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6: 마치며)

긴 여정이었다.

우리는 현대 시계 디자인을 이해해보려는 취지 아래, 근대부터 시작해서 동시대 미학을 함께 훑었다. 이 곳에서 수 많은 예술적 실험들이 일어났음을 되짚었다.

GTE 2013
독립 시계 제작 브랜드인 헤리티지(Heritage)의 GTE 부스

필자 또한 리서치를 하고 이를 엮는 과정에서 몇 가지를 새로 깨달았다. 먼저 기능미가 뛰어난 시계, 혹은 복각 위주로 굴러가는 현대 시계 시장 내에서 이렇게 미학적 연구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새로 깨달았다. 이것은 시장이 충분히 건강하다는 증거다. 시계업계는 메이저 브랜드들이 성기게 영역을 차지하고, 작은 브랜드들이 열심히 생존의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세계적 시계 박람회인 SIHH나 Basel 뿐만 아니라 GTE(Geneva Time Exhibition)에서 신생 브랜드들이 블루칩같은 새 시계를 발표한다. 메이저 브랜드들은 이들을 위해 작게나마 부스를 마련해 준다. 이것은 시계가 예술품과 사치품의 경계선에 서서, 기계식 시계가 생존할 수 있는 과정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국내외를 통틀어 시계 업계의 미학적 가치를 회고하는 글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범주의 범주의 오류(category-mistake) 때문일 수도 있다. 근대 예술은 개념과 이론이 고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감상자의 개인적 감흥에 예술적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근/현대 미술은 예술을 고도화했지만 반대로 예술과 타 분야 간 교류 장벽을 높였다. 따라서 디자인 수준의 시계-회화 협업으로는 예술-시계 업계 간 발전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시계는 시계로서, 예술은 예술로서 구분지어야 한다는 관념이 이러한 시도를 무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person-woman-art-creative-e1474051828273

그렇지만 필자는 고급 시계가 예술계와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고, 앞으로도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이해가 함께 있을 때야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는 에로틱 주제를 오마쥬한 시계들이 소비자로부터 어떻게 외면당하는지 직시한 바 있다. 기계식 시계는 본질적으로는 ‘산업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팔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앞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들의 작업을 고민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러니까 시계-미학적으로 새로 역사를 쓴다는 것은 금전적 손실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실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현재 시계 업계는 옛 인기 모델을 업데이트하여 생산하고, 과거 죽은 역사를 부활시키는 방식으로 생을 연명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14세기 역사, 혹은 세계 전쟁 역사를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 기계식 시계는 쿼츠 파동 이후에 한 번 부활했다. 첫 부활은 자본주의의 양극화 덕분이었다.

apple-watch-series-3-hero

스마트 시계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기계식 시계의 의미가 흐릿해지고 있다. 이제는 두 번째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기계식 시계는 현대적 매력을 창출하고 오늘의 역사를 써야 한다. 고급 기계식 시계는 대량 복제 시대의 현대 미술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뱅크시(Banksy, 1974-)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의 스트리트 아트, 혹은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복제의 미학을 모티프 삼아 정진하는 것도 이번 세대의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술은 상호 간 믿음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도 마찬가지다. 지난 100년 간 과학의 패러다임은 천동설에서 뉴턴 역학으로, 다시 뉴턴 역학을 지나 양자 역학과 서로 충돌하는 세계가 됐다. 우리가 철썩같이 믿는 과학 조차 현재 최선의 약속일 뿐이다.

galapagos-darwin-finches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서 발견한 같은 종 새들의 부리 변화

예술계와 시계 업계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그것을 계속 따라가겠다는 생각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것은 지난 300년 간 예술계가 역사로서 증명했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불완전한 정의다. 예술가들은 그것의 경계를 의심하고, 도전하고 업데이트 해야 한다. 시계 업계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과학, 철학, 예술게에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교류하고, 깨져야 한다. 대중들과 애호가들의 인식에 충격을 주고 미감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기계식 시계가 예술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추억팔이’라는 오명을 벗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Fin.

Advertisements
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