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묵서

조용미

  당신은 몸뚱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요 살가죽의 고독, 눈꺼풀의 고독, 입술 가운데 주름의 고독, 엄지와 검지 사이 살이 구겨진 듯 오래 접혀 있을 때의 고독, 무너지지 못하는 등뼈의 고독, 종아리 속 정강이뼈의 고독, 뭉클뭉클 흘러나오는 어두운 피의 고독을

  당신도 혹 이곳에 발붙이고 있어도 늘 저곳을 향하고 있는 마음이 따로 있진 않은지요 자의식 과잉의 먹구름이 늘 폭우를 동반하고 머리 위를 떠다닌다면 그 정신과 육체는 너무 습도가 높아 목까지 찰랑이는 슬픔이 그득 차 있겠지요

어떤 마음은 슬픔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 꽃과 잎을 피우고 열매 맺고 스러져갑니다 어떤 마음은, 몸 속 어딘가에 깨알 같은 혹을 만들어 놓고 키웁니다 습도가 불러들인 미세한 파장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혹은 몸 안에서 따뜻하고 서글프게 머뭅니다

  생강나무에 물이 올라 노란 꽃이 맺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꿰뚫어보면 그 실체가 물질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노랑에서 분홍으로 봄이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습니다 아아, 몸이 달라지고 있는 봄입니다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만 더합니다 부디,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계간『시안』(2011년 여름호)


삶의 의미란 나이를 먹다보면 공기처럼 희박해지고, 우리는 정신을 잃게 십상입니다. 부디 그럴 때마다 자신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의미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여 의미가 없는 삶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엔 유서를 한 장 써 뒀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 두었더니 우습게도 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목표가 생긴 것도 아니고, 지난 길을 돌아보기만 해 두었을 뿐인데도요. 이런 제가 어이없어, 웃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부디, 당신은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맨 위에 쓰인 손글씨는 친한 분께 직접 받은 것 입니다. 참 고마운 분이지요. “크게 웃는 사람들은 오래 울었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이 방금 했던 말과 똑 어울리는 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분이예요. 그렇지만 그 분은 이러한 평가보다는 따뜻함을, 위로를 건네고 픈 친구입니다. 여러분께도 그런 벗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그들과 함께 오래 즐거이 지내셨으면. 그렇게 잘 지내주었으면 합니다. 마음이 소홀하여 몸이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루를 허투로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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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봄의 묵서”에 대한 답글 1개

    1. 애정하는 westwind 님. 봄의 묵서라는 시가 westwind 님께도 위로가 됐으면 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여름색이 짙어가면서 지치기도 하고, 저는 낮잠이 늘어서 이래저래 불규칙적인듯 변하고 있어요. 부디 마음도 몸도 소홀히 두지 않는 westwind 님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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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봄의 묵서라는 시, 참 따뜻한 시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시집을 사서 읽었는데 읽어도 아무 감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읽고 바로 상자에 집어넣었는데 반면에 봄의 묵서는 쓰여진 단어 하나하나가 참 곱고 아름다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요. 😀 저는 당장 다음 주가 시험인데 아프다는 핑계로 부끄럽게도 며칠 째 모든 일에서 손을 놔버렸어요. 고마워요. 소고님도 꼭 건강하게 여름 보내시길 바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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