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excretion)

끔 턱 끝까지 어떤 말이 차오를 때가 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나만 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기 바쁜 사람들. 가끔은 정말 친한 친구의 이야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대화가 일방적인 경우다. 보통 나는 무시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친한 친구를 언제까지고 무시할 순 없다. 몇 번 입이 달싹거리다가 다물어지면, 원래하려던 말은 말끔히 치워버리고 이런 말이 하고 싶어진다.

네가 그렇게 말이 하고 싶은 지는 잘 알겠는데,
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엔 관심이 없나 봐?

Art Lovers, Oil on Linen, Bill Brauer

마음에 독(毒)이 생긴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때면, 내 입은 독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독사의 주둥이가 된 것만 같다. 그래도 대상을 함부로 물 순 없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나를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상처다. 믿음과 수다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보면 상대가 나에게도 기회를 줄 때가 있다. 그래서 두 마디 정도를 떼고,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맞아, 나도 그런 경우 있어.”하면서 대화를 홱 하니 낚아챈다. 자기 이야기에 그대로 갖다 붙인다. 가끔 분위기 파악이 빠른 친구는 무안해진 분위기에 어설픈 웃음이나 손사래로 자신이 ‘개념’있는 사람임을 내게 주입시킨다. 말이 주입이지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는 방어기재다. 대화는 넘어오지 않는다.

나는 가끔 나쁜 말을 뱉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감정이 들 때면 나는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독을 품던 표정은 이내 평정을 찾지만 작은 몸뚱이 안에는 폭풍이 몰아친다. 또 다른 배설의 충동을 느낀다.

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본인의 호기심 충족을 좀 구분해 주시겠어요?

Return to the River’s Edge, Oil on Linen, Bill Brauer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직업. 얼마 받아요?”가 대표적이다. 집이 전세라고 하면 “집 얼마예요?”하고 묻는다. 연예인 누가 좋다고 하면 다른 연예인 이름을 입에 올리며 “얘랑 걔랑 물에 빠지면 누구 구해요?”같은 실없는 소리들을 뱉는다. “군대 갔다 왔어요?”도 많이 듣는다. 형제 관계도 묻고, 아빠 엄마 나이에, 직업도 묻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이 나랑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목적이 뭔지 묻고 싶다. “왜 궁금하신 건데요?”하고 콱 물어 버리고 싶다.

그렇다고 필자가 집, 부모님의 커리어, 군대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잘 있고, 부모님 포트폴리오도 나쁘지 않다. 군대도 정상적으로 잘 다녀왔다. 단지 당신에게 나의 개인적인 것들을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대답하기 부끄럽지 않다고 해서 당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독은 한국 사회에서 꺼내지도 못하거니와 “그냥 물어볼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심각하냐.”는 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체스로 치면 외통수(checkmate)다.

나도 한국인이라고 사람을 만나면 앞서 말한 것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말로 나가는 건 없다. 궁금증의 원줄기가 나의 호기심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궁금하고,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은 지류(支流)다. 이럴 때 나는 그냥 입을 앙 다문다. 오늘 나온 상대는 내 호기심 해소 대상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자기의 이야기를 한 뒤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물어줬으면 좋겠다. 할 말이 없다면 침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침묵도 대화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배설하고 다니지 않을 수 있는.

단지 당신에게 나의 개인적인 것들을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대답하기 부끄럽지 않다고 해서 당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말을 올바로 한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변화 시킬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 앵무새 죽이기(1960), 하퍼 리

이렇기 때문에 나는 배려가 많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냉정하니 얼음장 같다는 소리도 함께 듣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배설보다는 참는 쪽을 택한다. 조용히 상대와의 만남을 줄이고, 소셜미디어 문을 닫는다. 침묵으로 밀어내는 오물이다.

Echo, Oil on Linen, Bill Brauer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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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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