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마감하며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상한 느낌. 무언가 ‘좋다, 싫다’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음험한 기분. 그런 날이면 눈을 채 감기도 전에 기분에 적확한 일들이 하나둘씩 내 앞으로 픽픽 쓰러지곤 했다. 이 생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나. 삶은 참 야속하여라.

아끼는 사람이 퇴사한다. 그리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변화에 어색하게 무덤덤하다. 그래서 말도, 표현도 못 한다. 오늘은 심지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는 나의 응원 없이도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팀장은 그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고, 여기 일은 이제 여기 사람들이 할 테니, 앞으로 쭉쭉 건승하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이나 넘기고 있었다.

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설명 중에 ‘동물은 죽고, 죽이는 것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퇴사를 무리의 분리로 표현하고 싶다. 어찌 됐건 우리는 한 번 얽히고 그대로 풀어져 버리는 실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선으로 꿰어 갈 인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쪽이 살아 있고, 내가 앞으로 살아 있다면, 생이 닿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러니 아쉬워할 필요 없다. 나는 동물 위에 덮어진 존재다.

사랑하지만 떠나보낸 이들이여, 이번 달 나의 꿈에 당신이 나왔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그리만 해 준다면, 나는 당신을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너무 허황해서 돈을 받고도 듣길 포기하는 그런 얘기. 나조차도 듣지 않을 말을 내가 할 것이다. 쓸모없는 이야기를 떨어진 두루마리 휴지처럼 늘어뜨릴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별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의 탄생. 별자리, 모든 것이 과녁으로 보이는 사수자리를 말할 것이다. 그러다 나의 혈액형을 말할 것이다. 내 혈액형이 B형이 아니리라 의심한다고.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실수로 A형이나, AB형 혈액을 수혈받아 밀랍 인형처럼 그대로 몸이 굳는 상상을 한다고 떠들 것이다. 그러다 나의 이명 이야기를 조금 하고, 환청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무감각함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을 이어갈 것이다. 학창 시절 마인드맵을 그릴 때, 남은 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고를 확장하던 그 모습이, 천재의 징후라기보다 자기 세계에 빠져 버린 자폐적 행동임을 고백할 것이다. 그리곤 나의 사랑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반성적 힘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떠벌릴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도록 자아가 굳어간다며 쓸쓸히 고개를 밀어 올릴 것이다.

나는 세상에 죽었으면 하는 존재가 있고, 반대편에는 내 존재 조차 잊혀지는 한이 있어도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곤 그 이름. 내가 사랑하지만 더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을 당신에게 용기 내 고백하려다 차마 못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고백 못 하는 게 아니라”면서, “나는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며 나를 위로할 것이다. 그리하면 나는 등신처럼 당신을 바라보다가 옷핀을 꺼내 그 이름을 박제 액자 깊숙이 박아 넣을 것이다. 끝끝내 가둬놓을 것이다.

한 뼘 손바닥보다 작은 나의 세상은 졸아버린 라면 같다. 행여, 당신이 나의 좁은 세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침묵 때문이다. 솔직해지고 싶지 않은 나의 에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 변변찮게 말랑거리는 알껍데기에 무정란으로 담긴 나의 어림 때문이다. 늦은 밤. 거울 속에 비치는 아는 이의 익숙한 검은 눈자위는 말이 없고, 굳게 다문 입꼬리엔 사연이 많다. 침묵은 압사시킬 기세로 비명을 누르고 있지.

뜬 눈으로 여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알이 굵다.

나는 11월의 일출을 길게 뜯어다가 10월을 밀봉한다. 10월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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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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