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마감하며

사를 했다. 새집은 회사보다 멀다. “별 이유 없이 회사보다 멀어지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 게다.” 친구들이 말했다. 나는 “별 사정없으니 한 번 가본 것이다.” 웃으며 대답했다.

새 집은 구산에 있다. 구산은 한자로, 거북이 구에 뫼 산자를 쓴다. 지하철 구산역 근처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이 마치 거북이 등허리처럼 굽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은 지명처럼 거북이 같은 사람들이 산다. 노을이 지면 초등생들이 도로를 점거한다. 학생들은 모두 책가방을 맸다. 나는 그 모습이 꼭 거북이 등껍질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주로 숨바꼭질을 한다. 그들은 벌 떼같이 모였다가, 바람처럼 흩어진다. 이것은 숨을 학학 내쉴 때까지 계속이다.

구산에 사는 노인들도 거북이를 닮았다. 노인들은 등딱지 대신 리어카를 달았다. 목도리에, 패딩이에, 양말에 두껍게도 차려입었다. 이들은 행여, 꽁꽁 싸맨 옷가지에 제발이 걸릴까 뒤뚱뒤뚱 걷는다. 노인의 등껍질 위로 폐지나 플라스틱, 혹은 가전제품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이들은 은근한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종무식 날 저녁, 나는 당신을 만났다. 언젠가 꼭 길게 대화하고 싶다 생각했던 당신이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추위가 살을 에는 듯했다. 가혹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당신은 꼭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손톱만 한 불을 내어 심지에 붙였다. 그리곤 불씨에 손을 녹이듯, 당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은 친구에게 줄 연말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고, 나는 책을 선물하자 했다. 우리는 서점에서 장강명 작가의 책을 샀다. 두 사람은 장강명 작가를 좋아했다. 서로를 몰랐던 시간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 금방 허물어졌다. 당신은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장 작가의 아내를 위해 롤케이크를 선물했다는 말도 함께해주면서. 그것은 좋아하는 이의 주변을 챙기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거울처럼 깨끗하다 생각했다. 당신이 책을 고르는 사이, 나는 문학동네 겨울호를 읽었다. 그때에는 잠시나마 현실로 돌아와, 나의 글은 아직 갈길이 멀었다는 걸 생각했다.

우리는 파고다공원 앞 사거리를 걸었다. 열 번은 넘도록 지났을 풍광인데 당신과 있으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추운 겨울길을 헤치며, 우리는 누가 더 카레를 좋아하는지 내기를 했다.

당신은 카페에서 달고나 라테를 주문했다. 달짝지근한 라테 맛에 눈이 커진 당신을 보고, 나는 그 모습이 올망졸망하여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새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잡기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픔과 행복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오묘한 시점(時點)이었다.

12월의 마지막 날. 나는 당신과 한때 동료로 지냈던 시간을 추억했다. 우리는 서로 스웨터의 직조처럼 엮여있었다. 그것은 우습기도, 놀랍기도 했다. 그날 밤, 당신은 소심한 나의 고백을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우리는 눈이 거의 감기는 시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당신의 안부를 묻고 싶어, 눈을 감으면서도 당신을 그렸다.

새해, 우리는 시청사 전망대를 찾았다. 윗 사진은 그날 찍은 것이다. 당신과 나는 멀리 있는 고성터를 내려보았다. 나는 옛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하였을 어떤 행복감에 취했고, 나의 손을 당신의 손등 위에 포개어놓았다.

머-얼-리 창 밖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날갯짓 소리는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귀에 들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다 포기했다 선언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당신의 손등에 나의 손을 포갠다. 나는 스스로, ‘아직 살고 싶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신께 구체적으로 표현할 길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나는 당신의 검지와 네 번째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나는 새로이 느끼는 따뜻함에 어리둥절하여 정신이 아득하다. 포개어 올린 손위로 당신의 체온이 스민다. 나는 당신의 손등을 돌려 손을 마주 잡았다. 새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다치는 일 없이 몸성히 늙는 광경을 상상하다가,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따뜻한 당신이 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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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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