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sickness)

Portrait, Harry Holland

가 육체적 반응 중 흥미롭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간지러움이고, 두 번째는 잠이며, 마지막이 구토다. 내게 간지러움은 몸에서 발생하는 에러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에러 투성이듯, 조물주의 형상도 가끔 에러를 내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어딘가가 간지러울 때면 ‘아, 이 부분에서 에러가 났구나.’하며 손가락을 갖다 댄다.

잠은 흥미롭지만 그 정체를 알 길이 없다. 밤 새 놀다가 머리가 무거워질 때, 또는 나의 몸을 더 많은 면적에 기대고 싶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하곤 한다. 잠은 나에게 있어 유혹이다. ‘잠을 자고 싶다.’라는 자의적 욕구보다는 ‘잠이 온다, 자라.’와 같은 내적 신호에 굴복하는 면이 더 크다. 나는 매일 유혹에 굴복한다.

구토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나를 찾는다. 이것이 발생할 때면, 몸통 안쪽에서부터 꽉 매여오는 감각을 느낀다.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구토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몸의 생리 현상이다. 구토는 이물질을 제거하려는 몸의 자연적인 반응이다. 구토를 하는 순간 주체는 불쾌감을 느끼지만 그를 통해서 자각하는 건 자신의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물감을 느끼고 있구나.’하는 것이다. 정신은 팽팽 도는 와중에 마주하는 것은 내 식도의 모양이고, 내가 보거나 먹은 것보다는 순수한 자신이다.

Corridor, Harry Holland

나는 구역질을 자주 한다. 밥이나 멀미 때문에 구토한 적은 없다. 그러나 따뜻한 공간 안에 있다가 차가운 곳으로 갔을 때, 역겨운 것을 보고 그것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할 때. 나는 구역질한다. 술을 많이 마셔도 그렇다. 맥주 한 병을 마셔도, 먹은 게 많으면 어김이 없다. 그 기분이 싫어서 술은 입에 잘 대지 않는다.

나의 구토는 주로 머릿속의 것 때문에 발생한다. 구토는 숙주를 지키려는 기관의 자연적인 반응이지만 나의 의식이 원하는 반응은 아니다. 그러나 숙주를 느끼는 것은 의식이다. 나는 구토하며 내가 여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뎅겅하니 세상에 떨어져 있다. 나는 토악질을 하면서 로캉탱의 감정 극히 일부를 공유한다. 내가 머릿속에 쑤셔 넣고, 셀 수 없는 미사여구를 뱉었던 자신의 이미지는 문자 그대로  ‘이미지’일 뿐, 자신을 완벽하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단어로 지어 부르는 어떠한 대상도 의식의 구성일 뿐이다. 단어는 머지않아 휘발해버릴 발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 없이 행동하거나 열심히 떠들어야 한다. 전자는 자신과 자연을 대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구태여 구토로서 자신을 만질 필요도 없거니와 편리하게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빠른 편견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생각이 없기란 아무나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른의 절제와 기술을 가지고 아이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이 예술과 수양의 정점에 있는 이유다. 후자는 열심히 외역질 하는 길이다. 세상을 적극적으로 머리에 넣는 척하며 자신의 차원을 확장하는 길이다. 자신이라는 우주를 늘리고 그 바깥을 줄여가는 대가는 노화와 구역질이다.

Harry Holland

나는 대화를 시도하려는 존재에게서 경외감을, 그리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존재가 타인을 이해하고자 몸을 던지는 모습이 대단하고, 결국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상대의) ‘실존’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형상화 한  ‘이미지’일 뿐임에 마음이 슬프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삼자에게 최대한 솔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또는 그녀가 만든 ‘나’라는 밀랍인형이 내가 실제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화를 하는 와중엔 구역질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화라 할 수 없는 것들(‘대화’와 ‘음성 기호 발화’는 엄연히 다르다. 음성 발화는 대화 이전의 단계다)에는 생각이 제멋대로 치고 나가버린다. 머리와 식도가 내내 어지러워진다. 발화는 사람의 입에 달려 있지만 구토의 기준은 각자에게 있다. 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청자가 느끼는 본능적인 구토는 청자의 무의식에 그 원인이 더 가까이 있다. 대화를 통해 구역질을 가라앉히든, 자리를 뛰쳐나가 토사물을 밀어내던 둘 중 하나가 필요하다.

우리가 확신하고 주장하는 것은 대상의 죽음 전까지 모두 위선일 가능성을 품는다. 그리고 위선이 죽음보다 빨리 찾아왔을 때, 나는 대상에 관계없이 속이 메슥거린다. 구토(sickness)를, 그리고 염증(sickness)을 느낀다.

Skull, Harry Holland, 2011

글을 마치면서 침묵도 대화의 한 방법임을 생각한다. 마주한 두 존재의 침묵에서, 나는 음성언어보다 더 완벽한 대화와 존중을 느끼는가 하면, 무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나는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공사건(空事件,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함)이다. 다른 하나는 공(空)이다. 대화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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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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