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5: 동시대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계)

동시대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계

이번에는 동시대 미술과 그 정신을 계승한 시계들을 이야기해 보자. 이전 글에서 다룬 시계들이 특이한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왜 만들어졌는지’ 의구심이 드는 디자인을 한 시계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미술 세계가 개념적으로 흘러가면서 시계 세계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시계 자체보다 해설이 함께 들어갔을 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전위적(avant-garde)인 경향이 있어, 제작자의 예술 맥락을 이해해야 감상이 수월하다. 예술로서 자본가들에게 충격을 주고, 자본가는 미감을 확장하는 근대 예술계의 경험이 시계에서 부활한다.

한정판의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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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웨일(Raymond Weil)의 마에스트로 비틀즈(Maestro Beatles) 한정판 시계, 3000점 제작

현대 시계 업계에서 한정판의 의미란 무엇일까? 정해진 숫자만큼 다 팔리고 나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시계? 구매하고 나면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뛸 수 있는 재산? 한정판에 대한 환상은 충분히 많다.

이번에는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시계 애호가라면 공감할 것인데, 한 해 동안 시계 업계에서 쏟아지는 한정판은 대충 어림잡아도 만 점 가까이 된다. 종으로 치면 30종이 넘는다. 그러니까 온리 워치(Only watch) 행사처럼 단 하나의 시계만 나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한정판은 본인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언제든 구할 수 있다. 다른 업계의 한정판도 비슷하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일반 버전으로 발행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한정판은 단어적으로 희소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 수가 가산할 정도가 아닌 한 환상에 가깝다. 이것은 거의 모든 골수팬들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만들어진다. 타깃 수량을 정밀하게 가늠한다면 이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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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보자. 제조사 A에서 한 시계를 300점 한정 판매하기로 했다. 이것을 70억 인구와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이 시계는 상위 0.0000043%에 들어야만 가질 수 있는 상품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 상위 10%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개인 재산 2억 2400 만원 정도)을 기준으로 한다면, 시계를 0.000043 %의 확률로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만약 제조사 A의 판매량이 연 8만 점이고, 한정판에 해당하는 라인이 한 해 1만 개씩 팔린다면, 올해 한정판에 대한 경쟁률은 3%다. 브랜드 A의 열성팬 구매량이 3% 정도라고 가정하면 경쟁률은 12.5% 정도. (이것은 기계식 시계 제조업을 기준으로 시장 상황을 어림잡아 낙관적으로 계산한 것이다)

결국 시장성을 예측하여 만든 한정판은 단순 산술로 계산한 첫 번째 통계보다 구매 가능성이 30 만 배 정도 높다. 이것이 소셜미디어에서 전 세계 500대만 팔리는 페라리를 ‘떼샷(같은 차종의 차를 모는 주인들끼리 모여 찍은 사진)’으로 볼수있는 이유이며, 200점정도 만드는 쥬른의 한정판 시계를 열 개씩 두 줄로 세워 놓는 모임이 가능한이유다.

결국 한정판의 희소성은 타케팅과 마케팅의 소산이다. 자본이 있다면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집단’을 향해 있어서, 적당한 이너 서클에 드는 순간 성취가 훨씬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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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코스모그라프 데이토나. 시중에서 팔고 있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가 없어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실제로 시계 시장에서 값어치가 급상승하는 시계는 한정판보다 빈티지 모델, 혹은 양산 모델 중 생산량이 폭발적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경우(예를 들면 롤렉스 데이토나)다. 꼭 특정 시계여야만 하고, 그것이 문제가 될 만큼 가산적인 수치로 희소해진 것이 아니라면 한정판 시계는 양산품 시계와 비슷한 노력으로 구할 수 있다. 한정판은 생각보다 희소하지 않다. 사진 작업에 수량을 정하고 판매를 한다거나, 판화에 에디션 넘버를 붙이고 작업이 끝나면 그것을 파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행위다. 양산 가능한 예술에 강제로 제동을 걸어 희소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제 가능 시대의 예술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추가적 참작 사유가 되진 않는다.

저항으로서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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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 모저 & 씨에(H. Moser & Cie)의 미친 스위스 시계(Swiss Mad Watch)

2017년 에이치 모저 & 씨에(H. Moser & Cie)는 스위스 제작(Swiss Made)의 의미에 대하여 위트 있게 꼬집는 작업을 한다. 그들의 미친 짓이란 치즈로 시계 케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스위스의 소 젖, 그것을 소금을 섞어 굳힌 정통 스위스 치즈다. 이 시계의 이름은 ‘미친 스위스 시계(Swiss Mad Watch)’.

일견 이것은 고급 시계 시장이 정신 나간 퍼포먼스를 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생각을 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이치 모저 & 씨에가 자신들의 시계에 한 짓(?)은 스위스 수출입 협회의 ‘스위스 제작(Swiss Made)’ 라벨 결정 기준에 대한 신선한 반항이다.

스위스 협회가 정한 ‘스위스 제작(Swiss Made)’라벨 부착 기준은 시계의 구성요소 중 60%가 스위스에서 만든 것이면 된다. 이러한 제도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의 원가 절감을 종용하고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스위스의 물가가 가뜩이나 비싸기 때문에 고비용 업무 중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면 아웃소싱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공장은 생산성이 좋아지고 더 많은 시계를 시장에 풀수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스위스 제작 라벨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40%가 외부에서 만들어진 시계를 스위스 시계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에이치 모저 & 씨에의 자료에 의하면, 샤프하우젠 기반의 제조사 중 95% 이상이 ‘어느 정도’를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인지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에이치 모저 & 씨에는 이 시계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모든 시계에 ‘스위스 제작’ 라벨을 뗀다고 밝혔다. 이 브랜드는 부정한 회사들과 100% 스위스 제작 시계 회사가 함께 라벨을 쓴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유튜브에 스위스 시계의 정통성을 비꼬는 동영상을 올린다. 모저 & 씨에는 그곳에서 돈만 밝히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을 대담하게 꼬집는다. 그리고 다음과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파괴적인가? 우리가 스위스 치즈, 스위스 얼룩소 가죽으로 만든 스트랩이 파괴적인가? 아니면 ‘스위스 제작’ 레이블의 느슨하고 남용 가능한 정책이 파괴적인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의 예술가의 숨(Artist’s Breath)

 

에이치 모저 & 씨에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이탈리아의 개념 미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 1933-1963)를 닮은 것 같다. 위 사진은 ‘예술가의 숨(Artist’s Breath, 1950)’이란 작품으로, 만초니가 직접 바람을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어 단단하게 고정한 작업이다. 이것은 부자들을 중심으로 과열된 미술시장을 직접적으로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예술가가 분 풍선이 예술로 치부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것도 사 봐라.”는 심정으로 작업을 했다. 결과는? 대박이 났다. 그는 이 외에도 ‘예술가의 똥(Artist’s Shit, 1961)’과 ‘에이크롬(Achrome)’ 작업이 유명한데, 세 작품 모두 간편한 재료를 가지고 과열된 미술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였다. 결론적으로 ‘예술가의 똥’은 그 값어치가 금 값보다 몇 배나 올라갔고, 만초니의 저항은 자본주의에 흡수되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과감함은 예술가들에게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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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 모저 & 씨에는 이 시계에 붉은 톤의 다이얼과 흰색 핸즈를 사용했다. 이것은 얼핏 보면 스위스 국기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스위스 메이드’ 라벨에 대해 법적 조치나 알력 싸움을 벌이는 대신, 시계로서 의문을 던진다. 이것은 스토리텔링과 구성, 그리고 시계까지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서, 양심 없는 스위스 제조사들을 부끄럽게 하기보다 자신들의 에고를 거침없이 세상에 내놓은 듯하다. 이 미친 시계는 업계에 다시없을 개념 미술이다. 마지막으로 첨언 하나 하자면, 이 시계의 케이스는 실제로는 먹을 수 없다. 케이스는 치즈와 레진을 결합하여 굳혔고, 표면에는 폴리머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 태도 때문에 어쩌면 미술 애호가들은 ‘약간은 소심했다’며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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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 모저 & 씨에(H. Moser & Cie) 벤처러 스몰세컨즈 XL(Ventruer small seconds XL)

에이치 모저 & 씨에는 미니멀리즘 양식을 계승한 시계도 만든다. 이 시계의 첫인상은 바우하우스 양식을 따른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는데, 시원시원한 다이얼에 시계 눈금만 간단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계는 정확한 시각을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시간은 명확히 읽을 수 없고, 시침은 충분히 짧다. 게다가 이들은 ‘시간’ 외의 본질을 빼버리다 못해 자신의 브랜드 이름마저 지워버린다. 그리곤 모험가(Venturer)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브랜드는 현대 기계식 시계의 본질이 정확한 시각 파악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 같다. 현대인들에게 기계식 시계란 부의 상징이며 고급 취미 생활이다. 그들에게 시계는 ‘시각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비싸 보이는 게 손목에 걸려 있어야’하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 정립한 오늘날 기계식시계의 본질이란 ‘시간이 그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면 되는 도구일’ 뿐이다. 시/분침이 있고, 초침이 움직이면 그만이다.

이들의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기계식 시계의 의미란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고급스러운 시계의 존재, 오브제로서 의미. 이외의 것은 정말로 의미부여일 수 있다. 그리고 럭셔리 시계 브랜드가 이것을 실물로 재현한다. 용감하다. 개인적으로 미니멀리즘 시계는 이것보다 그들의 초기 프로토타입인 ‘센터 세컨드 콘셉(Center second Concept)’이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체 판단에 수익성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결국 눈금과 로고를 달아 시장과 타협했다. 아쉽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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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디자이너의 시계 예술

알랭 실버스타인의 세계

알랭 실버스테인(Alain Silberstein)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부터 그의 아내와 함께 시계를 제작한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 정체성인 기본 도형(사각형, 원, 삼각형)으로 다이얼과 케이스를 만든다. 신작 발표는 2-3년에 한 번 꼴로 하는 편인데, 가장 최근은 MB&F와 협업한 시계였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디자인 디렉터의 역할을 했다. 그의 공방이 직접 제작하는 모델을 발표하지 않은지는 제법 오래됐다. 그의 2005년과 2007년, 그리고 2010년 인터뷰를 토대로 그 이유를 감히 추측하자면 디자인적 돌파구만으로는 기계식 시계 시장에서 더 이상 주목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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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그의 무브먼트는 로터 수정(구멍 뚫기)과 나사 일부를 기본 도형으로 교체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기계식 마니아들이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버스테인은 자신의 공방이 부족한 공학적 역량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공방의 역량 강화보다 무브먼트를 아웃 소싱하지 못하게 될 미래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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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의 시계는 바우하우스 양식을 계승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시계가 기능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표준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복잡 시계는 스치듯 보면 색과 형태 요소가 중구난방이어서 어지러워 보인다. 그러나 집중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가독성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기본 도형의 형태와 비례를 고려하여 다이얼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디자인 정체성인 기본 도형(사각형, 원, 삼각형)과 색의 가산 3요소(빨간, 노란, 파란색)는 바우하우스 이론에 기원을 둔다. 그래서 아무리 복잡한 다이얼의 시계일지라도 그의 디자인 정체성(도마뱀)과 삼각, 사각, 원이 등장하고, 유채색은 빨간, 파란, 노란색이, 무채색은 검은색과 흰색이 규칙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공통 요소 덕분에, 알랭의 시계는 퀴즈를 풀듯 어디에 어떤 요소가 등장하는지 하나씩 찾는 재미가 있다. 그의 작업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아하”하는 순간(Aha-moment)이 오면서 행성의 궤도를 보듯 개성과 조화로움을 고루 느낄 수 있는 때가 발생한다.

제랄드 젠타의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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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드 젠타(Gerald Genta)의 레트로그레이드 미키 마우스(Retragrade Micky Mouse) 시계

제랄드 젠타는 시계 역사에 길이 남을 디자이너다. 그 이유는 그가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시계 기술까지 관심을 갖고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젠타는 1981년 이볼루션(Evolution)이나 그랜드 소네리와 같이 매우 복잡한 시계를 개발했는데, 그는 미적/기계적 기술 성취 이후에도 만족하지 않고 미키 마우스 시계(Micky Mouse watch)를 개발한다. 이 시계는 월트 디즈니와 계약을 하고 미키 마우스, 미니 마우스, 도날드 덕, 구피 등의 캐릭터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가격은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이 시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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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타의 시계가 팝아트로서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심오하지 않지만 고급 시계가 꼭 좋은 소재와 전통적인 소재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경쾌하게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계식 시계라는 전통적이고 물리-기술 집약적 소재가 다이얼로 이어지는 편견을 깨고, 이것을 유머러스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의 작업과 지적재산권은 현재 불가리가 모두 인수했다. 때문에 그의 작업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키마우스 소재는 점점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미술 작업으로서, 팝 아트로서 점차 자리를 잡는 중이다.

성을 희화화 하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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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스 나르딘(Ulysse Nardin)의 에로틱 아워(Erotic hour)

율리스 나르딘(Ulysse Nardin)은 포르노그라피를 희화화하는 작업을 했다. 이 시계는 카마수트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비슷한 형식의 다른 시계로는 블랑팡의 에로틱 다이얼이, 의류 브랜드에는 베네통, 안경 중에는 테오의 라인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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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매장에 설치되었던 베네통 카마수트라 작업

이 시계가 예술적으로 의의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메시지의 변이’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계는 카마수트라의 본디 메시지와 다르게 성을 개방하고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의미를 전이한다. 이 시계는 우리가 숨기고 금기시하는 성을 고대 교보재를 빌어 개방적으로 드러낸다. 그렇지만 필자에게 이것이 카마수트라의 시각적 복원, 성을 희화하는 것 그 이상의 예술성을 보이는가 묻는다면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다. 이 작업이 과거 부호들이 그리스 신전이나 아르데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집을 꾸미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뵈기 때문이다. 시장 반응 역시 열렬하지 않았다.

결국, 율리스 나르딘을 포함하여 성적 코드를 모티프 삼아 시계를 만들던 브랜드들은 이것에 어떤 의미도, 호응도 받지 못했는지 라인업을 지워버렸다. 극단적인 시각 유희는 주제의식에 따라 이처럼 주목을 받기도, 외면을 받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시계는 이처럼 업계에서 나름의 고뇌와 성취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학적으로는 역사를 답습하고 그것의 일부를 현실로 담아낸 다음 대중들과 소통한다. 이것은 동시대 미술계도 마찬가지로, 손목시계는 아니지만 시계/시간의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페르 & 바르시안 휴먼스 신스 1982 (Per and Bastian-Humans Since 1982)’는 스웨덴에 있는 디자인 하우스로 바늘 시계를 가지고 아날로그 인덱스를 그리는 작업을 한다. 시-분침은 서서히 다이얼을 유영하다가 물결을 이루면서 서서히 시간이 드러난다. 이들은 뉴욕에 쿠퍼 휴잇 디자인 박물관(Cooper-Hewitt National Design Museum) 로비에 자신들의 작업을 전시하고 한국을 비롯해서, 뉴욕, 파리, 영국, 스위스, 두바이 등의 나라에서 전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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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A million times), 페르 & 바르시안 휴면스 신스 1982(Per and Bastian-Humans Since 1982)

현대 팝 아트계의 거물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도 시계를 주제로 작업을 했었다. 그는 파네라이(Panerai)와 협업하여,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 위에 다이얼을 올렸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존 그의 작업 세계 위에 시계 다이얼만 얹은 것이고, 의미 또한 거의 변주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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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바라기 파네라이 페인팅(Beautiful sunflower Panerai painting),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이 조금 망쳐놓긴 했지만 럭셔리 시계 예술과 현대미술과의 조화는 앞으로도 그 전망이 밝다. 고도화된 영역엔 언제나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쉽진 않겠지만 많은 개념 예술가들이 활동할 영역은 충분해 보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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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5: 동시대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계)”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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