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케이스/구슬

술 경험은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것이어서, 그것을 들켰다 생각이 드는 날에는 똑 코 끝이 간지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것을 만나는 시각은 정해진 것이 없고, 삶마다 그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여름 득세가 한 풀 꺾이고 바람이 슬슬 추운 입김을 내려던 어떤 날, 하늘엔 잠자리가 꽃가루처럼 날리는 오후 한가운데.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뭉친 가래를 뱉듯 세상에 혼잣말을 던집니다. “세상 참 예술이네.” 당신의 허리춤에는 훌라후프처럼 손수레 쇠기둥이 둘러 있고, 등 쪽으론 무신경한 폐지들이 피로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당신이 낸 소리는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해서, 저는 물 잔을 끼얹듯 당신의 세상 속에 던져집니다. 그 풍경이라 하면 사람의 것은 없고, 쓰름매미와 아스팔트를 밀고 나가는 타이어의 것, 더욱 귀를 기울이면 곤충의 날갯짓하는 음색을 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주름이 골짜기처럼 깊은 당신의 입. 그곳에서 튀어가듯 나왔던 비명 같은 감상이, 나는 더욱 예술 같았다고, 다 늦고, 이렇게 늙어야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어린아이가 꼬깃꼬깃 모은 유리구슬처럼 몰래몰래, 그렇지만 소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묵직하게 모인 그것이 다른 친구네를 가려는지, 잘그락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닙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어른의 마음일랑 어찌나 몽글몽글한지. 가끔은 조용히 ‘그것을 지켜주고 싶다’고 홀로 되도 않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마음 저 편에 손을 깊숙이 뻗어, 먼지가 스펀지처럼 쌓인 나의 틴 케이스를 꺼내어 봅니다. 아직 그곳에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후 하고 바람을 불었더니, 뽀얀 먼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었습니다. 케이스 아래로 손톱을 끼워 그것을 열었습니다. 아아,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나의 유리구슬. 민물빛 투명한 유리 속에 손톱처럼 추억이 새겨져 있어요. 그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 내가 죽을 만큼 증오했던 기억도 어떤 구슬로 남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도 죽을 만큼 괴로운 어떤 기억도 잊힐 만큼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예쁜 구슬로 남아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쁜 구슬은 모두 기억이기에, 하나를 들어 올려 햇볕에 말리면 그림자 사이로 추억이 영화처럼 흘러납니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를 말하는 순간에도 그것의 정체를 반쯤 드리워 놓은 것일까요. 나는 폐지 줍는 노인의 이데아를 함께 가졌지만 그것을 보일 길은 영영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겠어요. 찰나로 스치는 옷자락 같은 시간에,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것이 예술이었음을 호소한다면 어떤 이가 끝까지 들어줄까요. 그것이 어찌나 치밀하고 계획적인지 촘촘한 햇살 하나 들어갈 틈 없는 논리라면 어떨까요. 감정이 모여있다 못해 소용돌이치듯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은 또 어떤 세계일까요. 저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 길이 없어, 틴 케이스를 들고 길을 잃은 사람. 듣자 하니 존재와 시간은 무심하게도 스쳐 다닌다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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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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