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마감하며

은 날이 있었다. 훌륭한 인격들과 교류했다. 좋은 날도 있었다. 황소같은 고집을 맞닥뜨려 위기를 맞았다. 나약한 자신은 괴로워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한참동안 바닥을 굴렀다. 차오른 숨을 헐떡대며 뱉었다.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렸을 때. 황소는 나 자신이었고, 거울 앞에 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목소리를 잃었다.

설겆이가 이주일치 밀리는 경험을 했다. 갈빗살이 허약하여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날 밤 침대에서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영혼은 곪는 소리를 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아구를 열어 무엇이든 씹어 먹었다. 구슬처럼 맑은 눈망울을 지닌 당신 앞에서, 나는 발언 대신 섭식을 했다. 결국, 도망치듯 홀로 선 자리에서야 소리가 났다. 응, 그래. 우리는 결국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말하게 될 것이다. 당신도 그런 면이 있을 테지. 불확실한 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으니, 속으로 꾹 삼켜 넣는 어떤 침묵.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것은 품어 쓰면 안 된다. 처음에는 세상을 다 가진 자유롭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렇지만 주인은 심장의 온기를 모조리 빼앗기거나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잿더미가 되어 버려서, 어떤 기관이었는지조차 유추할 수 없는 나의 껍데기를 모아 입속에 넣었다. 나는 먹고, 빌며 사는 생명체. 무엇이든 먹을 수 없다면 생명이라 부를 수 없다. 바싹 마른 땅 위에 먹을것이라곤 자신뿐인 곳에서, 나는 비가 내릴 때까지 흙바닥에 입을 맞춘다.

풍요로운 곳을 찾아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의 속내는 풍요로울까? 만약 당신의 대답이 ‘그렇지 않다’라면, 그이의 가슴에 군불이 덥힐 날은 올 것인가? 허다했던 나의 생애. 짧고 길음을 말할 수 없는 불확실한 나의 여생. 나는 영원히 살아있고싶어 꿈틀대며 돌담 위에 이름을 새기고,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숨어 들어 수음(手淫)을 한다.

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낮선 교류에서, 아니면 부끄러움에서 오는 것일까? 계절이 손바닥 뒤집듯 겨울과 봄을 오가는 사이, 내 영혼은 시간과 함께 물었다.

정인이여!

이름 모를 당신의 미소가 비가 되어 내릴 때, 나의 얼굴에 나무를 심자. 나의 떨림을 모아서 흙을 파고, 당신의 문법을 흩뿌려서 뿌리를 내리자. 그리하면 나는 지독한 침묵 대신에 신음으로서 하고팠던 말을 대신 할 수 있다. 이 날은 곧 내가 기쁘게 죽었던 어제가 될 터이니, 그것은 언젠가 불사조처럼 부화하여 내 남은 생에 걸게 될 희망이 되리라.

이 달은 지독하리만치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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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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