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번수: 50년의 무언극,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송번수: 50년의 무언극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2017.3.10 – 6.18
언제봐도 예쁜 과천관 건물 전경. 구름다리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쾌적한 감상 환경을 위한 것이니 그냥 넘어가야 할까.

국립현대미술관의 2017년 첫 전시입니다. <송번수 50년의 무언극> 전은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 공예 부분 네 번째 작가로 선정된 송번수 작가의 반세기에 걸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입니다. 이번 전시는 인플루엔서 초청 자리로 전시 공식 시작 일자보다 하루빨리 작업세계를 보고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 작업. 이번 전시와 상관없이 상설로 전시되는 작업입니다. 그래도 서울 및 근교에서 쿠사마 야오이를 상시 볼 수 있는 곳이라 볼 때마다 사진을 찍는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송번수 전은 다섯 번째 한국 현대미술작가를 조명하는 자리입니다. 그는 스승 유강열로부터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가의 자세를 배웁니다. 송번수는 판화와 타피스트리, 종이부조와 환경 조형물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들을 펼치게 됩니다. 송번수는 1960년대 판화작가로 화단에 등단합니다. 1977년 파리 유학시기에 타피스트리 기법을 추가로 익히고, ‘가시’라는 작업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의 타피스트리에 등장하는 섬세한 묘사와 가시,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 그는 사회를 고발하고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풀어냅니다. 이후에는 종교적 영역까지 지평을 넓히기도 합니다.

작업 세계를 설명해주신 왕신연 학예연구사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전시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기법 중심으로 구분을 둔 것인데, 이는 세월과 작업 세계의 변화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무난하면서도 설명/이해하기 쉬운 작품 구성입니다. 어떤 전시는 작가의 목소리보다 학예연구사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곳도 있습니다. 작가의 작업 세계와 그것을 관통하여 전시를 준비하는 학예 연구사의 관계는 메시지-메신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메신저가 메타 정보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정보’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개인전보다는 다른 형태의 작업들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안전하면서도 읽기 좋다 할 수 있겠습니다.

판토마임

6점의 세리그라피 작업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에 찍어 70년(위쪽 청색 3점)과 2009년(아래 적색 3점)의 차이가 거의 없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70년대의 것은 열쇠의 형태를 구분 짓는 페인트가 살살 벗겨지고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작업이 서서히 변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재밌습니다. 흔히들 스테인리스 스틸이라 하면, 부식되지 않아 영원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말이죠.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페인트 부분이 살살 벗겨지거나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작가의 메시지와 별개의 재미가 있는 현상입니다.

<판토마임> 작업 열쇠 부분(하단 3점)의 문구가 각각 다릅니다. 이는 자신의 초기 작업 세계를 구축한 이후에 30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송번수 작가의 작품 세계가 성장했음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송번수 작가는 2009년 5월 14일, 대전 시립미술관 관장이 됩니다. 맨 왼쪽 열쇠에는 9M14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관장 부임 첫 날인 09년 5월(May) 14일을 의미합니다. 오른쪽에는 자신의 이름인 BURNS가, 가장 오른쪽 작업에는 도덕이라는 뜻인 모럴(MORALE)이 적혀 있습니다. 자신의 작업 세계에 메시지를 흘려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송번수 작가는 가족과 떨어져 대전 시립미술관에 단신 분임 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도덕성을 깨치고, 항상 조심하자는 의미로 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에고 트립이지만 그것을 꾸준히 지켜냈기에 전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진공관을 세리그라피로 찍어낸 작업입니다.

공습경보 5점

<공습경보> 작업입니다. 이미지를 세리그라피로 남기는 기술을 체득한 이후, 작가는 어떤 이미지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본 작업은 1974년 유신정권 시기의 암울함, 특수함을 드러냅니다. 다섯 점의 작업은 색이 각각 다른데, 이것은 공습경보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을 의미합니다.

송번수 작가는 산수화 중심이었던 당시 국전 장르를 탈피하고,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작업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신학철과 함께 <아방가르드 협회>에서 활동하며, 빈곤의 한국 화단에서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하고 강한 의식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공습경보, 인간과 기아, 1973년 세리그라피,  79×79 cm
그가 말하는 인간과, 기아.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더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배고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위 작업은 2007년에 했던 호외 신문 판화작업입니다. 송번수 작가는 “작가는 작업에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속보를 판으로 찍어 기록합니다. 이 신문은 7.4 남북 공동성명을 기록한 것입니다. 통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시대 상황을 판으로 찍어 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해당 작업을 400장 프린트하여 뿌리는 퍼포밍을 했었다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퍼포밍을 현대에 와서 재현하는 것은 의미적으로 발전한 부분이 없기에 이렇게 도열하는 방식으로 전시 방법을 바꾸었다 합니다.

상대성원리 시리즈는 삶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이론적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 ‘균형’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우주까지 모두 어떤 균형에 의해 유지되며, 그 균형이 깨질 때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자신의 세계를 시각화한 작업 세계가 드러납니다. 작품은 대칭적이며, 불규칙한 공간 내에서 안전한 지점을 찾아 고요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가 표현하는 섬세한 우주의 표현. 이 작업은 후에 진행되는 타피스트리 작업의 구성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나무의 결 같기도 하고, 우주의 어떤 광선의 흐름 같기도 한 배경 위로, 행성과 삼라만상이 음파와 도형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의 우주관이 아름답습니다. 위 작품은 지, 월, 일의 인력(The Gravitation of Earth, Moon and Sun)이라는 작업입니다. 세리그라피로 목판화에 찍어 작업했습니다. 지(지구)의 인력은 아래 보라색 작업입니다. 위의 두 점은 왼쪽부터 월과 일을 나타냅니다.

예전에 베트남을 여행하며 구매했던 인쇄 작업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저렴한 가격에 걸맞은 인쇄 품질을 가지고 있거든요. 송번수 작가는 잉크가 성마르지도, 넘쳐 번지지도 않게 이 작업을 해냈습니다. 이렇게 섬세한 기술로 세리그라피를 해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것도 1980년대에 말입니다.


제 2막

1막의 밝고, 원색적인 풍경과 달리 2막이 시작되는 공간은 어둡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송번수 작가는 판화와 세리 그라피에서 나아가 타피스트리와 종이 부조로 기예 영역을 확장합니다. 여기서 ‘가시’라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 공간부터 작가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듯 보입니다. 작가는 부조리한 사회와 재난을 주제로, 추상적인 예술 세계를 발전시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반영한 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종교적 영성에까지 작업 영역을 넓히며 자신의 작업 영역을 넓혀갑니다.

<이라크에서 온 편지>에 관하여

나의 작품 테마는 1960년대 말 <화집점> 시리즈에서 1970년대 <공습경보>, 1980년대 “가시 부조 작업” 1990년대 <상대성 원리>, 그리고 2000년대 “가시 시리즈”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작품의 주제들은 자연과 사회구조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환경들을 날의 생각 깊숙이 숨어있는 감성과 렵합시켜 표출하는 것인 바, 작가란 본질적으로 시대의 기록자요 감시자이고 나아가 비판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림이 가진 힘이 아주 미미할지라도 나는 그림을 통하여 우리 인산들의 삶을 답하는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고 싶다. 이번 출품작 “이라크에서 온 편지”도 2002년 이라크 전쟁 시작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자살폭탄 테러 등 파괴와 살상으로 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이라크 전쟁 상황을 나의 조형 감각으로 기록하고 이 시대의 폭력을 고발하고 저항하려는 나의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송번수

이라크에서 온 편지, 타피스트리 (2004)

송번수는 ‘가시’라는 작업 주제를 가지고 타피스트리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타피스트리는 실로 짜인 회화를 일컫는 말로, 씨실과 날실로 엮어 작업을 완성하는 섬유 예술 작품입니다. 위 작업은 타피스트리로 명암을 표현하는 것으로, 섬유 예술 작업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작업에 속합니다. 타피스트리라는 것 자체가 적합한 위치에 적절한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기본인데, 명암은 그것을 여러 가지 실로 바꾸어 가며 직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의 그의 작업은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바라볼 때 반복적으로 요동치는 숭고함이 있습니다. 물론 단색의 작업 또한 구조적이고, 형태가 복잡하기에 아름다움과 그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만, 송번수 작가의 대상 구성과 배치 능력이야 작업세계 전반으로 널린 강점이니만큼, 타피스트리 작업에서는 그의 새로운 영역과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돋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위 작업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건을 직접 겪은 작가의 작업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폭파됩니다. 그때 작가가 직접 목도한 검은 물과 그 위에 떠다니는 잔해들을 보고 만든 작업입니다. 검은 물은 군청색의 실로, 잔해의 참혹함은 붉은색 실로 그 주제가 드러납니다.

위와 아래는 송번수 작가의 판화 작업입니다. 그의 당시 주제의식에서 장미는 민주주의를 상징했습니다. 가장 왼쪽에 수혈받는 장미는 수혈이 필요한 우리를 의미합니다. 밤에 핀 꽃, 유린당하는 민주주의가 드러난 3 점의 작품입니다. 이 작업 이후에 작가는 장미에서 봉오리를 떼어냅니다. 그리고 작가가 말합니다. “어느 날, 꽃이 부차적인 설명처럼 느껴졌다”라고. 이후 그는 ‘가시’의 세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자아, 현상, 종교적 영역까지 그 세계를 확장합니다.

왼쪽부터 흰 장미, 야화, 예술가의 만찬. 모두 2012년 작품

2막 2장

이 공간은 2막 시작의 어두웠던 세계에서 다시 밝아집니다. 작가는 파리로 1년 동안 유학을 합니다. 더 길게 있고 싶었지만, 고국에서 고생하는 처자식들을 보면서 더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는 1년간 성취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기법들을 많이 배워옵니다. 그는 이 곳에서 ‘가시’라는 작업 세계를 발견합니다. 파리에서 본 전위적이고 시각적인 충격들을 자신의 작업 세계에 반영하고, 섞으며 적당한 선을 찾습니다. 꽃봉오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떼어내는 시기도 이때입니다. 그는 석판화와 한지 부조를 작업하며 타피스트리 기법으로 가시라는 주제를 아름답게 승화시킵니다.

광화. 미친 꽃.
뭉소 공원, 송번수 작가가 파리에 있을 적 가고 느낀 곳들이 관객들을 반긴다

아래는 그가 처음 주제를 만들고, 파리에서 찍어낸 가시의 석판화 버전입니다. 가시는 보이는 것처럼, 초기에는 형체에만 명암이 있고, 뭉툭한 작업이었습니다.

꽃의 환영으로 시작하는 이 공간은 ‘가시 줄기’와 ‘타피스트리’를 만나게 된 파리 유학시절의 기억부터 자신의 일상, 철학 감정 등 송번수 작가의 개인적인 독백이 담긴 공간입니다. 꽃을 소재로 하는 판화작업들과 종이부조로 제작된 <작업실의 일상> 시리즈, 그리고 대형 타피스트리로 재탄생한 <상대성 원리> 시리즈와 <분노의 자아>등의 작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타피스트리로 명암을 넣는 일은 최상급의 숙련을 필요로 합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주제뿐 아니라 자신의 기예를 발전시켜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습니다.

푸른 가시

가시 줄기의 부조 작업. 한지를 약 열다섯 겹 겹치고, 압착하여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강한 인상과 아픔. 또는 감상자의 어떤 영역을 엄중하게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가시는 회초리 같아 보이기도 해서, 감상자의 아픈 부분을 꾸욱 눌러, 진물을 짜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송번수 작가의 부조 작업. 작업실의 일상 연작으로, 작가 자신이 작업실에 있으며 느끼고, 보는 세계들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합니다.

아래는 2막 2장. 그러니까 파리 세계의 타피스트리 작업들입니다.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선의 구조를 직물이라는 이산적인 방식으로 엮어 낸다는 것이 아름답고, 또 숭고하게 다가옵니다.

거대한 타피스트리, 그리고 판으로 찍어내던 작업 세계의 선명함을 직물 작업으로 옮겨올 수 있는 특별한 기예가 송번수를 예술가의 반열에 서게 합니다. 삼라만상과 균형의 주제를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그의 능력은 감상자를 숙연하게 합니다.

<분노의 자아> 1996년 작품입니다. 거대 타피스트리 작업은 사진이 주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감성을 채우라는 듯 강요하며, 흡착하듯 감상자의 시선을 잡아 끕니다.

예술가의 만찬이라는 거대 타피스트리 작업. 개인적으로 마음에 크게 닿았던 작업이었습니다.


2막 3장: 그의 목소리

2막 3장에서 송번수는 종교적 메시지와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이 담긴 작품들을 담는다. ‘그의 목소리’라는 공간은 절대자의 목소리와 작가의 소리가 혼성된 공간이다. 때로는 개인이나 한 국가의 고난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하고, 종교적 도상으로 읽히기도 하는 가시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의 정점은 <미완의 면류관>이다. 끊어진 가시면류관의 완성을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이 공간은 무언극의 마지막 주인공이 관람객이라 말하며, 개인의 목소리를 작업에 포함한다.

송번수 작가가 1막 세계에서 보였던 화려하고 원색적인 세계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2막을 지나 2막 3장까지 이어지는 세계는 두 세계의 끝만 보았을 때 참으로 상이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흐름을 타고 천천히 그 작업을 감상하다 보면, 작가가 40여 년의 시간을 이름을 걸고 작업을 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세계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자신의 양식을 찾고, 그것을 숭고하게 완성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는지가 드러납니다.

흑백의 가시 타피스트리 작업. 광원이 아래에 있는 듯한 배치와 가시 오브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 또한 어떤 커다란 존재를 등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숭고한 아름다움을 가중시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없는 공간임에도 뒤를 흘끔거리며 바라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미완의 면류관>
미완의 면류관, 송번수

송번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은 독자의 해석이 중요함을 늘 강조했습니다. 이 작업은 능평성당의 가시 면류관 작업의 파란색 버전입니다. 2000년, 작가는 능평성당으로부터 십자가 대신 걸 수 있는 거대 타피스트리 작업을 의뢰받습니다. 송 작가는 처음에는 거절합니다. 자신의 작업으로 어찌 십자가를 대체하겠으며, 십자 모형 대신 그분의 숭고함을 드러낼 수 있는 도형을 어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거절 끝에 작업은 수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흑백으로 완성합니다. 연결되지 않은 끊어진 면류관. 작가는 이것을 끊어낸 이유가 감상자의 몫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감상자는 구원을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은 이미 완성되었고, 저 뜯어진 부분은 보는 이가 조금만 준비하면 받을 수 있는 구원의 영역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역시 해석은 감상자에게 남겨두었습니다. 본 작업은 2002년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완성된 시기에 비해 명성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작업이 걸려 있는 능평성당은 경기도 광주의 작은 성당이며, 가톨릭 특성상 보수적 성향이 있기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합니다.

가시가 뒤에서 뚫고 나온 주제입니다. 제목은 <절망과 가능성>. 송번수 작가는 “인생이라는 것은 절망과 가능성 사이의 진동이다. 삶이 평탄했더면 가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술회합니다. 가시의 목소리가 종교적 색채, 혹은 절대자의 목소리가 섞이는 순간입니다.

일종의 광기

일종의 광기. 깨진 가시 작업 사이로 빅뱅이 시작되며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지려는 듯, <상대성 이론>의 작업 세계의 근간인 기본 도형이 보입니다. 시도가 더 이루어진 세계가 아닌 것으로 보아 작가는 두 작업 세계의 결합을 군더더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1996년 작업)

<미완의 면류관> 작업 이후, 송번수 작가는 가시를 마음속에서 지우고저 노력합니다. 마지막 타피스트리로 등장하는 가시는 타는 가시이며, 사라지는 가시입니다.

2007년 작업입니다. 송번수 작가는 자신의 가시를 태우는 작업을 통해 주제의식의 새로운 전환을 꿈꾸게 됩니다. 그의 작업이 10년 지난 지금. 어떤 세계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무엇을 만들어 나고 있는지 문득 묻고 싶어 집니다.

어떤 이는 한 기법, 한 테마를 가지고 평생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한 부류는 많은 테크닉과 그 시대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어떤 테마를 가지고 평생을 변화 속에서 진행하는 그런 작가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두 작가군 모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후자에 속하죠.

송번수

작가는 마지막 작업에서 자화상 판화를 찍어내고, 그것을 서서히 부수는 작업을 통해 해당 판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작업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이를 캔슬레이션 프루프(Cancellation Proof)라고 하는데, 판 위에 납작 칼을 대고 굵게 긁어내어 그 판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남깁니다. 자화상이 사라지는 모습은 자아가 사라지며 작업 세계만 남는 듯한 숭고함이 남습니다. (1987년 작업)

송번수의 50년의 무언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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