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여정

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캔버스에 유채 125.9 x 200.7, MoMA)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게 오전 세시. 나는 어떻게 계단을 올랐는지 기억조차 남지 않았다. 일이라 불리는 것을 했고, 택시를 불러 탔지만, 간밤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택시기사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요금은 얼마가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갑한 구두와 절어있는 셔츠, 왼쪽으로 약간 뒤틀려 묶여있는 넥타이가 지금 나의 안부를 대변하듯 드려졌다. 빳빳한 셔츠가 준비되는 날이면 나는 짜 맞춰진 제복을 입고 신나게 춤을 춘다. 눈을 감고, 팔을 휘젓고, 눈을 굴리고, 입을 벌리고, 물을 마시고, 다시 그 물을 뱉고, 슬리퍼를 신었다가, 윗단추 한두 개를 풀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마지막은 절인 배추처럼 몸이 늘어진 뒤. 모든 의식이 끝이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알맹이를 돌려받을 수가 있다. 나는 커튼콜을 받고 나와 옷가지와 가방을 들고. 로비에 맡겨두었던 나의 알맹이를 받아 집으로 향한다.

정신은 미세한 진동에도 끊어질 듯 위태롭다. 그러나 나의 신경은 이제 막 주인을 찾았기에 끝도 없이 예민하다. 새벽길 잘게 이는 바람에도 나의 솜털은 쇠바늘처럼 곤두서고, 피부는 마치 뜨거운 것이 닿기라도 한 듯 화끈거린다.

“가자, 집에 가서 자자.”
나는 노랗게 깜빡거리는 죽은 신호등 아래서 혼잣말을 했다. 이내 손을 들어 택시를 불러 세웠고, 냉장고 문짝처럼 차가운 가죽 시트에 온몸을 바싹 붙였다.

“상계동이요.”
신음하듯 소리를 뱉는다. 가로등 불빛이 나의 몸을 허벅지부터 어깨까지 주기적으로 훑는다. 깜빡깜빡. 명멸하는 시야에 맞추어 나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숨소리는 자장가로 불린다.

집 앞에 떨어진 나는 나비처럼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연다. 벗어던질 힘조차 남질 않아서 꽉 죄는 구두를 툭툭 놓아버리고, 나는 침대를 찾아 날아 앉는다. 무릎 깨부터 힘을 풀고, 삼분의 이쯤을 채워 솜 더미 위로 쏟아진다. 뻣뻣해진 뒷목이 머리통을 위로 들어내듯 수축하고, 귓가에는 고주파 비명이 메아리친다. 나는 그것을 신호 삼아 퇴근 때 받아두었던 알맹이를 꺼낸다.

 밀려나온 희고 뽀얀 나의 정신. 오늘 밤, 나는 세로줄이 굵은 누더기를 걸치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밤 사막을 건넌다. 상쾌한 바람이 나의 육신과 거적 사이에 작은 회오리를 만들고, 전라의 표피 위에 맺혀있는 땀이 마른다. 나는 모래언덕 깊게 지팡이를 처박고, 나의 팔뚝 위에 무게를 실어 사막을 건넌다. 능선을 타고 고개를 들자. 그리하면 사구의 등허리가 달빛을 받아 뱀 비늘 같은 빛을 낸다. 가만히 몸을 사리자. 그리하면 사라락 모래 움직이는 소리, 별이 낙하하는 소리, 나 말고 저기 멀리 사막을 건너는 이의 숨소리가 슬그머니 나를 부른다.

“조금 늦으셨네요.”
그 소리에 나는 반쯤 꿇어앉았던 무릎을 펴고 뒤를 돌아본다. 이 시간 함께 사막을 건너는 이가 발치에 서 있다. 그의 허리춤에는 가죽 물주머니 하나, 만돌린 하나가 걸려 있다. 그래서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면, 나일론 줄이 몸에 닿아 띠용 데용 하는 소리가 난다. 그는 자신의 만돌린 줄이 퉁기는 소리 대신 나의 지팡이 소리를 듣는다. 모래 언덕 등허리를 깊숙이 푹 찌르고, 사라락 소리를 내고 나와 다시 한 번 푹 하고 떨어지는 리듬을, 그는 듣고 있다 했다.

귀뚜라미도 사막을 지난다. 찌르르 찌르르 사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이들은 발치에는 보이지 않지만, 떼를 지어 모래를 오른다. 다른 소리로는 바람 소리, 바람에 펄럭이는 거적 소리, 지팡이 소리, 만돌린 줄이 진동하는 소리, 물통 속에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그리고 모래가 신발 등 위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있다. 모든 소리와 함께 우리는 검푸른 보석 위를 건넌다. 영 느리도록, 꾸준하게 밟아 오른다. 그리하면 나의 알맹이에는 어느덧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그렇게 사막을 반쯤 지날 때쯤에는 사자를 만난다. 사자는 나의 주먹 크기 정도 되는 눈을 가졌다. 사자는 그 눈으로 나를, 사구 저 멀리를 번갈아서 바라본다. 그의 고개가 돌아갈 때는 갈기가 찰랑대며 서로 부딪히는소리가 난다. 육식동물은 며칠은 족히 굶은 것 같다. 손가락처럼 길게 갈라진 갈비뼈가 그의 살가죽 위로 불룩 튀어나왔다. 사자는 이제 천천히 몸을 틀어 우리와 함께 걷는다. 모든 것이 말라 부서져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시각은 생존을 위한 감각이기 보다는 동료에 가깝다.

서랍처럼 밀려들어 간 침대 속에서, 알맹이는 솟아올라 사막을 건넌다. 나는 양복 단추를 끌렀던 손으로 거적을 두르고, 마른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긴 지팡이를 잡는다. 나의 동료는 시인과 사자, 귀뚜라미와 바람, 그리고 별이다. 나는 왔던 곳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 그렇다고 목표하는 곳까지 성급하게 뛰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뽀얗게 광택이 져 있던 알맹이 위에는 모래 먼지가 앉았다. 표면 일부는 땀이 나서 쪼그라 꺼졌다. 허벅지는 딴딴해졌다. 풍선 주둥이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날숨에 난다. 그렇지만 흐릿하게 미소가 진다. 땀이 맺히고, 몸이 늙고, 피로가 쌓여도. 사막을 건너는 일이, 그리고 모래를 헤치는 일이. 내게는 그리 고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Fin.

웹진 무구 4월/5월 투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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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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