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제로(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01이라 적고 ‘원오원’이라 읽는 것이 있다. 이것은 영어권 대학에서 기초를 말할 때 일컫는 강의를 말한다. 우리말로 옮겨 적으면 기초 중의 기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하 국현)의 현대미술 특별전 <레슨 제로>는 이것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간다. 제로(0)에 대한 이야기다. 그야말로 무(無)로부터 제로를 만드는 과정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 국현은 교육이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18개의 작가들이 작업을 모았다. 우리네 교육을 해체하고 다시 한번 구성하는 작업을 보인다. 예술은 현대를 비판하는 칼이라는 명제를 노골적으로 사용한 전시다.

  • 전시정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전시 제목: 레슨 제로
  •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 전시기간: 3월 31일 – 6월 18일
  • 장소: 과천관 2 전시실

본 전시에 인플루엔서 자격으로 참석했다. 감상은 전시 하루 전인 3월 30일에 했다. 오늘이 4월 16일이니 전시는 날씨와 함께 이제 절정으로 무르익겠다. 개관 전에 특별히 보여준 전시를 이제야 포스팅한다. 본디 포스팅의 핵심은 빠른 소식 전파인데, 내 브런치는 그렇지 못해 한편으론 죄송스럽다.

배포한 보도자료 첫머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관습적인 ‘교육’의 가치를 성찰해보는 흥미로운 주제 전시

현대 미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시대 삶의 문제들에 대해 질문해 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상과 세상에 대해 성찰하고 질문하는 것은 예술이 사회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레슨 제로> 전은 지금 시대의 여러 첨예한 논의들 중에서 ‘배움과 가르침의 과정. 즉, 관습적으로 받아들여 온 ‘교육’의 가치를 의심하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렇지만, 감상자들은 비평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제로(0)를 만들고 재구축하는 과정이란, 다시 말하면 다시 한번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이며, 한편으론 새로운 차원의 ‘프레임’을 세우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대한민국 미술의 권위, 안정성을 입증하는 전시 장소인 <국현>이라는 것 또한 프레임을 떼어 프레임을 새로 씌우는 구조에 힘을 싣는다. 그렇지만 본 전시를 통해 동시대 교육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져본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이라면, 이 전시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썸 32, 2015, 캔버스에 아크릴 150x130cm, 작가, 웰링턴갤러리 소장

팡 후이 작가의 작업이 보인다.

팡 후이는 1965년생으로 중국의 문화 혁명기를 거쳐 성장하면서 혼란의 시대를 목격하였다. 그는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실적인 붓놀림과 대담한 색채로 어린 시절 친구들의 순수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의 강렬한 시선은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캔버스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아이들의 진실되고 조용한 시선이 관람객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매체라고 여긴다. 그림의 모든 요소는 희망 괴로움, 혼란 등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의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관객들을 그의 어린 시절, 아득한 기억을 회상하는 노스탤지어의 세계로 초대한다.

로와정은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기존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가치관과 선입관이 형성되는 초등교육 시스템을 소재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Framed Play는 과거 초등학교 앞 노점상의 뽑기(설탕과자)를 응용한 작품이다. 네모난 틀에 부어 만든 설탕판들이  공간의 구석구석에 설치되어있다. 다양한 모서리와 바닥을 감싸고 있는 11종의 다양한 전개도는 결국 동일한 형태의 정육면체의 도면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화는 결국 다양한 개별성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왼쪽)

로와정: 노윤희 (1981, 서울), 정현석 (1981, 서울)

RohwaJeong: Noh’ Yunhee (b. 1981, Seoul) and Jeong’ Hyunseok (b. 1981, Seoul) Live and work in Seoul

바닥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A4가 보인다. 김민애(1981, 서울)의 작업이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종이 중 하나를 집어 지시하는 바를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지시문의 작업이다. 전시의 방식을 재구성하면서 <레슨 제로>라는 전시의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감상 영역을 스스로 넓히는 작업이다.

김민애는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3》전 참여작가로 현재 런던에서 학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기존의 개념과 관습적인 인식의 틀에 끊임없이 균열을 가하는 김민애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시와 작품, 그것이 배치된 공간을 마주했을 때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는가? 보이지 않는 원칙이나 규칙이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어떤 개입을 통해 이를 배반하거나 기대에 어긋난 방식을 작동시킨다면 그것은 좌절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가능성일까? 기대에 어긋난다는 것은 현대미술의 또 다른 원칙일 뿐인가? 작가는 이를 위해 ‘장소 특정적 텍스트 작업’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전시의 작품과 맥락에 특화된 지시문(명령문)들은 각각 다른 위치에 무게감 없이 배치됨으로써 습관적으로 행 할 법한 (전시 또는 작품) 이해의 방법들을 당혹스럽게 돌아보게 하고, 관객들을 새로운 인식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이완은 인간과 사회,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드러나는 불균형한 관계에 주목한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가 되는 방법>은 작가가 수집한 마네킹, 가발, 빗자루, 말린 생선, 캔버스 등 각양의 잡다한 사물들을 이용하여 동일한 무게 즉, 5.06kg을 기준으로 정밀하게 조율한 후 재배치한 작품이다. 파편적으로 묶인 사물들을 올려놓은 채 도열한 저울추의 모습은 강박적으로 강요되는 ‘우리’라는 폭력적인 집단성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맞춰진 개별적인 존재들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쓸쓸한 기준>은 작가가 무작위로 수집한 다양한 재질의 물건들을 자르고 모서리를 매끈하게 갈아 ‘거울’처럼 매끈한 표면을 만들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들이다. 결과적으로 망치 또는 금속 재질은 가능하지만 벽돌이나 나무 등의 사물들은 매끈한 표면의 구현 이불 가능하다. 하나의 기준과 목표를 정하고 사물들을 가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개별적인 사물의 본질적 성격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는 상이한 존재들에 일괄적으로 적용된 원칙과 기준, 또한 그것이 초래하는 상황과 결과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로와정 작가의 Framed Play를 뒤로 작업을 보러 가는 감상자

김범은 주변의 일상적인 사건과 소재들을 이용하여 습관적인 지각과 인식의 안일함에 끊임없이 자극을 가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에서 작가는 사물에 대한 애니미즘적, 의인법적 접근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두 점의 영상은 자신의 존재 ‘새’라고 배운 돌과 <향수>로 유명한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인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그리고 ‘돌’을 가르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에서 가르침의 대상이 되는 ‘돌’은 다양한 새의 도감이 붙어 있는 벽을 배경으로 인간 전문가에게 여러 종류의 새와 생태에 대해 배우고, 새의 자세로 나무에 앉는 방법 등‘새’로서 필수적으로 습득해야 할 개념을 배운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에는 화면 한쪽의 바위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독하고, 강의하는 여성과 남성이 등장한다. 무생물이자 광물의 하나인 ‘돌’에게 인간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에 대해, 인간의 언어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예술인 ‘시’에 대해 설명하고, 가르친다는 행위는 엉뚱하고 무의미한 행위의 극단처럼 보인다. 관객들은 두 시간 반이 넘는 비디오 영상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의 일방성과 독단성, 통제성 등을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교육이란 사회적 시스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공통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주입시키는 사회화 과정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 참여 작가 18인/팀은 예민한 관찰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한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에 대한 관념과 기존의 가치에 균열을 가하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은 ‘교육’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간의 팽팽한 긴장 상태를 이완시키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양혜규는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리옹 등 국제적인 비엔날레 참가와 뉴 뮤지엄, 퐁피두센터 등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통해 국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무명 학생 작가들의 흔적>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교과서에서 책 주인이었던 학생들이 필기 흔적만을 남기고, 교과서 자체의 원래 내용은 지워버린 결과물을 보여준다. 교과서에 남은 흔적들은 반복적으로 행해진 특정 지식의 가르침과 그에 대한 반응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가는 교과서로 상징되는 표준화된 지식과 제도 속에서 무언가를 쓰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흔적을 통해 기호와 흔적으로만 남은 익명의 존재 즉, 쓰기의 주체였던 학생들의 행위를 부각하며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작가는 그들을 무명의 ‘학생 작가’라고 명명함으로써 교육제도의 일방성 속에서 학습을 강요당했던 수동적 존재를 주체적인 창작자의 위치로 새롭게 자리매김시킨다.

팡 후이, 블로썸 26, 2013, 캔버스에 아크릴, 180x180cm, 작가, 웰링턴갤러리 소장

팡 후이는 1965년생으로 중국의 문화 혁명기를 거쳐 성장하면서 혼란의 시대를 목격하였다. 그는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실적인 붓놀림과 대담한 색채로 어린 시절 친구들의 순수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의 강렬한 시선은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캔버스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아이들의 진실되고 조용한 시선이 관람객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매체라고 여긴다. 그림의 모든 요소는 희망 괴로움, 혼란 등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의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관객들을 그의 어린 시절, 아득한 기억을 회상하는 노스탤지어의 세계로 초대한다.

사회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시작한 오형근은 1990년대 이후 ‘아줌마’, ‘여고생’,‘군인’ 등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주목하지 않았던 특정 인물군의 모습을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사진 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2000년대에 <소녀 연기>와 <화장 소녀> 연작을 발표하면서 연예문화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한국 소녀들의 불안한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소녀 연기>(2001–2004)는 ‘소녀와 여성’ 사이에서 모호한 정체성과 불안정한 감정적 혼란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여고생들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평범한 여고생들을 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는 초상권 문제로 변경되었고, 결국 연기학원의 여고생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은 졸업앨범 속의 흑백 사진처럼 똑같은 배경 속에서 교복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되는 ‘여고생’의 모호한 정체성과 함께 연예문화가 선망하는 ‘소녀’를 공식처럼 연기하는 소녀의 ‘욕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음을 포착한다. 작가는 ‘여고생’이라는 집단 속의 개별자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소녀’의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욕망’의 형성 요인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임윤경은 최근 작업에서 가족 안에서 개인, 그리고 베이비시터나 가정부처럼 고용과 피고용으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창의적 체험 I>은 수십 년 간 똑같이 반복되는 입시 미술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작가를 가르쳤던 예고 미술 교사는 드로잉 수업을 재연하고, 작가는 이를 토대로 한 장 짜리 ‘소묘 드로잉 지침서’를 만든다.  교사의 드로잉 지침은, 영상에서 그의 음성과 자막으로 제시된다. 참여자들은 지침서를 토대로 자신만의 창작 드로잉을 제작한다. 이들은 검정 테이프를 이용해서 공간 설치를 시도하거나, 지침서를 차주행 경로로 전환시켜서 도시를 체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관습적 인입 시 미술 교육의 방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창의적 체험 II>은 세 쌍의 학생과 선생이 등장한다. 두 채널 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헤드폰을 끼고 영상을 번갈아 시청해야 한다. ‘따라 하기’는 인간이 언어를 배울 때 시도하는 최초의 학습 행위이다.  화면 속의 두 인물은 서로의 행동을 따라 한다. 먼저 학생들은 자신의 선생님의 화법, 말투, 몸짓, 지도방식 등을 흉내 내고,  이 영상을 본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행동을 다시 흉내 낸다. 작가는 자신을 ‘타자화’하고 타자를 ‘자기화’하는 과정 속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이러한 가정이 창의적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Variable Dimensions는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벽면에 설치된 다양한 크기의 못 대가리 위에 투영되는 영상 작품이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못 대가리는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머리와 겹친다. (아래)

교실 속 풍경은 과거의 유사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합판 위에 못과 전선으로 쓰인 문장 Live and Let Live (2015)는 과거 반전 운동가들의 슬로건이었지만, 현재는 개성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살게 내버려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위)

공고한 교육시스템 속에서 개성을 존중하자는 구호는 건전지로 유지되는 꼬마전구의 작은 불빛처럼 한없이 연약하고 미약해 보인다.

서도호는 런던, 뉴욕, 서울을 오가며 각종 국제 비엔날레와 미술관 개인전 등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서도호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 그리고 공간의 이동과 거주를 소재로 한 독창적인 형태의 대형 조각, 설치, 미디어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Who Am We? 는 한국의 전형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드러나는 익명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도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다. 교육시스템의 근간인 학교는 인간이 태어나서 최초로 소속되는 ‘집단’이자 사회화의 핵심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교육’ 체계를 통해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주입하고 개인은 거대한 사회 집단의 작은 부속품으로 작동되는 법을 배운다. 작가는 졸업 앨범 속에 집단적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익명의 학생들의 이미지를 조합한 벽지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관객들은 작품에 다가가면서 비로소 말끔한 벽지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익명의 인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Who Am We?”라는 제목은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작가는 이러한 의도적인 왜곡을 통해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감춰진 존재들의 개별성을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에게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행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가 평생을 반복하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레슨 제로’의 숫자 영(0)은 극단의 양면성을 지닌 신비로운 숫자다. 모든 숫자에 영을 곱하면, 결과는 영이 된다. 하지만 모든 숫자 뒤에 엉르 붙이면 열 배씩 늘어난다. 교육의 가치는 사용 방법과 주체에 따라 때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때론 놀라운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관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 삶의 조건들을 새롭게 살펴보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안정주는 우리 사회의 공고한 시스템을 의심하고 틈을 파고들며, 재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놀이와 교육’, ‘사회화’, ‘개인과 집단’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가 프로젝트>(2012)는 동일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 고등학교 학생들과 진행한 워크숍의 결과물로 제작된 영상 작업이다. 한국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가들은 대부분 학교가 위치한 지역명이나 주변의 산과 강의 명칭과 함께 진리, 정의, 애국 등 인재 육성의 큰 뜻과 학생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단순한 멜로디와 반복적인 가사는 학생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의무적으로 익혀야 하는 이러한 교가들은 학생들 간의 유대감 강화와 함께 때로는 집단적인 훈육 시스템의 몰 개성화와 일방적인 가르침의 모순을 감추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학생들은 작가와 함께 교가의 가사를 바탕으로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였다.

히로코 오카다는 교육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작가이다. <몸 실뜨기–프롤로그>, <몸 실뜨기>이 두 작품은 허구와 현실이 얽혀있는 서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몸 실뜨기>는 한국과 도쿄, 자카르타에서 진행한 작업으로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 특히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협업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몸 실뜨기”는 어떠한 규칙도 없고, 아무런 설명 없이 “실과 우리의 몸을 이용해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게임이다. 이 과정에는 특정한 강사도, 경쟁의 요소도 없으며 게임과 같이 수행을 통해 법칙과 행동양식을 배워 나간다. <운동>은 일본 전역에서 수행되는 라디오 체조를 참조, 작가가 새롭게 패러디한 작품이다. 80년의 역사를 가진 라디오 체조에 참여하는 것은 일본의 초등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작가는 체조의 건강증진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일상의 삶에서 지나치게 강조되는 집단성을 경계한다. 또한 어릴 때부터 체득되는 일렬의 군무 형태와 반복성은 사회적 속성을 드러내면서 일본의 교육 철학을 상징화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일본의 교육과정이 개인보다는 집단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내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작가는 집단 체조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를 퇴치해 줄 체조라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 동작과 스크립트를 상상하여 유머러스하게 제시한다.

필름, 출판, 설치 등 미디어를 통해 작업하는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는 주변 세계와는 다른 커뮤니티 안에서의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를 탐색한다. 예술을 분석과 상호 지식의 과정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그의 연구는 기관, 미술관, 학계, 사회적 영역 사이에서의 이동과 확산을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 탐구하며 열린 담론을 생산한다. 작가는 전 세계의 다양한 교육 모델을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 교육시스템의 상이한 구조와 전통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화성을 위한 교육은 무엇인가?>를 통해 작가는 국제 예술학교에서의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2011년 Nomas재단의 도움으로 작가가 로마에서 시한 이 워크숍은, 2012년에 쿠바의 하바나 비엔날레의 일부로 진행되었고, 2013년 인도 벵갈루루에 있는 밸리 스쿨 크리슈나무르티 재단에서도 진행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워크숍을 통해 작가는 지식 전달과 미술 교육의 대안적인 모델을 실험한다.

<레슨 제로> 전시는 작업 매체가 영상뿐 아니라 일련의 ‘교육 정보’를 담고 있어서, 일반 작업들을 감상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때문에 본 포스팅이 미처 소개하지 못한 작가도 있고, 감상보다 보도자료 위주의 텍스트라고 해석하는 감상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주제의 전시에서 강한 주장과 감상은 또 다른 프레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명제 아래 오랫동안 적어 두었던 감상을 모두 지웠다. 아쉬움은 컸지만 어떤 글을 남기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택한 침묵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분명한 것은 이 전시는 기존의 교육 체계에 충분한 의구심과 근거를 가지고 기획한 전시라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시간을 내어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남긴다. 프레임-새로운 프레임의 등장은 시대정신의 교체처럼 정반합의 과정이다. 때문에 본 전시가 새로운 프레임으로 세울지도 모른다는 필자의 우려를 이미 결정된 사가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공론화되기엔 너무나 이른 판단이며, 전시는 이러한 가치 판단에 유보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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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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