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소고 수필선

참 작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평소 누군가가 제 손을 자세히 품평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엄마 손에 따라갔던 미용실 누나가 한 말이 귓가에 남았습니다. 누나는 “손가락이 짧고 뭉툭한 것이 꼭 개구리 손 같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저는 그제야 제 손이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평범하다는 것. 그러니까 적절한 비율로 손기둥 둘레가 있고, 길이는 적당히 뻗어 있어서 무언가를 톡톡 치거나 쥐기 좋은 모양.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것과 나의 차이인 것임을. 저는 듣는 대화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살다 보니 가끔씩 누군가와 손을 대어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 손이 작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힘을 기르면 손가락이 조금은 길어질까 하여, 조막손으로 아령도 꼭 쥐고, 팔꿈치를 부들거리며 철봉에 매달리며 근육을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손등 위로 불룩, 근육이 붙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꼭 정통 햄버거집 패티처럼 두툼합니다. 아마 여기까지 읽고 나면 미소쯤 날아드는 분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 사실이라서 저는 웃음이 납니다.

이 글이 있기 전까지 제 손가락이 어떻게 붙어있는지, 제 손바닥은 어느 정도 두께인지 아는 분들은 없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첫 소개에 이 글을 들고나가니, 다들 저의 손바닥 모양새만 유심히 보겠지만, 저를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 중에는 처음으로 제 손을 다시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어쩌면 여러분은 제 손을 관찰하는 것이 끝나면, 자신의 것을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눈은 신비롭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으로 농을 던지는지, 눈물을 떨구는지, 진심을 전하는지 모릅니다. 눈을 뜨면 타인의 표정으로부터 진실과 거짓을 분리해내려 하고, 정말로 저 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데 익숙해진 제 모습은 타자의 눈에는 얼마나 정직해 보이겠나 싶습니다. 꾸벅대는 저는 얼마나 얼이 빠져 있을지요. 좋아하는 사람과 있었을 때 저의 모습은 얼마나 순진할지요. 아마도 하루만 제 삼의 눈으로 저를 보고 다닌다면, 그 시작이 머지않아서 이불을 차듯 “이 바보야!” 하고 소리칠 것입니다.​

저는 왜 이 사진을 찾은 것일까요

오늘은 장어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당 벽 쪽으로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어를 먹는데, 반대편에 보이는 익숙한 모습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 아는 이의 형상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설었습니다. 매일 정면으로만 보던 그 사람이 비스듬한 각도에서 고개를 떨구며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곁눈질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음식이 들어갈 리 없었습니다. 일인칭 시점에서 일어나서 만지고, 소통하던 대상이 모두 타자이던 시간과, 거울 속 익숙한 자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져서 관찰과 거부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예술은 저에게 거울입니다.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하여 곰곰이 말을 만들어 봤는데, 그것이 ‘예뻐서’라는 이유는 딱히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조금 필터가 씐 거울 같습니다. 화가가 밤낮으로, 혹은 일필휘지로 갈궈놓은 매개 앞에서 저는 본인의 아름다운 면을 발견하여 움찔대기도, 추악한 낯짝에 뒷걸음질 치기도, 혹은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아 조금 더 앞으로 걸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라는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존재들을 시각으로 빨아들이며 이해하려 드는 또 다른 존재인가 보다-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예술을 말한다면, 그것은 저에게 세상의 것들 중, 그나마 투명도가 적당한 거울 같습니다. 저는 이 거울이 참 마음에 듭니다. 가로로 길이를 재고, 세로로 크기를 가늠하여 본 다음, 가능하다면 힘껏 들고 다니며 항상 곁에 두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시로부터, 노래로부터, 사랑하는 임의 형상으로부터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의 뒤로 심연이 너르게 펼쳐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은 곳 너머와 통공 사이에는 얇은 막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그 얇은 막으로 비치는 피조물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서, 그것을 꼭 쥐려 달려든 나르키소스는 그만 숨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손을 뻗어 그것을 살짝 건드릴만한 담력으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듣기로, 나르시시즘 환자들은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애정을 베풀기 어렵게 되거나 심각한 배신, 비난, 결별 등의 환경에 여러 번 노출되어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이들은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양상으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이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돌아 보이는 저의 모습에 다른 어떠한 주석도 못 달겠어서, 주저하는 제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고개를 들어 불투명 창의 잠금장치를 아래로 내립니다. 옆으로 밀어 창문을 엽니다. 그랬더니 눈 앞에 새파란 하늘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진즉에 열걸 그랬는데, 나는 그것이 이렇게 지나는지도 몰랐네요. 파랗게 물결 지는 창문 밖 질감에 정신을 놓을 뻔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흰 고래가 파란 물결을 타고 제 눈 앞을 유유히 활공합니다. 고래 등에는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가 올라타 있습니다. 저를 향해 손짓합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실 눈물은 그렇게 쉽게 흐르지 않습니다. 하긴, 지치지 않고 울어본들 무엇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거울 속을 향해 힘차게 손짓한들 무엇을 만질 수가 있겠어요.

이것이 저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눈물은 나지 않을 것이기에, 저는 울음 대신 그냥 웃고 말겠습니다.

Fin.


*뱀발: 어딘가에 나갈 자기소개 글이었는데, 너무 가감없이 나의 마음을 적은 것 같다. 조금 순화해서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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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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