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3: 현대에서 시계 미감까지)

근대에서 포스트모던까지

포스트 모던(post-modernism)이라 함은 모던 이후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은 모던 아래서 기존 근대를 뒤집어 생각하는 사조로, 세계 전쟁 이후에 등장한 인류의 시대 정신이다. 이 흐름은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이성 중심적 사고의 맹목적성, 효율을 고도로 추구한 구조가 짓누르고 파괴한 것들에 대하여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흔히들 포스트 모던 아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이유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둔 말이다. 그보다는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고, 우리가 간과한 것을 되짚는 의식 흐름’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 모던 예술은 결정적 예술이라기 보다는 담론 중심의 예술 행위다. 이것은 20세기 모더니즘이 쌓아 올렸던 가치 체계 아래 소외되었던 감성이나 비주류의 것, 여성, 아이, 유색인종 등을 돌아보게 한다. 포스트 모던 예술은 다다(Dada)를 시작으로, 팝아트(Pop Art)와 인터미디어 아트(Intermedia art)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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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The Fountain), 1917, 마르셸 뒤샹

1917년,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뉴욕의 그랑 센트럴 빨레(The Grand Central Palace)에서 열리는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소변기를 출품한다. 작품의 이름은 샘(Fountain).

이 소변기에 뒤샹이 한 일이라곤 한쪽 구석에 자신의 필명인 “알. 머트(R. Mutt)”를 적은 것뿐이었다. 독립미술가협회 전시는 심사위원도, 상도 없는 전시였지만 위원들은 뒤샹의 작업을 반려했다. 뒤샹은 되례 반려를 거부했고, 협회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전시장 한쪽 구석에 그것을 처박아 두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한다. 물론 관람객들도 뒤샹의 ‘샘’이 작품이라고 생각치 못했다.

전시가 끝나고, 뒤샹은 한술 더 떠 이 작업을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 작품이라고 설명하는 글을 완성해서 직접 만든 잡지에 투고한다. ‘샘’은 이 투고문 이후부터 유명해진다. 소변을 효율적으로 받기 위해 설계된 기성품이 ‘작가의 사인 한 번에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뜨거워진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질문은 “과연 최고의 예술가는 최고의 기술자여야만 하는가?”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뒤샹의 ‘샘’은 우리가 암암리에 동의하고 묵인하던 예술의 정의, 그 경계에 우뚝 선 작업이다. ‘예술가는 장인처럼 꼭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혹은, ‘작업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을 허락하는 주체는 누구인가?’하는 담론을 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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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 마르셀 뒤샹, 1963

뒤샹의 작품 세계처럼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예술 형상을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이라 부른다. 뒤샹은 개념미술의 선구자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또는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고 체계에 허를 찌름으로써, 이것을 ‘아름답다’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예술의 허용 범위가 넓어지는 선택적 개방감을 선사한 첫 번째 예술가다.

팝아트

이제 팝아트(Pop Art)를 이야기해 보자. 흔히들 팝아트는 ‘대충 그린 카툰 풍 작화를 비싸게 팔아먹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팝아트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추상 표현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생한 예술이다. 팝-아티스트들은 상업용 상품에 의미를 재부여하는 방법으로 예술 활동을 한다. 상품(Commercial product)이 가지고 있는 단순 명로한 메시지와 친숙한 디자인에 메시지를 덮어쓴다. 이것은 감상하는 이에게 유머와 해학, 풍자의 감정을 선사한다. 지나가듯 보면, 팝아트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예술처럼 보인다.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대표적인 팝아트 예술가로, 그의 캠밸 수프(Campbell Soup) 캔 작업이 유명하다. 이 작업은 실제로 보면 참으로 명쾌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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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밸 수프 캔(Campbell soup cans), 1962, 앤디 워홀

캠밸 수프 캔 작업은 한 캔만 있는 것보다 많은 캔이 반복되어 있을 때 작가의 의도가 더 잘 드러난다. 복수의 캔에 쓰여진 라벨(맛)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워홀은 캠밸 수프 작업을 통해 시장에 유통되는 맛,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맛’이라는 메시지에서 ‘선택지의 모순’을 꼬집는다. ‘선택지의 모순’이란 소비자가 아무리 많은 맛을 선택할 수 있다 한들 그것은 제작사가 제한하는 유한한 선택지에 불과한 모순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수프의 맛, 브랜드, 가지 수는 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가가 만들어낸 유한한 선택에 불과하다. ‘자본가-상품-소비자’라는 보이지 않는 끈은 자본가의 의도대로 완성된다. 소비자는 자신이 무한한 선택을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소비자는 자본가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산업사회 이전 과거에는 운명과 결정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들의 앞길을 결정한다. 그들은 상품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로 우리를 현혹하고 행동하게 한다. 이것이 워홀이 말하고 싶었던 지점이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작업 앞에서 서성일 수록, 카메라를 등지고 그것을 바라볼 수록, 워홀의 메시지는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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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옵티콘(panopticon)형태를 한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쿠바

조지 오웰은 그의 저작 에서 모든 선택지가 획일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그렇지만 워홀이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디스토피아란, 유한한 선택지가 수 없이 늘어져 있어서 ‘개인이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착각’하는 삶이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복제와 같은 키워드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것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량 생산의 성질은 ‘무한해 보이는 유한 선택’이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미디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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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초고속도로: 미국 대륙(Electronic Super Highway), 1995, 백남준, 스미소니언 박물관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 그는 예술계에 어떤 질문을 던졌기에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것일까? 그의 주된 작업 매개는 TV다. TV는 한자로 수상기(受像機)로, 직역하면 방송된 전파 영상을 화상으로 변화시키는 장치다. 그렇지만 백남준의 TV는 전파를 수신받아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TV는 스스로 살아 있는 듯, 메시지를 반복 재생한다. 처음 보기에 그의 작업은 뒤샹의 샘처럼 이미 있는 물건을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 우기는 것과 다를 것 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백남준은 회화 작가들의 주 도구가 붓인 것과 마찬가지로, TV를 자신의 작업 도구로 사용한 첫 번째 예술가다.

당시 예술가들은 디지털 문명에 부정적이었다. 어떤 예술가는 요즘에도 디지털 매체 예술을 극단적으로 꺼린다. 그렇지만 백남준은 예술가에게 선이나 규범 따위는 없다는 듯, 태연하게 TV를 자신의 설치 작업 세계에 들여 놓는다. 이러한 결단력은 그가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예술을 시작했던 경력과 연관되어 있어 보인다.

우리는 백남준의 작업에서 TV를 의식하지만, 의미를 곰곰이 따져 보면 그것은 TV가 아니다. 그는 TV를 ‘메시지를 받는 매체’에서 ‘메시지를 직접 생산하는 매체’로 재탄생 시켰다. 그의 작업 속 TV는 스스로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뱉는 설파의 도구다. 디지털 도구는 그렇게 최초로 의미 변용으로 작업 세계에 사용된다. 백남준은 첨단 기계 문물과 인간 예술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한 첫 번째 인물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아트 및 각종 디지털 예술 작업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다시 근대미술로

뒤샹, 워홀, 백남준은 포스트모던 내, 사조 일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이후 동시대 미술(요즘 미술)은 포스트 모던보다는 다시 모던에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 예술가들은 누가 누구를 계승한다기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모던 이후 예술가들은 하나의 사조(-ism)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던진 물음과 자신만의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해괴한 것, 새로운 것, 또는 논쟁 거리가 되는 것 속으로 기꺼이 감상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동시대 미술 세계로 들어서면서부터 예술의 정의가 확장됐기 때문이고,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인물이 되는 것이 기존의 것을 반복하는 예술가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요즘 미술, 그러니까 동시대 미술은 모던 아트(Modern Art)도 포스트 모던 아트(Post Modern Art)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이 하나의 시대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그 줄기가 갈렸으며, 예술가는 이 길에서 자신의 표현 방식을 발굴하고 물음을 던지는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라는 영어 표현인 ‘모던(modern)’이 이미 모던 아트라는 용어로 선점되어 있으므로, 예술계에선 요즘 예술에 대하여 모던 아트라는 말 대신, 동시대 예술(Contemporar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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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가 중 슈퍼스타급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

앞서 이야기했듯, 새로운 예술 세계는 당대에 논란거리가 되거나 조롱을 받고, 그게 아니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평론가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를 하기엔 경험과 이론적 근거를 확보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음 발췌글은 비평가가 최신의 미술에 대하여 오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80년대 한 비평가가 최신의 미술사를 쓴다 해도 반 고흐와 세잔, 고갱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 비평가가 적극적이지 않거나 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 고흐는 중년의 미친 네덜란드인이었고, 세잔은 중년이 지나서야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지만 전람회에 그림 보내는 일을 오래전에 그만둔 신사였다. 마지막으로 고갱은 뒤늦게 화가가 되어 남태평양으로 떠나버린 주식 중개인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당시 비평가가 이 세 존재의 작업 세계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오늘날 미술 평론가들이 작업을 논평하면서도 결론을 자꾸만 열어두는 것은 후대에 재평가될 수 있는 예술가의 이름에 오판을 한 사람이라 기억되고 싶지 않은 바람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동시대 예술가는 평론가뿐 아니라 미술 관계자들(큐레이터, 갤러리 관계자, 컬렉터 등)에게 인정받으며 몸집을 불린다. 그들은 마치 팝 스타와 같아서,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 1965-), 뱅크시(Banksy, 1974-),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같은 문제적 인물들은 현재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슈퍼스타다. 그렇지만 곰브리치의 예를 상기한다면, 먼 훗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예술가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기억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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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개, 제프 쿤스, 1994-2000

정리하면, 동시대 미술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예술로써 모든 표현이 잠정적인 상태에 있는 예술이다. 우리는 대중으로 남아 자신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예술을 느끼고 즐기면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예술가, 혹은 추후에 좋아하게 될 수도 있는 근대 예술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본인의 취향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우아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이다.

시계 미감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 공부했던 미학사에 주관을 부여하여 시계를 이야기할 것이다. 걔 중에는 ‘아름답다’고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시계가 있을 것이고, 어떤 시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또 어떤 시계는 설명에도 아름다움이 쉬이 납득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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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라이 시계

이에 필자는 모든 해석이 옳다는 전제를 먼저 던져둔다. 결국, 현대에서 추구하는 미감이란 취향의 합의(consensus of a taste)를 거부하고 표상(signifier)이 드러내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 것이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양식을 이어받은 시계라고 하여 이것이 아름다움의 기준, 혹은 평가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이가 특정 스타일, 혹은 사조(-ism)를 진리로 여기고 절대적 아름다움을 설파한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것이라고 평가해도 좋다. 그것은 취향이라는 구획을 무시하고 최종적 합의를 이루려 하는 것이다.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양식은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양식, 혹은 사조는 우등과 열등을 가르는 척도가 아니며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먼지 묻은 루페를 닦을 때가 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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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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