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센티미터: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시리즈는 필자가 매 여행마다 겪었던 자전적 경험과 가상의 인물을 교차로 등장시켜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글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s’는 여행자인 씨줄과 가상의 인물인 날줄이 얽힌 새로운 자아입니다. 이러한 전제 아래, 필자는 이 여행의 주인공이 될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에세이일 가능성도, 사진만 진실일 뿐일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식별 가능한) 인물은 모두 사전에 동의를 받았음을 밝힙니다.

이 좋았다. 모르는 사람 스무 명과 실리콘 밸리를 가게 됐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돌아온진 언 2년이 지나고 있다. 사진 정리를 했다. 이 여행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2년 후에나 곱씹는다. 커피 한 잔을 내렸다. 그리고 문득 어쩌면 여행은 그것이 끝난 다음부터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나의 진짜 여행은 이제야 시작된 셈이다. 이제는 2년 동안 해리되었던 기억 조각을 모아야 했다. 새벽 두 시. 덮여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사진을 정리했다.

나의 첫 샌프란행 사진은 야간 비행이었다. 그곳은 한국 땅에서 비행기로 열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여정은 생각보다 곤욕이다. 이코노미석은 특유의 답답함이 있다. 나도 모르게 무릎과 종아리를 접었다 폈다. 열한 시간은 고작 하루의 반일뿐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사람들은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좁디좁은 이코노미석 복도를 왕복한다. 때아닌 런웨이가 펼쳐진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서로를 깨우는 건 예사다. 미국행 747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잠정적 민폐자다. 비행은 “익스큐즈 미(실례합니다).”로 시작해서 멋쩍은 눈인사로 끝난다.

약 80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띠” 소리에 기분은 너무나도 들떴다. 나도 모르게 박수라도 칠 뻔했다. 모르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아, 생리현상을 위해 쉴 새 없이 양해를 구하는 행동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어차피 착륙 후엔 수속을 빨리하려고 레이스가 펼쳐질 거고, 각자 제 갈 길 가버릴 사람들이다. 단지 열한 시간을 붙어 있었단 이유로 인연을 만들기엔 개연성도, 경황도 없다고 생각했다.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서로 간 평균 거리는 20cm, 정말 친밀한 사람과의 거리는 35cm 정도라는 글이었다. 내가 봤을 때 140만 원짜리 이코노미석 승객 간 평균 거리는 20~35 센티미터 사이에 있다. 낯선 사람과 열한 시간을 친구처럼 어깨를 스치는 행위는 사적 영역을 침범하고, 또 침범당하는. 좋지 않은 경험이다.

긴 시간 동안 사적인 영역을 공유하던 옆자리 남자는 ‘함께 비행해서 고마웠다’는 눈인사를 끝으로 확실한 남남이 된다. 나는 장시간 비행에 절어있었고, 기분은 우울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샌프란의 날씨는 더럽게도 좋았다.

오클랜드 베이 다리

우리는 오클랜드 베이 다리(Oakland Bay Bridge)를 지나서야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들어갈 수 있었다.

피어 39

버스를 타고 피어 39(Pier 39)로 향했다. 피어 39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우리는 간단히 밥을 챙겨 먹고 주변을 걸었다. 가이드가 앞에서 무슨 말을 했지만 머릿속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충 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수 백 팀쯤 상대한 사람 같았다. 가이드는 관록 있고 정성스럽게 기계적인 말을 뱉었다. 나는 그런 그의 정성에 화답하고자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와아.”하고 힘없는 탄성을 질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샌프란은 ‘신이 축복한 땅’이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볕은 일 년 내내 따사롭고, 이곳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 세상에 몇 없는 땅이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높고, 동네는 풍요로웠다. 유럽차들이 서울 강남 한복판처럼 다녔다. 식사도 건강한 것만 판다. 정크푸드를 먹으려면 도심으로 들어가거나 한참을 달려야 한다. 건강한 도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움직였다. 날씨는 노곤노곤 몸을 덥혀주는데, 사람들은 냉랭하게 직선 운동을 했다.

희망찬 날씨와 쏟아지는 정보는 나를 제외한 스무 명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미 나의 방안에 들어가 그 문을 잠근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여행 부적응자’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심적으로 그들과 나는 한참 멀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97년도, TV에서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를 보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몇몇은 참된 미소를 띠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한 내면은 화려한 가식 앞에 너무나도 쉬이 가려진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스무 명은 참으로 밝게 빛나느라 나의 가식을 잘도 가려줬다.

자, 여러분 저기 보이는 게 알카트라즈예요.

피어 39에서 바라본 알카트라즈 감옥

나는 잠에서 깨어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렀다. 알카트라즈 감옥 하면 영화 <더 록>이 생각난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이었고, 감독은 마이클 베이다. 음악은 한스 짐머가 맡았다. 영화는 테러범들이 알카트라즈에서 음모를 꾸미는 동안 그곳에 몰래 잠입하는 진압군의 이야기를 그린다. 장르는 액션이다. 잔잔한 파도와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중에 나는 불꽃과 총격전을 떠올렸다. 감옥에 몰래 들어가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니콜라스 케이지를 생각했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금문교(金門橋, Golden Gate Bridge)가 보인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미국은 미국이다. 가까워 보이던 다리는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눈앞에 그 모습을 보였다.

기념으로 으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십오 분이 채 지났을까. 가이드는 버스에 오르길 재촉했다. 사실 더 볼 것도 없었다. 전망대라곤 돌담을 쌓은 커다란 주차장이 전부고, 그 앞엔 1~2천원 하는 자석 쪼가리를 파는 기념품점 하나가 툭 떨어져 있었다. 버스에 올라 다시 한 시간을 달렸다. 우리는 유니언 시티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잠시 걸었다. 비행선이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역시 미국이다.
나는 샌프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잠시 상상하길 그쳤다. 커피는 마시기 좋게 적당히 식어 있었다. 나는 커피를 홀짝였다.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언 2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좋은 꿈을 꾼 뒤 그것이 무엇인지를 꺼내려 애쓰는 사람 같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사진 속 장소가 어딘지.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그러나 아무리 그것을 더듬어도 떠오르는 건 그녀와 우울했던 내 감정뿐이었다.

피어 39 근처

샌프란의 사람들은 활기 넘쳤고 거리는 북적댔다. 실리콘밸리에 들어가기 전, 샌프란시스코 최대의 관광지는 딱 그 정도였다. 활기 있고 북적이는 곳. 그곳에서 나는 곧 죽을 생선 같았다. 나는 아가미를 헐떡이다 이내 지쳐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레크리에이션 앤 파크스 데파르망(The San Francisco Recreation and Parks Department)을 찾았다. 가이드의 말은 어제보단 조금 더 잘 들리는 듯했다. 그는 이곳이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웨딩 촬영을 하는 곳이며, 프러포즈의 명소라고 소개했다.

팔라스 오브 파인 아트(Palace of Fine Arts Theatre)로 가는 길

공원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돔이 있다. 이 돔의 이름은 팔라스 오브 파인 아츠(Palace of Fine Arts Theatre)다. 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파사드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규모의 웅장함과는 다르게 데코레이션은 섬세하고 또 정교하다. 관람객들은 마치 고대 신전의 원형(原形)에 방문한 것 같이 압도당한다.

이곳은 유럽의 그것들과 달리 훼손되거나 증축이 필요하지 않다. 유럽처럼 부식이나 보호를 목적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곳도 없다. 과거에 있던 것을 보전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기둥은 어딘가 부서져 있어야 할 것만 같고, 조각상은 얼굴 한 쪽이 떨어져 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형상은 모두 온전하다. 그러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완벽한 형상은 나의 어딘가를 불편하게 자극했다.

이질감은 걸을수록 점점 커졌다. 과거의 양식이 완전한 형상으로 구현됐기 때문이다. 이곳은 2500년 전 건축 양식이 현역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면 티와 나일론 점퍼를 입은 관광객들은 환경에 녹아들지 못하고 먼지처럼 부유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의 건축물은 현대인과 다인승 쇠마차와 어울리지 않는다. 둘은 서로가 이방인이다. 건축도, 관람객들도 서로를 어색해하기 바쁘다.

극장은 너무나도 그 원형이 완벽하고 정교해서 방문자들을 압도한다. 이질감은 점점 커졌다.

다시 버스를 탔다. 나는 마치 드레스 코드를 잘못 알고 파티장에 갔다가 입장을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치욕감을 씻어내고자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기척이 느껴졌다.

“어땠어?” 인기척이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확실히 나를 보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나?” 나는 되물었다.

“응, 어땠어?” 그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몇 시간을 준비해서 파티에 갔더니 드레스 코드가 맞지 않아서 입장을 거절당한 사람의 기분이었어.’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말은 “좋았어.”가 나갔다.

“흐음. 그래? 난 네가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좀 어색했어. 건물은 옛날 양식인데, 세월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잖아. 관리가 잘 된 오램이라면 모르겠는데, 돌은 채 100년도 안 돼 보이고. 내내 이상한 기분만 느끼다 왔어.”

“응, 그렇구나.” 내가 말했다.

“그런데 딱 네가 보였어. 왠지 네 표정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어. 어딘가 불편해하는 그 느낌말이야. 그래서 물어본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나는 어제 처음 만났다. 버스는 딱 20인승이었다. 자본주의는 그리 쉽게 고독을 허락하지 않았다. 혼자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지정 좌석처럼 내 옆에 그녀가 앉았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부탁하고 하다가 말을 텄다. 내가 아는 건 그녀의 대학교 이름과 우리가 동갑이라는 정보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그녀 또한 말이 없었다. 버스는 또다시 한 시간을 달렸다. 낯선 풍경은 계속해서 펼쳐졌다.

나는 이것이 마치 비행기의 이코노미석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 낯선 사람이 말을 건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눈다. 보통은 딱 거기까지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20cm의 영역을 공유하는 것이 불편해서 말을 건네는 수준 말이다. 어디 살고 있고, 어디 소속이고, 나이는 몇이고 하는 정량적인 것들을 떠벌린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의 관계에 정성적인 것을 끼워 넣었다. 그녀는 이방인에게 “어땠냐”고 묻고 있다.

버스가 멈췄을 때, 우리는 버클리 대학교 앞에 있었다. 동아리 홍보를 위해 걸어놓은 포스터와 고전 양식의 캠퍼스가 보였다.

허스트 메모리얼 빌딩(Hearst Memorial Building), 이 건물은 신소재공학부가 쓰는 건물이다

한낮의 햇볕은 따사로웠다. 나는 교정을 걸었다. 아마도 ‘나’보다는 ‘우리’가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포함된 ‘스물’은 버클리 교정을 걸었다. 스무 명 중엔 당연히 그녀도 포함되어 있다. 교정은 아름다웠다.

한인 학생회 회원 한 명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그는 U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따라 걸었다. 질문이 쏟아졌다. “U 씨는 무슨 학과에요?”,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유학은 몇 살 때 오셨어요?”, “등록금은 얼마예요?” 등. U는 질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최대한 정성스럽게 답했다. 그러나 질문과 답변은 나에게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U의 말을 흘려 들었다.

버클리 대학 도서관

그는 시원시원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U는 버클리에 대해서 이방인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건물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다른 건물은 어떻게 모금이 됐다는 둥, 여기 졸업생 중 어떤 래퍼가 있다는 등의 얘기를 즐겁게 꾸밀 줄 알았다.

쉬는 시간이었다. 스무 명 분의 음료수를 사러 가야 했다. 가이드가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자원했다. 마침 혼자 걷고 싶던 차였다. U가 동행을 자초했다. 우리는 함께 걸었다.

이번에는 U가 궁금증을 해소할 차례였다. 그는 내게 “어디서 오셨어요?”, “학교는 어디에요?”, “무슨 전공이에요?”, “이 단체는 무슨 단체예요?” 같은 것들을 물었다. 형식적인 답변과 자기소개를 마쳤다.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아까 저희 그룹이 했던 질문요.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내가 물었다.

“아, 등록금이랑, 고등학교 한국에서 나왔나 하는 것들이요?” U가 말했다.

“네. 답하기 싫으시면 안 해주셔도 돼요.”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마침 잘 됐어요. 이런 말해 본 적도 없는데.” U는 말을 이었다.

“처음에 학생회 들어와서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이런 질문이 엄청 무례하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질문은 약과에요. 자녀랑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하는 부모들은 이거보다 더 해요. 어떤 부모들은 “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냐?”, “대출 얼마 받았냐?”, “하버드 가려면 성적을 얼마나 받아야 하냐?”, “여기가 좋냐, 스탠퍼드가 좋냐?” 같은 것들을 물어보세요. 처음엔 내가 뭐라고 이런 사적인 걸 말해줘야 하는지 참 많이 고민했어요.

왜, 아저씨 아줌마들 중에 있잖아요. 대답 안 하면 끝까지 물어보는 사람들. 어떤 학부모는 수첩에다가 제 신상을 막 적어갔어요. 취조당하는 기분이었어요.” U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U 씨가 겪은 일. 저라면 엄청 괴로웠을 거예요.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친한척 하고, 일방적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하는 것들이요.”

그는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버클리 입학 성적이랑 하버드 성적을 컨설팅 해 줘요. (웃음) 그런데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굳이 또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왜요?” 내가 물었다.

“그들은 어차피 제 인생에 관심이 없거든요.” U는 말했다.

“이 사람들이 궁금한 건 제 사생활이 아니었어요. 저를 불쾌하게 하면서까지 그들이 하는 짓은 딱 이거 하나였어요. ‘자기 자녀를 여기 입학시킬 수 있는지 자기 재산과 계속해서 대보는 거’죠. 자녀가 지금 버클리에 입학할 수준이 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자기 주머니 사정이랑 딱 대보는 거. 거기서 나오는 질문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U가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그런데 신기해요. 이런 질문해 주는 사람은 S 씨가 처음이에요. 아니, 비슷한 질문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근데 한인 사회가 어지간히 매장당하기 좋아야죠. 튀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겐 말한 적 없었어요. 말하고 나니까 뭔가 속 시원하네요” 그가 말했다.

“다행이네요. 저는 제가 궁금했던 것의 답변을 들었고, U님은 그에 대해서 불쾌하시지 않다는 게요.”

조금 길을 걷다가 U가 말했다.

“페이스북 하세요?”

“네, 기회 되면 친구 해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음료수가 돌았다. 사람들은 핫도그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다음 일정 때문에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명문대생인 U의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뺏고 싶지도 않았다. 가이드의 표현에 의하면 U는 ‘국위선양’하실 귀한 몸이었다. 우리는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버클리를 돌아 나왔다.

전 세계 어딜 가나 공대 건물은 각지고 딱딱한걸까. 컴퓨터공학과와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연구실이 있는 건물

다음 행선지는 산타클라라 대학(Santa Clara University)이었다. 산타클라라 대학은 트리니티와 로욜라 대학교 다음으로 서부 가톨릭 명문 대학이다. 우리는 늘어진 일정 때문에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구글로 떠났다.

다시 올라탄 버스 안에서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이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게 뭐야?

“잘 모르겠어. 너는?” 내가 되물었다.

“나는 왠지 기회가 있을 것 같았어. 실리콘 밸리는 컴퓨터 전공하는 학생들의 로망이잖아. 그래서 처음에는 막 설렜는데. 지금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녀가 답했다.

“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공짜라서 왔어. 그리고 내가 언제 구글 본사나 버클리, 스탠포드에 들어가 보겠냐는 마음도 있었어.” 내가 말했다.

“S는 감정을 절제하는 타입이구나.” 그녀가 말했다. 버스는 그대로 두 시간이 가깝게 달렸다. 창밖으로 오라클, EMC 등 한 번쯤 들어본 기업들이 보였다.

내가 그녀와 이야기할 때는 버스에 있을 때가 전부였다. 그녀는 붙임성이 좋았고,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였다. 그녀는 특별하진 않았다. 다만 그녀는 매사 솔직한 것 같았다. 좋은 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했다. 피곤하면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잠을 잤다. 머리가 아프면 좀 쉬고 싶다고 말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가 하면 튀려고 유세 떠는 것 같아 보이는 행동들이 그녀가 하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보였다. 저런 아우라를 갖는 것은 어떤 비결이 있기 때문인 걸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육체는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술렁이는 분위기에 잠이 깼다. 우리는 구글 본사인 마운틴 뷰(Mountain View)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한국인 엔지니어가 우리를 안내했다. 그의 초대 덕분에 구글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는 검색엔진 개선과 자연어 처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위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를 졸업하고 자연어 처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엔 카네기 멜론이나 매사추세츠 공대, 스탠포드 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워싱턴 대학교는 세계적인 컴퓨터 공학 명문이다. 그와 우리의 교점은 한국인인 것, 그게 다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영어도 잘 못하고 연구를 잘 못한다고 소개했다. 사실은 이와 달랐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한 끗 차이로 세계 최고가 되거나 평범해진다. 그는 우리보다 세 끗 정도는 앞서 있었다.

축구에 비유해 보자.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K리그 선수보다 585배 잘하기 때문에 585억 원의 연봉을 받지 않는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 우사인 볼트가 소년체전 선수보다 10초씩 더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이 아니다. 비록 그 비유가 육체적이지만 인간이란 원래 몇몇 천재들을 제외하면 다들 고만고만 살아간다. 여기서 살아남는 것은 누가 더 성실했느냐, 누가 더 가정 환경이 좋았느냐, 그리고 ‘누가 1초라도 더 삶을 고민했는가’로 결정 난다. 구글에서 그가 소개하고 만난 사람들이 그랬다. 왠지 저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그 길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사람들. 구글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일행은 들떠 있었다. 세계 최고의 회사에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은 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나는 ‘이 성공이 다 무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을 떠나는 날, 나는 건방지게도 이 여정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자격을 의심했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 나는 이들과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밝혀 보니, 나는 유일하게 이 행운을 축내는 사람이었다. 나를 제외한 열아홉 명의 청춘은 실리콘 밸리를 휘저으며 큰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방인 행세나 하고 있다. 자격 미달은 내 이야기였다.

나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빠져나왔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물론 나는 그들이 나를 선발할 수밖에 없도록 어필했다. 프로젝트 경험도 풍부했고, 스스로 완성한 것들도 많았다. 발표도 제법 잘 했다. 나는 경쟁에서 허무하게 밀려날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꿈을 연기하고 있었다. 잘 버무려진 경력과 메소드 연기로 심사위원을 기만했다. 나는 실력은 있었지만 꿈은 없었다. 그런데 꿈이 넘치는 청년인 척했다.

실리콘 밸리에 와서야 깨달았다. 나는 실리콘 밸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곳 열아홉 명의 질문은 “어떻게 나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보다는 “뭘 하면 구글에 들어갈 수 있나?”를 묻고 있었다. 어디 어디에 다닌다는 것. 나는 그것에 부러움을 못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한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엔 분명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 했던 ‘그것’이 자아(自我)였음을 깨달은 것은 여정으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다. 나는 어렸고, 마음이 불편하면 따로 나와 걷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이었다. 생각도, 도움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디 갔다 왔어?”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 어디 갈 거면 같이 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캠퍼스를 거닐었다.

건너려면 누르시오
구글 본사 카페테리아

한인 엔지니어의 설명을 계속 들었다. 그는 구글이 개발자들의 천국이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코딩 외에 아무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구글의 사명이라고 했다. 구글은 카페테리아, 의료, 육아와 같은 것들을 무상으로 해결해준다고 했다. 투명한 운영과 자유로운 의사 결정. 이곳이 가진 장점이었다. 그는 사내 식당으로 우릴 안내했다.

“한 달에 한 번, 여기서 레리 페이지(구글 CEO)를 만날 수 있어요. 그와 대화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리에 참석해서 그와 대담을 나눌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구글은 일하는 것 외에 모든 것들에 대한 걱정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처럼 보였다. 그는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고액 연봉으로 구글 엔지니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구글이 사내 복지로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합치면 이 둘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구글에 다니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누군가가 물었다.

엔지니어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던진 학생에게 되물었다. “구글 본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학생은 아무렇게나 찍었다. 엔지니어는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하나예요. 그렇다는 건, 보통 제 나이가 되면 슬슬 이직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는 뜻이죠. 실리콘 밸리는 능력 위주의 사회예요.”

그는 실리콘 밸리가 지적 생명체들의 밀림이라고 했다. 기업은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러를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서 자신의 몸값을 높여야 한다. 사장되는 기술에 줄이라도 잘못 대면 기업도 사람도 끝장이다. 실리콘 밸리에선 사람도, 기업도 모두 재화다. 쓰임이 다하면 도태되고, 수요가 폭등하면 그 가치가 상승한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과 사람은 서로가 수요이며 공급이다.

그는 심각해진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가 말했다. “하하, 헤어지는 마당에 제가 너무 현실적이었던 것 같네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저보다 젊고, 뛰어난 인재들이시니까 분명 원하는 걸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린 그와 작별했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S야.” 그녀가 나를 불렀다.

“응?” 내가 답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린다.

“워싱턴 대학교 말이야, 엄청 좋은 학교지?” 그녀가 물었다.

“응, 엄청.

아무나 못 다니는.”

나는 짧게 대답했다.

버스는 그새 실리콘 밸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버스는 스탠포드 대학교 외곽에 위치한 SLAC 입자 가속기 연구소에 도착했다.

스탠포드 대학교 SLAC 엑셀레라터 레보레토리(SLAC Accerlator Laboratory)

나는 SLAC에서 그나마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대부분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이론 물리 개요였다. 와중에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을 했다. 내가 했던 질문은 “암흑 물질/에너지는 우리가 무엇인지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총량을 측정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안내자는 우리가 발견할 수 없는(또는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모두 암흑물질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우주는 분명 관측상 팽창 중이다. 그런데 팽창은 또 다른 중력 작용 때문에 발생한다. 문제는 이런 중력 작용을 발생시키는 에너지의 원천과 그 물질이 관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방금 본인이 한 설명이 암흑 물질에 대한 전체 개요는 아니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단서를 붙였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입자 가속기
꽉 찬 실험 스케줄. SLAC이 얼마나 많은 실험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SLAC 입자 가속 연구소는 원래 X-ray 연구와 같은 파장 연구와 그 관측을 주로 하던 실험 기관이었다. 안내자는 “현재 시스템은 대부분 컴퓨터로 제어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에게 과거 공장 견학을 제안했다. 가이드는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순순히 그의 안내를 따랐다.

SLAC의 과거 연구소인 750동. 지금은 녹이 슬었다.

실험동은 1997년 이후 사용이 정지됐다고 했다. 시설, 의자, 심지어는 청바지까지 모든 물건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마치 재난이 발생한 이후 버려진 장소를 방문하는 기분이었다.

“안전 위험 신고는 즉시 합시다”

실험동을 걸을 때, 철제 계단은 걸음마다 “텅”하고 비명을 질렀다. 공간은 거대해서 조그만 소리에도 크게 울렸다. 사진 한 번에 담을 수 없는 크기의 건물이었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숨죽여 걸었다. 조용히 안내자를 따랐다. 그녀가 내 팔을 톡톡 건드린다.

“아까, 암흑물질 이야기. 재밌었어.” 그녀가 말했다.

“그래? 왠지 나만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말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러게. 정확히 말하면 네가 궁금해하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단 것이 재밌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봤다. 그녀는 이제 철제 난간에 등을 기대고 있다.

“돌아봐. 먼지 다 묻었겠다.” 나는 그녀를 돌려세우고 점퍼를 툭툭 쳐냈다.

“신기하다. 마치 재난 영화 보는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97년 이후로 사람에 손이 닿지 않은 거잖아. 이 큰 공간에.”

“그러게. 사람 흔적은 있는데 보이는 건 우리뿐이야.” 내가 말했다.

작업복인 청바지와 티셔츠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걸려있었다. 옷걸이는 진작에 녹슬었고, 바지는 빳빳했다.

“평소에 무슨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 너는?”

“나는 아까 그런 생각했어. 너는 무얼 보고 자랐기에 이렇게 특이한 분위기를 내는 걸까… 하는. 넌 좀 특이한 것 같아.” 그녀가 말한다.

“내가?”

“응.”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우리는 건물을 나왔다. SLAC 견학이 끝났다. 티타임과 자유시간이 조금 주어졌다. 나는 이 근방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그녀에게 따라올 건지 물었다. 우리는 주변을 걸었다. 주차장에 파나메라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캘리포니아는 차를 인도받은 6개월 동안 번호판 없이 다닐 수 있다. 포르쉐 파나메라

“이 차 예쁘다. 이름이 뭐야?”

“포르쉐.”

“아, 나 그거 알아. 포르쉐.”

“옛날에 스티브 잡스가 이 브랜드의 마니아였는데, 차에 번호판이 달려 있는 걸 그렇게 싫어했대. 그래서 리스 회사랑 계약해서 6개월마다 신차를 인도받는 방법으로 평생 번호판을 달지 않고 차를 운전했다고 하더라. 비록 그거랑 동일한 모델은 아니지만 같은 브랜드에 번호판이 없는 포르쉐를 언제 만나보겠나 싶었어. 그래서 한 장 찍었어.” 내가 말했다.

“흥미롭네. 원래 잡스 좋아해?” 그녀가 물었다.

“응.” 내가 말했다.

“이 근처에 스탠포드 미술품 관리하는 곳이 있다는데. 같이 가보지 않을래?” 그녀가 말한다.

Starfield, Vija CELMINS, 2010, The Andersen Collection
So far so good, Elizabeth Marray, 1999, The Andersen Collection

“난 이게 좋아.”

그녀가 한 작품 앞에 선다. 빛나는 원통과 대충 찢은듯한 종이 위에 검은색 물질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갔다.

Look CLOSE, Self-portrait, 1996, The Andersen Collection
Look CLOSE, 1996, The Andersen Collection

그녀가 말했다. “비친 세계는 가상의 것인데, 의미는 거울 속에서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아. 놓여있는 건 종이랑 원통 하나. 그리고 잉크일 뿐인데, 이 세 가지가 함께 놓여 의미를 만들고 있네.”

“어떤 사람의 초상을 그리는데, 그 완성은 거울 상(像)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만든 사람은 한 명인데,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럿이고.” 내가 말했다.

나도 이 작품이 싫지 않았다.

스탠포드의 시간도 금방 흘렀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섬에 너무 깊게 들어와 있었다. 견학을 마치고 버스를 탔을 땐 해가 뉘엿뉘엿 넘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을 먹었을 때, 어둠은 금새 지상을 덮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시애틀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더 이상의 자유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일찍 잠들었다.

발보아 스트리트 19번가에서. ‘보라 뷰티 살롱’과 그 앞에 주차된 그라피티 트럭이 이국적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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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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