지면. 제가 알기론 누나 친구 한 명이 그래서. 그리고 엄마 아빠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 큰누나랑 엄마, 작은누나 사이가 별로거든요.

엄마, 작은누나, 그리고 큰누나 셋이 삼각으로 멀어요? 아니요. 큰누나, 엄마랑 작은누나. 그래서 친한 사람과 멀어지는 게 힘들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친한 사람을 안 만드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건 제 생각일 뿐이에요, 솔직히.

그렇죠. 오늘은 민주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니까. 네. 이제 다른 사람으로 넘어갈까요?

큰누나는 또 작은누나랑 다르게 이성적인 분인가 봐요. 네. 왜냐면 당장 이번 치료 중단만 해도 큰누나가 결정해줬어요. 보통은 이런 결정 빨리 내리지 못하잖아요. 그래도 가능성이 있으면 조금 더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하니까. 그런데 큰누나는 “가망성 없어 보이는 길, 힘들게 가지 말자.”이렇게 말했어요. 덕분에 엄마, 아빠 설득하는 일이 없었죠. 그리고 누나는 말을 굉장히 잘 해요. 둘이 말하다 보면 그쪽 논리에 제가 막 빨려 들어가요. 정신 차리고 보면 다 끄덕거리고 있고.

어릴 적에 제가 잘못하면 큰누나가 혼냈거든요. 처음에는 억울하다 싶던 일도 나중에는 ‘와, 내가 잘못했군’하면서 울게 만드는 게 저희 큰누나예요. 그리고 지금은 자기가 원하는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사람. 최근에 태국인 친구가 생겼거든요. 언어 교환하고, 태국말 배우고 하다가 여행도 갔어요 태국에. 그리고 몇 년 뒤엔 태국에서 살겠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것만 봐도 누나는 늘 목표가 있었어요. 그리고 (본인은) 원치 않았겠지만 현재 집의 기둥이 되었고.

아, 그렇군요. 그. 듣고 보니까 작은 누나 장점을 이야기 안 해준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이거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기록할 거니까. 작은누나 장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게 있을까요? 장점이요? 아무래도 감정이 풍부한 게 장점이죠. 큰누나한테는 제가 하소연이나 힘든 이야길 해도 아- 민주가 그랬구나. 하고 감정에 공감받는 느낌을 받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작은누나는 위로를 되게 잘 해주죠. 나보다 더 이입해서 공감해주고. 사실 제가 위로받고 이런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작은누나의 장점을 그렇게 많이 느끼진 못 하지만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점은 감정적인 거, 단점도 (동시에) 감정적인 거.

큰누나 단점은 이야기 안 했어요. 큰누나는, 목표가 너무 뚜렷한 것?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요. 큰누나 학과가 물리치료거든요. 원래 우리 누나는 국문과를 가고 싶어 했단 말이죠. 소설 쓰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마찰이 심했어요. (원하는 게 또렷한 게) 개인에겐 장점이지만, 다른 사람과 조율이 안되면 단점이 되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됐어요.

문학을 하고 싶어 했는데 갑자기 물리치룔 결정하신 거예요? 아니요, 아니요. 엄마가 가라고 했어요.

네. 그리고 문학이라고 했지만, 고등학교 땐 그렇게 또렷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과 가고, 그 학과가 취업 잘 된다고 해서 갔는데, 가보니까. 그리고 스무 살 돼서 책도 읽고 하면서 그제야 이 길이 아니구나 했던 거겠죠.

큰누나에 대해 더 할 말 있어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아, 이제 아빠 차롄가요?

맞아요. (한숨) 으아. 아빠는. (웃음) 그거 있잖아요, 왜 막 사업병. 사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사업해서 막 대박 터뜨리려고 하시고. 그런 경향이 계속 있으셨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 태어나고부터 쭉, 지금까지 계속하고 계세요. 끈기 하나는 정말 대단해요. 저 같으면 금방 접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저는 그게 좀 그래요. 그걸 빼면은 무엇이 남을까 싶어서요. 아빠가 사업하는 이유는 단 하나거든요.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다주기. 그걸 원하셔서 사업하시는 거거든요. 당신이 호화스럽게, 사치스럽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거죠. 엄마한테 잘해주고, 우리 좋은 거 해주고 이러고 싶으신 거거든요. 그런데 그 꿈을 아직까지 붙잡고 있어요. 우린 이제 다 컸고, 집도 있어요. 그래서 괜찮은데. 아빠 살 길 찾으셨으면 좋겠는데. 물론 본인 살 길은 찾으실 거예요. 무튼 그게 아쉬워요. 그리고 이번에 치료 중단한 일에 대해서도. 저는 더 이상 나을 리 없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계속 다른 걸 생각하고 계셨어요. 해천금이라고, 소금 알약이 있어요. 그걸 하루에 30알씩 먹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나을 수 있다고. 그래서, 그 뭐라고 해야 할지. 좋은 표현 없나? 그. 안될 걸 포기할 줄 모른다? (웃음)

(웃음) 다른 표현 없어요? 그래서 다른 표현 어디 없냐고 물어봤잖아요. (웃음) 다른 표현이 생각나질 않아요. 가끔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민주가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게 전부인 거죠? 네.

다른 분들에 대한 코멘트도 짧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데 아버지는 유독 더 짧게 느껴져요. 그래요? 그런데 그건 아마 가족에 대해 깊게 생각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일부러 피했거든요. 왜냐면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점을 맞닥뜨리니까. 생각하다 보면 안 좋은 마음이 들어요 막. 장점은 스쳐 지나가고 그래서. 그래서 가족에 대해선 깊게 생각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구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네 맞아요. 깊게 생각하는 건 보통 안 좋은 것 위주예요. 한창 우울할 때는 계속 우울한 생각만 하고요.

이제 가족들 이야기해 봤으니까 민주 이야길 해 볼게요. 민주가 생각하는 민주. 그러니까 제삼자 입장에서 민주를 바라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현상적인 것 말고요. 속이 깊고, 널 배려하는 친구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널 생각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그리고 (민주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 거다. 그런데 무리한 부탁은 절대 들어주지 않을 거다.

무리한 도움은 절대 주지 않을 거다? 네. 또 뭐가 있을까. 그리고 우울할 때 함께 우울해줄 것이다.

그래요? 함께 우울한 게 위로가 될까요? 제가 아니라 그 애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요. 우울한 사람이 옆에 하나 더 있는 게요?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타인이 하는 공감은 결국 남의 것이니까요. 깊게 파고들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후회하는 일 있어요? 지난번에도 물어보지 않았나요? 여전히 아니요.

그런데 그냥 생각나는 건 있어요. 고등학교 때 적응 늦게 한 거요.

적응하느라 힘들었나 봐요. 네. 공부할 분량이 많아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을 고등학교 땐 관뒀거든요. 경제적인 압박이 느껴졌어요. 엄마가 처음엔 학원 같은 거 알아봐 주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혼자 해보겠다고.

(경제적인) 압박을 느끼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러게요. 제가 직접 목격한 건 없어요. 그냥, 제 스스로 생각하길 경제적 압박이 있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나중엔 본 적이 있어요. 그 전엔 없었거든요.

얼마나 뒤예요? 고등학교 다닐 때? 저 고등학교 2학년 때요. 그때 심층면접 대비하는 학원을 등록했거든요. 꼭 다녀야 한다고 해서. 엄마는 당시 콜센터 다니고 계셨어요. 그런데 엄마가 초과근무하신다고 했거든요. 그때 엄마 수명이 한 10년 정도 줄어든 것 같았어요.

그때 압박을 느낀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죠. 진작 생각은 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우셨겠구나. 그런데 그게 얼굴에도 드러났어요.

이야길 듣다 보니까 누나들에 비해 교육비로 지출된 돈이 큰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그렇진 않아요. 왜냐면 누나들 포함해서 중학생 때까진 내신 학원 다 다녔어요. 큰누나는 첫째라서 더 해줬어요. 독서실도 막 끊고. 과외도. 그런 건 있어요. 엄마가 남자는 대학교 나와야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작은누나는 누나가 먼저 이야기했어요. 공부가 아닌 길을 찾고 싶다고. 지금도 외국어 배우고 하는 거는 엄마가 학원비 챙겨주세요.

작은누나요? 작은누나도 그렇고요. 제가 토익학원 다닐 적에도 도와 주셨어요.

민주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종류가 있어요? 갑자기 매력을 느낀다거나. 뭔가 이유가 없는데 이 사람은 뭔가 끌린다거나 하는, 유독 정이 가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이 보면 뭐 저런 거에 매력을 느껴? 하는.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냐면, 매력이라기보다 호기심? 저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껴요. 보통은 무리 지어 다니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일부러 혼자 다닌다거나, 일부러 혼자 무얼 한다거나 하면 친해지고 싶어 져요.

그랬던 사람은? 그랬던 사람은 또 없네요, 딱히.

그런데 그게 끌린다는 거죠? 네. 그런 사람 보면 이제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 이러고.

그런 사람을 관찰했던 적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방과 후 수업을 듣는데 한 아이가 수업을 전부 혼자 듣더라고요. 말을 걸어도 방어적이고. 그래서 아, 저 아이랑 친해지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죠. 보통 제가 먼저 친해지고 싶다 생각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보이면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민주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해요? 아까는 삼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생각하는 나? 좋은 거나, 싫은 거요. 버티는걸 잘 하는 사람이요. 그리고 남이 “괜찮냐”라고 물어보면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요.

자기 기분이나, 현실과 상관없이요? 네. 그리고 또… 우울한 사람? 저는 그리고 재밌는 사람인 것 같아요.

우울하고, 재밌고, 또 버티길 잘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무조건 괜찮다 말하는 사람이요? 네.

그게 민주가 본 민주인 거죠? 네.

친구들에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얘 같은 애는 없었다. 이렇게요.

이런 친구는 없었다? 네. 그리고 실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콤플렉스 있어요? 콤플렉스요?

말 못 하는 비밀이라던가, 민주가 생각하는 자신보다 날카로워진다거나 하는 순간이 들 때요. 욱하는 거요. 가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얼굴 새빨개지고 말투가 바뀌고 그럴 때가 있어요.

언제요? 선을 넘었을 때요. 도의적인 선을 넘었다는 거요. 지난번 주치의가 세월호 언급하면서 치료하자고 얘기했었거든요. 제가 느끼기엔 화가 나지 않았는데, 몸이 아니었어요. 새빨개지고, 몸을 떨고.

세월호 언급을 어떻게 했어요? 제가 치료를 그만둔다고 했거든요. 너무 가능성이 낮으니까. 그래서 치료를 그만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선생님이 그러면 세월호 아이들은 (살 가능성이) 낮으니까 구하지 말아야 했냐고 말을 했어요. 지금도 화나는 말 아니에요? 최근엔 이 일로 굉장히 화가 많이 났어요.

지금도 살짝 얼굴이 빨개요. 네. 화가 좀 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을 딱 넘기 전까지는 그 감정이 드러나지 않다가, 폭발하면 주체하지 못하는 건가요? 네.

이게 콤플렉스인 거죠? 네. 왜냐면요, 말할 때 되게 좋지 못해요. 대화를 주고받다가, 상대가 말실수를 하는 거죠. 그러면 상대가 사과를 했음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런 거예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 언성만 계속 높아지고. 그러면 대화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콤플렉스예요.

다른 건요? 콤플렉스 없는 것 같아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친구들이랑 이미지 사진 찍었잖아요. 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특히 사람 사진보단 풍경이 좋아요. 사람 사진이 좋을 때는 친구들 도촬 할 때. 구경하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담는 게 좋아요. 그리고 사진, 기념하는 사진 좋아해요. 특별하게 만들고.

기념사진이요? 집에 사진첩 있고 이런? 네네.

요샌 고민거리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인생은 한 번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저는 준비할 시간이 길잖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심각한 고민은 아니고, 그냥 문득문득.

어떻게 준비해요? 일단 절차적인 것부터 정해 놓는 거죠. 내가 죽으면 이 옷을 입혀서 화장해놓고, 납골당에 넣어 달라 적어 두고.

무슨 옷이에요? 이거요. 딱.

민주는  자신이 입고 있는 셔츠와 옷을 잡아떼며 말했다

그리고 일이 생기면 그 소식을 누구에게 연락해달라, 이렇게요.

정한 게 있다면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사건이 생기면 친구 한 명. 고등학교 때 친구가 있어요.

이름이? O라는 친구가 있어요. 걔한테 연락을 해요. 그러면 페이스북에 부고를 알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 글에는 저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공유해달라고 하는 거죠. 모르는 사람이 없게끔요.

O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요? 네. 다 알고 있어요.

다른 준비하는 건요? 다른 건 아직 없어요. 일기 쓰고 있어요. 마지막 일기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아직은 안 썼어요? 네. 내일 기차 타는 새벽에 써 볼까 생각 중이에요. 휴대폰으로 계속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그날 새벽.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지금은 닌텐도 스위치밖에 없어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요? 사람이요. 시대, 가족 이런 거 안 정하고 그냥 사람이요. 그러면 지금처럼 많은 일을 겪을 테고, 죽을 때 느끼는 게 있겠죠. 똑같은 사람으론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똑같은 건 별로예요? 네. 뭔가 해봤잖아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옛날엔 이런 질문받으면 부잣집 사랑받는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면 중성화 당해요. (웃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계획은 있어요? 없어요. 사실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어요. 그냥. 황당하잖아요. 제가 곧 죽을 텐데.

그러니까 이번에 (안 좋아졌다는 건) 2월 중순이요. 얼마 안 됐어요. 저번엔 동아리 들어가서 열심히 활동하고 했는데. 지금은 친구까진 몰라도 깊은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싶지 않다? 네. 막상 일이 생기면 다르겠지만요.

그게 이성적으로 제어가 돼요? 아니면 민주가 바라는 거예요? 제어하게 된 건가? 아니요. 감정이 연애감정을 갖지 않길 원해요. 왜냐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요.

행복한 때를 하나 떠올려줘요. 뭔가 생각이 났었는데, 지난번에. 까먹었어요.

언제 행복감을 느껴요? 떠들면서 막 숨넘어가게 웃을 때, 피아노 치고 있을 때, 그리고 엄마랑 시답잖은 얘기하면서 막 웃을 때.

시답잖은? 네. 그런 거 있어요. 엄마가 저에게 무얼 시켜요. 그러면 제가 막 “싫어어어!”하고 앙탈 부리거든요. (웃음) 그러면 엄마가 절 따라서 “그래, 나도 싫어어어!”하고.

엄마도 싫다고 하세요? (웃음) 네. “흥~” 이런 것도 자주 하시고.

행복하네요. 네. 그리고 못살아, 못 살겠다 하는 말버릇이 있어요, 엄마가. 제가 그걸 배웠거든요. 그래서 제가 못살아했더니 엄마가 그거 하지 말라고. 이런 소소한 게 행복하죠.

행복하다. 엄마가 “약 먹어!”하면 “싫어!”하고. 물 담아 달라고 하면 또, “싫어!”하고. “내가 다 쓸 거야!” 하고.

그는 배시시 웃었다

집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우리 집은 어떻다. 우리 집은, 완벽하진 않지만 따뜻하다. 그런대로.

사랑이란? 사랑이란? 글쎄요. 뭘까요.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것?

계속 생각하고,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것? 네.

민주가 생각했을 때, 타인과 민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메타적으로 생각하는 거요. 무슨 소리냐면, 무슨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 무엇이든 삼자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해요. 그게 제 이야기든, 저의 친구 이야기든 전부요. 예를 들어 친구가 사고를 당했으면, 얘도 아프겠지만 교통사고 낸 사람도 참 당황스럽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관련이 없는 사람인 양. 이것보다 구체적으론 설명하기 어려워요.

가슴속에 남아있는 장소나 전경 같은 게 있어요? 어렸을 적, 한 두 세 살 때쯤 됐을 땐가. 아빠가 제 발을 손으로 잡고 이렇게 들어 올렸어요. 그 장면이 생각나요. 그거랑, 여덟 살 때쯤 몽상포라고 갯벌 있는 해수욕장을 갔어요. 거기서 튜브 쓰기 싫다고 인상 찌푸리고 있는데, 엄마가 튜브 꼭 써야 한다고 하고, 아빠가 저에게 튜브를 끼우는 장면이 생각나요. 그 튜브가 아파서 싫었는데, 사진도 있더라고요.

사진도 있어요? 네.

일 죽는다면, 꼭 해봐야 할 건 뭘까요? 어떤 사람이 민주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거죠. 무얼 해야 할까요? 하나만 골라 달래요. 하나만. 제발요?

네. 제에발 말해달라고. 일단,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그런 거 없으면 맛있는 걸 먹어라.

그건 민주도 같아요? 내일 죽는다면.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거? 뭐 먹을 거예요? 네. 그런데 메뉴는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오래 생각한다) 내일 죽으면, 나 좋아하는 거 한 입씩 먹으면 안 돼요?

그러면 뭐요? 다양하죠. 햄버거, 치킨, 그리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엄마가 떡국 되게 잘 만드니까 그것도 좋고. 볶음밥이랑, 갈비 되게 좋아하고. 갈비 되게 좋아해요. 숯불갈비. 근데 갈비는 집에서 하면 안 돼요. 집에선 맛이 없으니까, 꼭 사 먹고. (웃음) 삼겹살에 쌈장 있어야 하고. 닭갈비는 무쌈 있어야 하고. 초밥도 먹고 싶고. 초밥은 전에 잘 가는 초밥집. 단호박 초밥이요. 그거 되게 먹고 싶은데, 잘 상해서 더 이상 안 한대요. 회전초밥집인데. 그거 먹고 싶다.

남이 죽는단 건 뭘까요? 생판 남이면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잘 아는 사람이면 같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을 드러내고. 들고 없어지는 거예요.

들고 없어지는 건가요? 네. 들고 나르는 거죠. 그 흔적이 남아있긴 한데, 공유하던 큰 부분을 들고 사라지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채워지긴 할 텐데. 공백이 힘든 거죠.

죽는다는 건 뭔가요? 죽는단 건, 죽는 거죠.

들고 나르는 거예요? (웃음) 아, 그러네요. 그건, 끝나는 거예요. 이야기가.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끝이 나는 거죠.

최근에 운 적 있어요? 아니요.

울컥한 적도 없어요? 욱한 건 있어도 울컥한 건 없었어요.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잊지 못하는 말. 그런 거 있어요? 최근에 친구한테서 “네가 내 인생에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에서 따뜻함을 느꼈어요.

민주가 있어서 좋았대요? 네.

누구예요? 비밀이에요. 고등학교 친구예요.

왜 말 안 해줘요? 그냥.

알았어요. 살면서 세 가지 소원을 이뤄줄 수 있대요. 무얼 빌고 싶어요? 세 개. 무한대로 늘려줘. 이런 거 말고요?

당연하죠. 세 개. 어, 저는 세 개 다 시간을 돌려달라고 했을 것 같아요. 기억을 가진 채로 시간을 돌려달라. 지금 같은 경우엔 중3으로 돌아가서 공부 열심히 했을 거예요. 그게 아니면 시간을 돌리고 싶은 경우는 별로 없고. 나머지 두 개는 앞으로 후회할 일을 돌리기 위해 쓰고 싶어요.

세 번 살고 싶은 거네요. 아, 그러네요.

얘기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냉소적이다 싶고, 또 어떤 기억은 상세하긴 한데. 뭔가 감정이 조금 없다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느 부분은 그래, 민주답다-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냥. 형의 느낌이다? 근데 제 친구들에겐 “얘 참 정 없는 애다”이런 소릴 듣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잘 할 거예요. 형 포함해서.

그래요? (웃음) 그래요.

세상에 꼭 필요한 게 뭘까요? 한 인생이 사는데, 꼭 제공되어야 하는 거요. 성인이 돼서 사회생활 하기 직전까지의 지원이요. 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없으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 유리한 거 아녜요? 시작점이 달라지는 거니까.

살면서 한 가장 큰 거짓말 있어요? 글쎄요. 초등학교 때 문제집 안 풀고 다 풀었다고 했다가 실컷 두들겨 맞은 일.

그때 이후로 없어요? 그 시기 이후엔 거짓말을 듣는 것도 싫어졌어요.

본인을 사랑해요? (한숨 쉰다) 저를 사랑, 사랑 하진 않아요. 좋은 친구 정돈되는 것 같아요.

좋은 친구. 영원히 함께할. 좋은 친구. 사랑까진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어요? 네 있었어요.

그거랑은 조금 달라요? 네. 사랑은 철저하게 남을 위한 감정인 것 같아요. 사랑이 상대방을 위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안 좋게 하기도 하잖아요? 너무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다 보면요. 그래서 저를 사랑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사랑은 타자를 위한 감정이에요? 그렇진 않은데, 남을 향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남에게 하는 감정. 저는 그래서 사랑해서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랑이 오로지 자신을 위한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거죠.

나만을 위한. 그런 거죠. 왜 있잖아요, 쟤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끝났어요? 네. 고등학교 때였어요. 대학교 와서는 ‘아, 얘를 정말 사랑한다’ 이런 식으로 좋아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호감이 있는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는 사랑했나 봐요. 네. 고등학교 두 명. 1학년 때 한 명, 2학년 때 한 명.

가장 친한 친구들 이야기해 주세요. 무슨 이야길 해드릴까요?

그냥 가족 이야기했던 것처럼요? O라는 친구가 있어요. 걔한테 아까 부고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말했어요. O는 참 침착해요.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하게 됐어요. O는 덕후(오타쿠)예요. 저를 영국 드라마에 입덕 시킨 친구예요. 그리고 마블 좋아하고, 걔는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데요, 요샌 마블 너무 많이 봐서 질렸대요. 그래서 디씨 본다고. 그리고 침착해요. 걔도 좀 냉정한 성격인 것 같아요. 냉정? 냉정이라기보다 큰누나처럼 이성적인. 그런 성격인 것 같아요.

어떤 영향을 받았어요? 성격이 저랑 비슷했어요. O는 제삼자 입장에서 이야길 들을 줄 알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느낌이군’이라는 걸 그 아이를 보며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그다음에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건 대학교 때 C. 마지막으로 저와 성격이 완전 반대인 친구가 있어요. H라고. 원래 저랑 안 친했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H는 교내에서 좋지 않은 일로 친구가 없었어요.

안 좋은 일요? 말해야 하나요? 그냥요. 애들 따돌리고 이런 거. 원래 발 넓은 친구였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다 떠났죠. 저는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혼자 다니다가 가까워졌어요.

반에서 제일 만만했나 봐요 민주가. (웃음) 아니거든요. (웃음)

만만한 새끼 하고. (웃음) 그랬던 것 같아요. (웃음) 친구 얘기하니까 할 게 없네요. 싫은 얘기 해봐. 하면 할 거 있을 것 같은데요.

과연? 원래 제가 수업을 째고 하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근데 H가 수업 째자 하면 같이 도망치고. 기숙사 외출증 쓰고 놀자! 이러면 놀고. 노래방도 그 친구 때문에 자주 가게 됐어요.

덕분에? 때문에? 덕분에 죠. 좋아해요 노래방. 그리고 걔가 외출을 좋아해요. 그래서 그 친구 덕분에 밖에 나가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요. 만날 자기 집 앞으로 부르긴 하지만요. 걔 집 앞이 놀게 많긴 해요. 가양인가? 증미인가? 9호선 끝자락에 있어요. 친구 얘기 더 할까요?

더 해요. 할 사람 있으면. 기록으로 남으니까요. 더, 음. 이름만 생각나고 더 할 얘긴 없어요. 대학교 친구인 C. J형, H 누나.

이름만이라도 얘기해둬요. 적어둘게요. 아, J가 있어요. 풀네임은 JHL.

여성분? 네. 그리고 J 또 있어요. JJW. 일단 여기까진 것 같아요.

동경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애초에 사람을 동경하지 않아요.

가족 포함? 네.

인터뷰 다 끝나가요. 일기를 매일 쓰잖아요. 만약 읽을 수만 있다면, 공개를 안 했다는 가정 아래 누구의 것을 훔쳐보고 싶어요? 가족 친구 다 포함해서요. C요.

C가 일기를 썼다면, 그 아이 걸 보고 싶어요? 네.

왜요? 예상이 전혀 안 돼요. 감히 상상하자면. 왜, 기분 나빴던 일이 다 적혀 있다거나. C답지 않게 구구절절한 거죠. 어쩌면 J랑 연애한 얘기만 잔뜩 적혀있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정말 웃길 것 같지 않아요?

관음증이니? 아, 누구나 있어요. 관음의 욕구는.

전 없어요. 이거 완전 변태 아니야 이거. (웃음) C가 궁금하냐고 물었더니 C가 보는 걸 다 궁금해하네요? 좋아요. 또 었던 관음을 기대해요? C의 일기엔 우울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을까요? 일기장이 우울하다고 저에게 말한 적 있거든요. 그런 게 적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의외의 것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의외의 것? 우리가 알던 C가 거짓이라는? 막 감성적이고. 울고.

첫인상. 요새 첫인상 평가가 어때요? 

대머리 치고 인상 좋다.

(일동 웃음)

그거 말고. 착하게 생겼단 말 많이 들어요. 순하다. 이런 말이요.

무슨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상대가 저를 얕잡아 볼수록, 제가 대하기 편해지거든요. 아무래도 상대가 순하다 생각하면 경계가 풀어져요.

좀 느꼈나 봐요. 네. 스스로 느꼈다기보단 남들이 얘기 많이 해 줬어요. 가드가 풀어지는 얼굴이란 소리. 그런 얘길 들어서요. 실제로도 더 그런 것 같고.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인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좋네요. 인간다운 핑크색 우산. 자유로운 선택. 너의 취향. 아니야. 아무거나 들고 나온 거라고. (웃음)

죽음을 의식한 적 있어요? 죽음요?

와, 씨. 죽음이 왔다. 이런 거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죽음이) 오는 걸 인식하는 건. 다만 머리 아프고 이런 적 없었는데 요새 앞이 핑 하고 돈 적 있어요.

언제요? 1월 말쯤이었어요. 엄마가 빨래 삶은 거 가스레인지에 올리라고 했는데, 그때 그걸 들어 올리다가 핑 돌았어요. 아, 오는구나. 했죠.

산다는 걸 인식한 적은요? 집안일할 때요. 집 깨끗해지는 걸 볼 때 산다는 게 느껴져요. 정리할 때.

민주가 생각하는 이 병마에 대해 이야길 해 주세요. 이 병은 어떤 성격이고, 어떤 모습이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민주는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요. 병마라는 건 좀. 아기 같은 것 같아요. 쑥쑥 자라는 아기. 암세포잖아요, 세포. 자기가 커야 하니까 크는 거죠. 클 줄밖에 모르니 복제하고. 그러다가 절 죽이겠죠. 그러면 사실 자기가 같이 죽는 거잖아요. 그게 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해요. 얘가 의지가 좀 있으면 조절하면서 저와 같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조금 천천히요? 그렇죠. 조절되면 뭐 평생 살 수도 있겠죠.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아까 말한 친구들이요. 저를 좋아하는 게 말이나 행동에서 드러날 때. J형 같은 경우는 제가 막 죽는 얘기 하면 “으악” 하면서 멘붕 하는 표현을 하거든요. 전에 통화할 때 울기도 했고. 그런 행동에서 믿고 의지할만하다 이런 느낌.

믿고 의지했던 적은요? 최근에 고민거리를 좀 털어놨어요. 그 정도?

고민이 있었네요. 아 그런데 이건 미공개할 고민이에요. 끝까지 함구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에게 함구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야 뭐, 민주가 말 안 하면 그만이니까요. 고민은 잘 끝났어요? 네. 잘 끝났어요. 확실히.

성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글쎄요. 오히려 한 번도 경험이 없어서 아쉬움이 없는 것 같아요.

기회가 있다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안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왠지 그래요. 다른 게 더 중요해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고 해야 하나? 이것도 의지로 제어하는 거라면 그런 거겠죠.

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느낌이 달라요? 어떤 느낌요?

하루가 똑같다- 그 일상이 달라지는. 아니요. 오늘은 그냥 오늘이에요. 끝이 가까워졌을 뿐이죠.

느껴지는 거예요, 끝이 가까워지는 거? 그렇다기보단, 계속 더 의식하는 것 같아요. 하루 더 갔구나.

남들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렇다기보단, 제가 되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의외로 느껴지는 건 거의 없어요. 치료를 중단한 시점이라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형이 나중에 겪어봐요.

그러니까 인터뷸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냥요. 똑같이 사세요. 너무 의식하지 마시고. 죽음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요.

(죽음을) 의식하는 친구도 봤나 봐요. 그렇진 않아요. 암에 걸리면 보통, 계속 생각하니까. 주변에서 글 읽고, 인터넷 찾아보고 했거든요. 아버지가 암에 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글들.

그건 아버지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어떤 글은 본인이 암에 걸렸는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글도 있어요. 그리고 치료 시작할 땐 당연히 다 나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1차 항암 이후엔 암이 커지고, 수술이 잘 안 되고. 이러면 생각이 되게 복잡해지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죽음이) 의식되기 시작해요.

이건 다른 사람의 사례가 아니라 민주 사례라고 생각해도 돼요? 네.

그 방에 있던 사람들 얘기해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병. 저는 그 병의 상태만 알지, 개인적으론 얘길 안 해서 어떤지 몰라요.

보았던 것만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 형은 항암치룔 안 한다고 하고 야채만 먹었대요, 집에서. 키가 184cm인데 몸무게가 59kg이 된 거죠. 그러다가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다시 병원 들어오고. 그런 사례가 있었고요, 어떤 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치료 결정을 모두 보호자. 그러니까 엄마가 했어요. 그런데 항암치룔 하다가 몸이 더 나빠지고, 그래도 희망은 그것뿐이니까 계속하고. 그런데 엄마가 아이에게 병의 진척 상태를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엄마는 알고 있으니까. 한 달쯤 남았단 걸요. 그러다 그 아이가 의식 불명이 됐을 때, 친구들이랑 했던 문자를 봤대요. 그랬더니 친구들에게 나가서 놀자고. 자기 빨리 나갈 수 있다고.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속상해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치료에 관해선 해볼 것 다 해봐서 아쉬운 거 없는데. 이 아이가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남았다고요

배아세포종이죠? 뇌의 암이에요. 그래서 위치는 제각각이에요. 저는 대뇌 중앙에 생겨서 수술 못하는 위치였고, 옆에 생기고. 옆에 생기면 수술해도 잘 못 걸어요.

지금 재발 판정된 거죠? 네. 며칠 전에. 종양 수치 400.8 나왔어요.

110에서요? 아니요. 11월 말에 60이었어요. 그리고 12월 말엔 50이어서 괜찮아지려나 했다가, 1월 말에 400.8이 됐어요. 여덟 배가 뛴 거죠.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고요? 네. 그리고 최근에 읽은 글귀 중에 엄청 와 닿는 글귀가 있었어요. 그게,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바에야 죽는 게 낫다. 지금이 딱.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살고 있어요? 네.

민주가 원하는 건 뭔데요? 간단히 말하면 병원에 있지 않고, 돌아다니고. 피아노 치고.

거의 다 됐어요. 무엇이 민주를 살게 해요? 이런 건 희망적으로 하나 넣어줘야지. 무엇이 오늘 민주를 살게 해요? 기대. 기대감이요.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한 기대. 내일은 친구들이랑 정동진 갈 기대하고 있으니까 설레고. 3월부턴 피아놀 배울거예요. 그리고 오케스트라 동아리 같은 것도 할 거거든요. 기대감. 기대감이 저를 계속 살게 해요.

지금 기분은 어때요? 그냥 그래요.

내일 뭐해요? 내일요? 오후에 진료 보고, MRI 결과 보고, 다음에 새벽기차 타고 정동진으로 출발.

좋네요.

인터뷰 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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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민주 인터뷰(2)”에 대한 답글 1개

  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랑 굉장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네요, 만났으면 좋은 친구가 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기선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민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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