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맛보고 온 봄: 후쿠오카

0. 벌써 3년 전 일이다.

H형: S야, 이번 부활절 휴강 때 뭐해?

S: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H형: 통장에 얼마 있냐?

S: 몰라, 한 60만 원?

H형: 일단 30만 원. 우리은행 1002-xxx-xxxxxx 입금해라.

S: ??? 일단 알겠음

진짜 입금했다. 무슨 짓 하겠나 싶었다. 뭐 세상에 눈 딱 감고 돈 넣으라면 넣을 친구가 있다는 거 좋은 거 아니겠나. 좋은 사람인 척 적선하고 싶었다. 꿍쳐논 돈 30만 원을 입금했다. 수틀리면 금감원에 신고하면 될 터였다. 20분이나 지났을까. 카카오톡이 한 번 더 온다.

친구 I: 야, 니 여권번호랑 영문명.

S: ??? 넌 또 뭐여. 일단 보냄.

15분 후, 파일이 하나 날아왔다. 파일 이름은 ‘전자 항공권 발행 증명서_s꺼.pdf’. 행선지는 후쿠오카였다. 일정 변경시 환불 금액 없고, 일정 변경 불가능한 확약 항공권이었다. 우리는 바람이 쌀쌀하던 한국을 등졌다. 무작정 떠났다.


1. 라멘을 먹다

우리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막 풀었을 땐 이미 한밤중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우리는 후쿠오카는커녕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책 <국화와 칼>에서 읽었던 일본의 모습은 에도시대의 것이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나막신 대신 나이키를 신는다. 보이는 건 뜻도 모르는 문자들이요, 아는 거라곤 덮밥집 <요시노야>와 라멘, 그리고 아리가또 정도였다. 그마저도 가끔 “쒜쒜(谢谢/xièxie)”랑 헷갈렸다. “쒜쒜”는 중국어로 감사하다는 뜻이다.

호텔에서 근처 라멘집 쿠폰을 줬다. 쿠폰 앞은 당연히 뭐가 쓰여있는지 몰랐고, 뒷면에는 약도와 주소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길을 걸었다.

일본의 밤거리는 따뜻했다. 피부에 봄기운이 느껴졌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이국적인 분위기에 나는 들떴다.

거리를 무작정 담았다. 간판도, 건물의 타일도 이국적이었다. 우리나라의 밤거리와 비슷한 듯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달랐다. 어쩌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부랴부랴 라멘집에 도착했을 때, 시계 바늘은 어느새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허기졌고, 라멘을 시켰다.

돈코츠 라멘이 나왔다. 국물의 깊은 맛, 톡톡 끊어지는 면발 등. 조금 더 실감 나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은데 음식에 조예가 없다. 사골 국물에 간장 넣고 독특한 식감의 면발로 마무리했달까. 가격은 600 円 이었다. 처음엔 맛없다 했던 라멘을 바닥까지 비웠다. 친구들이 놀렸다. 식당을 나왔다.

I: 야, 배고프지 않냐?

나는 마냥 웃었다

I: 형, 배고프지 않아요? 뭐 사가죠.

H형: (웃음을 참으면서) 그래

그대로 곱창 볶음과 음료 몇 캔을 샀다. 호텔로 향했다. 과제와 1교시 때문에 늘 일찍 자야 했었던 우리였다. 오늘만큼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일상을 탈출했다. 5일 뒤면 다시 돌아갈 운명이었지만 닷새 동안은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했다. 우리는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이었다.

남자 셋이서 밤새 수다 떨었다. 몸에는 샤워 가운을 둘둘 말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취기가 돌아 삶과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였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몽사몽 하다가 조식을 먹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자이후(大宰府 ( だざいふ ))행 버스를 타고 유후인(湯布院)에 떨어져 있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꿈만 같았다. 후쿠오카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은 없었다. 다만 하늘이 너무 예뻤고, 길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시 한 번 걸었다.


2. 귀를 기울이다

이런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밤새 휴가 첫 날의 자유를 만끽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혹시나 비가 오면 어쩌나 해서 챙겼던 우산은 짐이 됐다. 유후인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발랄하게 쏘다녔다.

사진찍는 H형. 어릴때 이후로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철길이 있었다. 목이 긴 민들레가 하늘하늘 날리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과 바람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도심 속을 살면서 흐릿해진 옛 기억을 생각나게 했다. 사실 우리는 시골 세대는 아니다. 비포장도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흙 길을 걸어본 기억도 없다. 그렇지만 어릴 적 빛바랜 사진은 남아 있다. 사진 속 우리는 민들레를 손에 꼭 쥐고 있는가 하면, 흙길에 철퍼덕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후인의 전원은 그 시절 잘 기억나지도 않는 향수를 자극했다.

살면서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형태와 조각이 새롭게 다가왔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시절 우린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색종이를 접고, 잘라서 입으로 후후 불었다.

소음은 없었다. 길을 걷는 사람은 많았지만 마치 아무도 없는 산사에 온 듯, 서로를 배려했다. 마주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볍게 눈인사했다. 거리는 깨끗했다. 앞마당을 쓸고 있는 분이 있었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분도 계셨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했다. 우리는 미소로 서로를 스쳤다.

사진찍는 H형과 친구 I

모든 것이 특별했다.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아마 우리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들이 현미경을 보는 듯 커다랗게 다가왔다. 소음은 줄어들었고, 마음속 울림은 팀파니 소리처럼 둥둥 커졌다.

중간에 신사(神社)가 나왔다. 애니메이션에서 어쭙잖게 본 것이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을 들였다.

액운을 걸고 정화되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바람이 담겨 있는 걸까. 아는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신기했고 새로웠다.

한국의 봄 하늘과 다를 바 없을 텐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스치며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봄바람은 귓바퀴에 속삭이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온천수에 발을 담갔을 때도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걸었지만 고요 속에 각자의 여행을 떠났다.

후쿠오카 시에 돌아왔을 땐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도심은 벚꽃이 만개했다. 다시 한 번 길을 나섰다.

축제가 있는지 도심 성곽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풍경에 취했다. 캔 음료와 거리 음식을 하나씩 손에 쥔 채. 벚꽃 길을 걸었다.

성곽 길을 따라 저 멀리 후쿠오카 타워가 보인다

이 말이 꼭 하고 싶다. 길을 걷는 동안 거리에서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어설픈 앰프로 틀어제낀 붐붐 사운드는 하나도 없었다. 거리는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잔물결 소리뿐이었다. 전자 소음이 없는 거리에서 인공물은 조명뿐이었다. 우리는 이렇다 할 소음 없이 후쿠오카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오늘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사진 속 피사체가 되는 것도, 세상의 조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3. 도심 속을 걷다

후쿠오카를 삼일 째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어느 누구도 ‘그냥 걷는다’는걸 불평하지 않았다. 반대로 누가 나서서 관광지를, 랜드마크를, 뷰포인트를 찾지도 않았다. 누가 보면 헛돈 썼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좀 그렇지 않나. 막상 자기가 있는 곳도 잘 모르면서 여행만 나오면 꼬박꼬박 챙기려고 한다.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았던 게으른 셋의 변명이지만 각자를 설득시키기엔 충분한 변명이었다.

아크로스 후쿠오카 건물

아크로스(ACROS) 건물 근처엔 실개천 하나가 흐르고 있고, 바로 앞에는 노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벚꽃은 마치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흔드는 사람도 없었고, 사진을 연출하고자 나무 밑동을 뻥뻥 차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걸었고, 이따금 따뜻한 바람이 불면 약속이나 한 듯 함께 걸음을 멈췄다.

오후엔 뭔갈 먹었다. 무얼 먹었을까? 사진이 쏙 빠져 있다. 보통 여행을 하면 아침부터 밤 까지 사진으로 가득 차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선 거리 사진만 남아 있었다.

후쿠오카 스타벅스

쇼핑센터 앞을 걸었다. 주홍빛 택시가 예쁘다. 도로가, 사람이 정겹다. 붐비지도, 적지도 않은 인파가 도심을 덥히고 있었다.

이대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버스를 탔다. 후쿠오카 타워가 보고 싶어 졌다. 어설픈 영어로 물어물어 버스를 탔다.

나는 H형과 후쿠오카 타워 전광판에 떠 있는 문자가 ‘0’인지 ‘하트’인지를 가지고 한참 실랑이했다. 저게 0인지, 하트인지 알게 뭔가. 그리고 그게 결정난들 뭐가 달라지는지.

돌아보면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지만 당시 우리는 제법 심각했다. 후쿠오카 타워에 왜 저 문자가 그려져 있으며 저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해서 추측했다. 참 유치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도 모른다. 이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집에 오는 길, 우리는 무작정 걷기로 했다. 방향만 맞으면 남은 문제는 체력뿐이었다. 우리는 체력이 차고 넘쳤다. 한참을 걷다 보니 후쿠오카 돔 경기장을 지났다. 문득 J형이 떠올랐다. 형은 야구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의 단짝이었다. 그런데 함께 여행 가자 하지 못했다. J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야구공 하나를 샀다. 귀국해서 J형을 만났다. 형은 선물을 받았다. 고마움과 서운함이 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길을 걸으며 다양한 종류의 택시를 만났다. 네모반듯한 택시들이 정속으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무언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잃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내가 길을 안다고 큰 소리 뻥뻥 쳤는데, 이미 호텔을 30분 정도 지나친 거리였다. 제법 늦은 시각이라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부랴부랴 큰길로 나왔다. 불안한 마음에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쓰러졌다.


4. 카메라를 집어넣다

우리는 오후 비행기였다. 쇼핑을 하고자 집을 나섰다. 이제 막 익숙해진 거리는 어느새 마지막이 되어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나는 카메라를 넣었다. 대신 I와 H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재미있는 사진이다. 건물 벽에 있는 벽돌도, 간판의 그림도, 도로를 걷는 아저씨도. 차 안에서 코를 후비는 아저씨가 보인다. 후쿠오카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다

5. 에필로그

문득 그때의 기억에 J형에게 연락했다. 선물 받은 공은 잘 있냐고 물었다. 공은 열심히 던지고 놀다가 터져서 버렸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만약 형이 공을 애지중지하고 있었으면 미안할 뻔했다.

이 여행 이후 나도 선물을 받으면 더 이상 쌓아놓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물건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애쓴다.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다. 물건을 쓰면서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나를 생각해서 물건을 골라준 지인의 정성을, 당신의 의도를 생각하며 닳아 없어지도록 선물을 쓴다.

벌써 3년이나 지난 기억이지만, 매년 벚꽃 피는 봄이 오면 이 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다신 오지 않을 우리를 추억에 아로새겼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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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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