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을 마감하며

9월 마지막 날, 다들 불꽃놀이는 잘 봤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곳에 딱 두 번 갔는데, 한 번은 스물한 살때 짝사랑했던 사람과, 다른 한 번은 친구와 함께였다. 오늘은 집 안에서 펑.펑. 소리를 들었다. 기억은 참 소중하다. 초침은 현재를 지나는데, 하늘에 울려 퍼지는 소리만으로 나는 그때로 돌아간 듯 설렜다. 그러나 그때의 나를 딱히 다시 보고 싶진 않다. 나는 과거가 참 후진 사람이고, 현재는 후진 사람임을 잊고 산다. 그렇지만 과거의 나와 그 사람들, 모두 반가웠다.


회고

이번 달, 나는 모처럼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우선 펑크가 나서 너덜너덜한 일을 하나 받았다.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모든 약속을 미루고 집중 수술에 들었다. 이제 이것의 상태는 회복기에 들어서, 열흘 뒤 론칭을 앞두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사흘 동안 6시간 잠을 잤고, 총 3주의 주말을 반납했다. 이 외에도 50 페이지 정도 되는 원고 하나를 썼다. 이것은 마지막 검수가 끝났을 때 13 페이지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편집 방향이 꽤 옳다 느껴져서, 나는 글을 참 못 쓴다는 생각을 했다. 고맙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른 하나는 9개월 간 이어 하던 작업을 1차로 마무리 지었다. 방금은 미술 전시를 읽고 글을 쓰는 작업 두 개중 하나를 매듭졌다. 주중에는 (당연히) 일을 했다.

참 아득바득 살았다. 이렇게 악착같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자아실현과 생계를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라니. 엄청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의욕

의욕이란 그 속성이 재밌다. (이론적으로) 나는 여유 있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힘껏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개인 프로젝트를 끼워 넣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는 빈틈이 많다. 이것은 최소 4차 이상 유지 보수를 해야지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10월엔 부디 독서 할 수 있길 바란다. 시장조사다 뭐다 해서 슬슬 미뤄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읽고 싶다. 오랜만에 암기도 좀 하고, 주입식 교육이 그립다.

생애

노화가 진행 중이다. (나는) 슬슬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피로가 회복되는 기간이 늘었다. 이제 조금만 무리하면 눈앞이 흐릿해진다. 근력이나 심폐는 아직 그대로인 듯한데 어디선가 계속 물이 샌다. 비유하면, 묶인 풍선 표면에서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것은 복합적이고 층위가 높은 사고를 방해한다. 사고의 인내심을 바닥낸다. 단편적인 것을 가지고 확증을 내도록 유혹한다. 고차원적 사고를 포기하게 만든다. 8월을 마감하면서 나는 ‘변화’를 말했다. 이것은 9월에도 유효했다. 나는 변화를 쉬지 않았다. 이것이 부디 10월에도 유효한 다짐이길 바란다. 이대로 잠들면 영원히 깨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횃불을 바짝 치켜들기로 했다.

감상

한 달 동안 네 명의 프로젝트 관리자와 일을 했다(이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관리자의 의견을 존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3년 전 이맘때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와 식사할 일이 있었다. 대화 주제는 조직 관리였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

“관리자 앞에서 그 외 구성원은 모두 조언자일 뿐입니다. 쉬운 말로 ‘나는 떠들 수 있고, 건의할 수는 있지만 결정은 관리자가’ 합니다. 그리고 일단 한 번 결정이 나면, 구성원은 그 선언이 아무리 싫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것을 돕습니다.”

3년 전 일이니 만큼, 워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이제야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참 늦었다. 이마저도 소를 잃은 뒤에야 떠올랐으니, 나의 습관성 언행과 행실에 심히 유감이다.


어제 잠든 나는 오늘의 나였고, 이제 잠들 나는 내일의 내가 될 테다. 대충 살고 싶은 나는 오늘도 어디쯤에서 놀고 있는지 궁금해하다가 이렇게 하루를 썼다.

단골 꽃집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뒀다. 사장님 말로는 유학 갈 준비를 하느라 고향에 내려갔다고. 간략하게 그분의 근황을 들었다. 공부다, 유학이다, 직장이다 마스터 플랜이 짜여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렇다. 다들 열심히 산다. 모두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앞의 생을 성실히 먹는다. 나는 이것이 참 대단하다 싶다.

그래서, 모두들 불꽃은 잘 봤는지? 그리고 다들 안녕히 잘 지내고 있는지. 직접 물을 용기는 없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안부를 묻는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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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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