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자전거적 모멘트

9월 4일

전거를 샀다. 상경하고 나서 두 번째다. 첫 번째 자전거는 레스포에서 나온 스프린터였다. 그것은 대학 4학년때 동네 친구가 취직하고 서울을 뜨면서 양육비(?) 명목으로 5만원에 양도한 것이었다. 저렴하고 효용이 좋아 한동안 재밌게 타고 다녔는데, 동네 지하철역에 잠깐 묶어놓은 사이 도둑맞았다. 아쉬움이 컸다. 곧 자전거가 사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기회의 몸통은 미끈거렸다. 도둑맞듯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서울시엔 따릉이가 설치됐다. 따릉이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자전거다. 그것은 뉴욕의 씨티 바이크(City bike)에서 아이디어를 받았다. 서울의 것은 한 시간을 대여하는데 이천 원을 받는다. 나는 그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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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좁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자전거는 자유롭게 접고 펼 수 있어야 했다. 6개월 정도 조사했다. 그리고 브롬톤을 찾았다. 자전거를 사면서 이것저것 함께 구매했다. 따지고 보니 따릉이를 1,500 시간 탈 수 있는 금액이더라. 이천 원이 아깝다는 말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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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긴 연휴였다. 약 열흘 정도의 시간이 났는데, 친한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 전에 미술관 한 군데를 다녀오고 싶어졌다. 약속을 한 시간 뒤로 미뤘다. 행선지는 혜화동에 있다. 사진은 이대와 아현역 사이. 신호 대기중이다. 거리엔 은행 열매가 한참 떨어져 있었다. 가을은 겨울 베일을 쓰고 있었다. 나는 옷깃을 세워서 목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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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현과 충정로 사이. 편의점에 들렀다. 선물로 받은 기프티콘이 곧 만기라는 알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프티콘의 정체는 비타민 음료다. 또 다른 직장 동료가 힘내라고 준 선물이다. 이것을 일찍 바꿔먹지 못한 이유는 집 근처에 세븐 일레븐이 없었기 때문이다. 힘은 항상 없었는데. 정성은 만기가 될 즈음에야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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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종근당

충정로에는 아버지가 본사에 계실 때 살던 집이 있다. 나는 신촌에서 이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아버지를 뵀다. 충정로는 서울에서 아빠에게 처음 밥을 얻어먹었던 곳, 그리고 당신과 다투고 군대를 간 곳도 이 곳. 그렇다고 충정로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동네일 뿐이다. 이 세상을 사는 나도 평면적인 서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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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사거리

신호를 대기하면서. 서대문 신라스테이 앞은 항상 차가 많다. 명절이 길어 도로에 차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정차 단속은 계속이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벤츠 한 대가 정차선보다 앞섰다. 경찰관은 창문을 내리게 했다.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짓던 공무 수행적 미소가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용무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진다. 인지보다 잔상이 더 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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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빌딩

흥국생명빌딩엔 세화 미술관이 있다. 해당 건물 로비에는 강익중 작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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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2008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2015년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정권의 무능함을 규탄하는 궐기가 여기에 있었다. 요즘에는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는 분들이 남아 계신다. 누군가에게 2017년은 아직 201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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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으로 부터 3년. 그냥하는 이별도 일 년이 아픈데. 긴 연휴에도 이 곳을 뜨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체하며 신호를 받았다. 자전거에서 내려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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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사거리

종각역 사거리를 지난다. 2009년 겨울, 나는 이 곳에서 타종식을 봤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였다. 우리는 영원할 줄 알았다. 지금 그들은 뿔뿔히 제 갈길을 간다. 그때의 밤은 무심하게 오늘 낮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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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탑클라우드 건물엔 로고가 예쁜 카페가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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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과 종로3가 사이에 탑골공원이 있다. 도시는 사람들을 소득분위, 문화분위, 그리고 연령 분위로 네모반듯 나눈다. 그것을 아는 외부인들은 슬픈 눈길만 지을 뿐, 섣불리 손 내밀지 못한다. 도시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 서로 모른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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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는 준 현대식 건물이 됐다. 이곳의 향수는 건물 재수선 계획과 함께 그 빛깔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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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5가 역은 광장시장이 있다. 이곳 거리는 어르신들이 내어놓은 잡탬으로 북적인다. 이들은 목소리를 대신해 골판지에 맞춤법이 이상한 글자를 적거나, 라디오의 빽빽한 소음으로 호객행위를 한다. 그리하면 살 일 없는 사람들마저 한 번쯤은 고개를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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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한 번도 들어간 적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서울 이곳저곳을 다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장소가 나를 기억할 것이고, 나는 그 때에 흔적을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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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엔 엠마라는 영어 이름을 붙인 동료가 있다. 사진을 찍고 언제 베이커리를 열었나 농을 던질까 했다. 그렇지만 연휴나 농담이나 둘 다 시원치 않아 이 곳에 풀었다. 살살 달렸더니 혜화다. 정신은 평온한데 숨이 거칠다. 그래도 지하서 내내 이동하는 삶을 살다가 위로 달렸다. 조각진 기억들은 되감기하듯 올라와 머리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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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미술관, 내가 아는 것, 강익중

강익중은 아르코 미술관 대표 작가다. 3인치 타일에 메시지를 담고 그것을 도배하는 작업을 한다.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삼라만상>에서, 흥국생명빌딩 로비에서 그를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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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그들의 메시지를 한곳에 모으는 작업이다. 과거 전시와 포멧은 그대로다. 좋을 것은 메시지 정도다. 이전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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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띄어쓰기 없이 동일한 크기에 담긴 메시지. 해시태그 시대의 예술과 결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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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록할때 신중해진다. 이것은 진하디 진한 독으로 풀리거나, 숭고한 고백으로 남거나 한다. 작업은 업적 모르는 이의 명언 적힌 책갈피 같다. 인지 이후에 생각이 길게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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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도대체뭐니”, 김예지

살다가 다들 한 번쯤 벽 어드매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작업은 그 고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듯 했다. 이것은 시처럼 함축되어 있어서 앞 뒤로 나의 이야기를 끼워넣게 되고, 이내 맞는 말이라 합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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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꼭 편한 사람과. 박정하”

이를테면 평범한 말도 충분히 아름답다. (당연한 말이지만) 타자의 입에서 난 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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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욜로(Yolo)든, 구두는 비싼걸로 신자는 다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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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한가운데, 남으로 만나 함께 작업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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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컴퓨터로 문구를 넣을 수 있다. 업로드한 내용은 3일 정도의 검수 유예를 두고 모니터에 진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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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탄 은 사 랑 이 다 B T S

방탄소년단 팬의 말도 오늘을 산다. 변심해도 마음이고, 그대로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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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코 파 이 는 얼 려 먹 는 게 맛 있 다 – 서 채 운

타일은 구획이 있다. 이것은 주홍색 테이프로 구분되어 있는데, 약 160 개의 구획이 있다. 한 구획에 타일이 10 x 10, 총 백 장이 들어간다. 이 건물에만 약 일만육천 개의 타일이, 문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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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엔 천이백 명 시민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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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작업을 찾아볼 수 있도록 이름을 기준으로 사전 정렬한 책자. 친절하게도 사진찍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강익중이 남긴 문구는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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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도 전시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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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이다. 아홉 가지쯤 되는 작업이 자유롭게 흩어져 제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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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구조는 원이 제격이다. 그러나 원은 자기 복제가 아닌 이상 어느 도형과도 차곡차곡 포개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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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구도인 척.

스피커에선 프랭크 콤스톡의 음악이 크게 흘렀다. 미술관 문턱을 넘다 보면 숭고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마주하는 날이 있다. 필립 글라스의 이름을 알게 된 것과 같은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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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은 의자가 되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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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이 되어 예정된 발언을 기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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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저는 제가 충분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저는 외로워 본 적이 있습니다.
네 종종 제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디뮤지엄은 소중하다. 다음과 같은 작업이 키치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전시마다 상기시키니까. 미술관을 나왔다. 지금 출발해서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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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 사거리 맞은편에는 JW 메리어트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2박을 보내고 싶다. 웨스틴 조선, 플라자 호텔, 포시즌즈 광화문, 그리고 그랜드 하얏트 서울. 해외로 나가긴 싫으니 돌아가며 자고 다녀야 한다.

동료와 만났다. 둘은 사람이 많은 도보에서 전화로 서로를 찾았다. 우리는 동남아 외국인 물결에 편승해서 파도타듯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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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네팔 카레집에 들었다. 나는 음식 사진을 못 찍는다. 언젠간 잘 찍겠지 한 게 10년이다. 풍미는 찍힌 사진과 같았다. 우리는 손해보는 계산을 했다. 식사를 하는 중에 또 다른 동료와 연락이 됐다. 세 사람은 합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사람은 동묘앞역까지 걸어서 지하철을 탔다. 한 사람은 차를 타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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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앤트러사이트

합정 앤트러사이트엔 사람이 많다. 지금은 군대를 간 절친이 소개한 장소다. 여기 사장은 나쓰메 소세키에 강한 애착이 있어 뵌다. 앤트러사이트는 소세키의 소설 번역본과 굿즈를 팔고, 그의 이름을 붙여 블랜디드 커피 메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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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구찌 바이크, 그리고 이 카페에 적합한 표적 고객으로 보이는 손님. 잘 빼어 나온 의상과 적당히 드러난 맨살이 요즘 시대의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어딘가 어설프다.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오기 전까지 손을 달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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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앞으로 할 작업 이야기와 쓸모없는 이야기를 목이 아프도록 풀었다. 도움을 준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계획을 세웠다. 실천이 없다면 모두 허황된 소리다. 허기진 영혼을 지닌 세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희망 사항인지, 계획인지 모를 소리를 까닥댔다.

두 사람 중 한 이가 하우스 파티에 초대됐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장소는 부천 어딘가였다. 합정에서 부천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대중교통으로 돌아올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동료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하고 차를 얻어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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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초대 문화. 핀란드와 인디애나에서 인턴을 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 돌아왔다. 친구의 친구를 부르고, 다같이 끊어질듯 아슬아슬한 대화를 잇는다. 초대된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적당한 재미를 느끼다가 헤어진다. 마치 한국 공공 복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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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우리는 번호교환 같은 것 없는 느슨한 관계를 맺고 끊었다. 새벽 두시에 나는 동료와 택시를 타고 그 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두 달만에 술을 마셨다. 숙취는 없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자전거를 점검받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오후 네 시쯤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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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달렸다. 러닝을 할 적에는 끝도 안 보이는 것 같던 길이 삼분의 일로 졸아들어 있었다. 허벅지에 장력이 느껴질 즈음 반포대교 입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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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고 bb5

BB5는 브롬톤 정식 수입 딜러다. 음차로는 ‘비비오’라고 읽는다. 이천십 년 반포대교 5번 교각(Banpo Bridge 5th pillar) 앞에서 샵을 열었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역사가 좋다. 의미는 쌓으면서 만드는 것이라는 듯 무심한 행동들. 그래서 빼도박도 못해져서 그냥 둬버리는 것들. 외부인이 찾아주는 의미들.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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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브롬톤. 자전거가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유광에서 무광으로, 수급하기 어려운 옛 부품에서 (수급하기 어려운) 본사 부품으로 변경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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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색 차체는 내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도장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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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색 브롬톤은 내가 다루면 곧 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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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정비와 조언을 들었다. 정비사 주변에 있는 이케아 가구와 레일형 선반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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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를 마치고 이촌역에서 동료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세 시간 정도 일 얘기를 했다. 그리고 용산역까지 가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가는 길에 트럼프 월드 타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살던 지난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료는 대화가 깊을 수록 현명함이 우러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배고픈 육신을 버려두고 영혼에 밥을 주었다.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자전거를 펴고 용산역에서 삼각지역, 효창공원 오르막을 올라 공덕을 건넜다. 사십 분 쯤 지나서 집에 들었다. 영화 한 편을 켜놓고 깜빡이듯 잠에 들었다.

회고해보니 앞으로 며칠, 뒤로 며칠이 붙었기에 가능한 휴일이었다. 나는 모드(mode) 전환이 빠른 사람은 아니다. 오랜만에 기억에 남을 휴가를 보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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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48시간, 자전거적 모멘트”에 대한 답글 1개

  1. 안녕하세요 저는 강익중 내가 아는 것 전시에 대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사진을 사용하고 싶은데 가능한지요?
    허락해주시면 카피라이트를 기재하여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1. 그럼요 🙂 사용하시고 라이트 url 기재해주세요. 저도 대학원생이었던 시절이 있어서 더 반갑네요. 모쪼록 좋은 페이퍼 완성하시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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