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의 기억


남자가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그런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그의 몸에 긴장한 듯 본능적으로 발 끝을 활짝 편다. 마치 땅바닥을 발가락으로 움켜쥐려는 듯, 그녀는 온 감각을 발 끝에 집중한다. 그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떨어진다. 그 눈송이의 색깔은 황금색이다. 눈은 맑은 날 햇살에 반사되는 먼지처럼 하늘을 사뿐히 부유한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로 얼굴을 젖힌다. 그러자 황금빛 눈이 그녀의 얼굴을 적신다.

남자는 떨리는 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 위에 올린다. 한쪽은 그녀의 왼쪽 뺨 위에, 다른 한쪽은 그녀의 오른뺨에 올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 위에 올리는 그의 두꺼운 손등을 보면서 그녀의 보드라운 피부가 자신과 참으로 대조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자는 그의 거칠거칠하고 주름진 검은 손가락이 혹시나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베지는 않을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 손을 얹는다. 평소 친구들과 있을 때의 모습과는 다른 그다. 그는 친구들과 있으면 용맹하고 자신 있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남자지만, 그녀 앞에선 왠지 한 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조금만 스쳐도 생채기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다섯 살 남자아이 같아지는 것이다.

남자는 살짝 젖힌 그녀의 실크빛 살결을 가만히 응시한다. 의식을 잃은 듯 보드랍게 감긴 그녀의 눈꼬리와 그 눈을 타고 내려와 수줍게 피어있는 그녀의 입술을 응시한다. 아, 이 얼굴로 어찌 그녀의 실크빛 피부를 상처낼 수 있겠는가. 남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그녀의 모든 것을 갖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인 욕망이 꿈틀대는 것을 느낀다. 남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녀의 얼굴, 그 언덕 위에 피어있는 탐스러운 봉우리를 탐하고 싶다!’

남자는 이제 그녀의 입술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늘은 더욱 노랗게 물들고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서서히 가져간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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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 Gustav Klimt, 180 x 180 (cm), 캔버스에 유채

꿈만 같고, 아찔했습니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제 시야는 바늘구멍만큼 좁아졌고, 귓가에는 먹먹함과 동시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명이라곤 주먹 만한 할로겐 등 여섯 개가 전부인 방 안에, 그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의 황금빛 방은 이 그림 외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흡수하기 위해 검은색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다른 방의 흰 회반죽 벽과는 달리, 이 방만큼은 그랬습니다. 40평은 되어 보이는 블랙박스 안에 저와 그 그림이 있었습니다. 이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저는 이 작품을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기 위해 고개를 돌려, 그의 다른 ‘황금기’ 작품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마치 정말 그리고 그리던 첫사랑과 단 둘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숙맥처럼. 시야를 베베 꼬았습니다. 제가 이 방에 들어서고 몇십 분 동안 한 일은, 시야 한쪽 끝에 가득히 들어오는 광활한 황금빛 그림을 흘끔거린 것뿐이었습니다. 총기 어린 첫사랑의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발가벗은 기분이 들곤 했던 어린 날의 초상과 같이. 저는 이 상상력 끝에 걸려 있는 에로티시즘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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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만 한 제 사각지대 사이로, 많은 가이드와 학생들이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도덕이라는 최소한의 절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흘끔흘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인종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어떻게든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당하는 아시아 학생, 넉살 좋게 넘어가 보려는 유럽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온 어머니는 차마 유모차에 손이 굳어버린 채 고개만 돌려 이 그림을 올려봅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가이드를 귀에서 떼지 못했고, 모두들 메두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듯 정지했습니다. 마치 <입맞춤>이 그러하듯. 모든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숨소리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입맞춤(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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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얼굴을 감싸는 남성의 굵은 선과 그와 상반되는 그녀의 흐릿한 얼굴.
절벽에서 떨어질 듯, 아슬아슬 그러나 짜릿하게 발을 접어 올린 그녀. 그리고 달라붙는 듯 달라붙지 않은 그녀의 옷과 그런 그녀의 옷과 하나가 되기 위해 올라오는 금빛 갈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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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동안, 그림 앞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저는 이 그림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순 없었습니다. 간혹 그림 앞에서 서로의 입술을 포개는 연인들의 모습이 제가 보고 있는 이 그림과 견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제 앞으로 한국 학생 둘이 지나갑니다. 연인인지, 신혼인지 모르는 이 둘은 잠깐 이 그림을 훑더니, “여기 와서 이거 보면, 비엔나 다 본거야.”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20초 정도 응시하다가 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금빛 비가 내리는 마당과 황금으로 수 놓인 옷을 입는 두 연인의 모습. 그리고 그 둘을 감싸는 상서로운 구름은 짧은 감상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 그림은 금박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진에는 다 드러나지 못한 금빛 옷의 존재감은 그 어떤 배경보다 두드러집니다. 색조와 질감으로만 본다면, 두 연인의 입맞춤은 ‘금’의 존재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흐릿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조에 반해 ‘두 창조물의 입맞춤’은 모든 소재와 존재를 다 떨쳐버리고 사람들의 시야를 그들의 얼굴로 끌어당깁니다. 금빛은 너무나 강력하고, 인간은 보잘것없이 흐릿하지만, 두 연인의 입맞춤은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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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질 것만 같은 그녀를 감싸는 남성적인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나, 품에 안긴 듯 안기지 않은 여인의 몸부림은 유희의 몸짓이 채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충분한 오르가슴과 떨림을 동반합니다. 저는 이러한 상상을 펼친 제가 부끄러워져 잠시 그림에서 시선을 떼어냈습니다. 다시 한번, 이 그림을 바라보는 군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그림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가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그 선을 훑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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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봅니다. 일본인, 프랑스인, 이탈리아 사람,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그냥 커플, 게이, 레즈비언 커플,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 할 것 없이 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로 이 그림을 평가할 수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 그림이 최고가 되었을까… 모두들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라는 이름값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캔버스, 물감, 금.. 그리고 그의 상상력. 그의 상상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이 그림을 코 앞에 두고 다시 한번 감상에 빠져듭니다. ‘꿈, 그리고 사랑.’ 저는 잠시 감았던 눈을 뜹니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이 그림은 인종, 나이, 국가를 떠나 모든 이들을 한데 모으는 정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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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그림 앞에 선 수많은 사람들은 그 사랑을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기 위해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그리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이 감정을 눈에 아로새기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시 한번 그림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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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원형의 꽃무늬 소용돌이는 그녀의 것, 사각형은 그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화합되는 부분을 발견한 저는, 다시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으로 그에게 마음을 여는 여성과 정열로 그에 화답하는 남자. 그리고 이 둘을 감싸고도는 상서로운 구름의 소용돌이까지… 머리 꼭대기부터 시작된 이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은 어느새 발끝까지 저릿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을 축복하기라도 하는 듯 쏟아지는 금빛 빗방울과 꽃밭의 꽃들은 ‘사랑을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발끝까지 전하는 듯 당당하게 피어 있습니다.

‘이게 에로티시즘이다. 굳이 벗거나 몸을 열지 않아도.’

옆으로 피어있는 꽃은 꽃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듯, 두 연인 발 끝을 수놓은 꽃은 당당하게 감상자를 대면합니다. 보란 듯이. 대놓고 그렇게 말이죠.

….

폐관 10분 전.

마침내 이 그림 앞에는 저와 저를 감시할 의무가 있는 도슨트, 그리고 <입맞춤>만이 남았습니다. 도슨트는 세 시간 내내 이 그림 앞에 앉아서 눈을 끔뻑거리는 제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도, 행여나 제가 폰으로 메모를 하다가 잽싸게 사진을 찍지는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그녀의 노고에 짧은 감사를 표하고자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녀는 그제야 경계를 풀고 웃으면서 제게 다가옵니다.

“어디서 왔나요?” 그녀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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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짧은 영어로 남은 10분 동안 그녀와 이 그림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0평의 천장이 높은 블랙박스 안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훑듯이 통과의례로 이 그림을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도슨트의 긴장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동상이몽’이라는 개념을 미술관이 허락한 남은 10분 동안을 그녀와 나눴습니다.

무얼 적었는지 볼 수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께 보여드렸던 메모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그녀가 한글을 알아들을 리 없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그리고 천천히 제 메모장을 훑어봅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제 휴대폰을 돌려줍니다.

저는 그녀가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웃으며,

“This is great time to me, and pleasure to meet you, Ms. docent.”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만나서 반가웠어요. 도슨트 양.)

라고 말했고,
그녀는 웃으며

“Good bye, Mr. nice stranger.”
(잘 가요, 괜찮은(쓸만한(?)) 낯선 사람.)

라고 장난기 어린 말투로 화답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2013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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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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