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마감하며

늦었다.

달 마무리가 늦었듯, 이번 달 나는 많은 곳에 구멍이 났다. 구석구석 기름이 안 새는 곳이 없고, 삐걱삐걱 접히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입 밖에선 아무 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옛 선인이 왜 입을 닫고, 눈을 감는지. 당신은 왜 무릎을 안쪽으로 접어 넣어 불편한 자세로 생각하는가를 조금은 이해할 것만 같았다.

마감하기 위해 캘린더를 켰다. 과거를 읽는 일은 안정적이다. 몇 차례의 저녁 약속, 훈련소를 간 친구를 향해 쓰는 편지 몇 통. 회사에 면접 결과를 통보하는 일과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는 스케쥴이 보인다. 캘린더에는 내가 잊고 지나 보냈던 어제가 흔적처럼 남아 있다. 글자 위에는 사건뿐이지만, 나는 감정을 읽는다. 당구장 모양으로 툭툭 채워진 글자를 헤집고 마음을 일군다.

아침 지하철은 붐비고, 나는 다양한 사람과 한데 섞인다. 나는 이들과 하나가 되고, 이들은 내가 된다. 나는 앞사람이 하는 애니팡을 눈으로 따라 긋고, 옆 사람이 보는 포토뉴스를 따라 보며, 고등학생 두 명이 수련회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얘기를 엿듣는다. 자신의 팔을 무기처럼 불뚝 세우는 아주머니나, 몸을 쌀포대처럼 무식하게 미는 아저씨, 사고라도 칠 것처럼 눈을 치켜뜬 취객만 없다면, 지하철은 괜찮다.

6호선 지하철 환승역에는 돗자리를 펴고 미나리를 파는 노인이 있다. 당신의 주름지고 흙 묻은 손을 본다. 당신은 누구 아는 사람이나 마주칠까 부끄러워 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나는 클리셰라 부르기조차 미안한 당신의 파마를 본다. 상품성 없게 수분이 다 빠져나간 미나리가 당신 손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지나갔는데, 그 날은 온종일 당신 생각이 났다. 과학자들이 그려 놓은 위성의 궤도처럼. 당신의 얼굴 없는 모습이 나의 마음 위로 선이 되어 그였다.

땅만 쳐다보고 걷다가 떨어진 꽃잎을 발견한다. 그러면 나는 꼭 짝을 이루는 새가 있을 것만 같아 고개를 든다.

나는 이 말이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호흡하며 읽을 여지가 있는 문장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에 비해 지난날 내가 뱉었던 말은 나의 피를 차갑게 식힌다. 나는 무엇을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것은 나의 호기심일까? 아니면 당신과 마음껏 사랑하기 위하여 알아두어야 할 것을 미리 꺼내 확인받고 싶은 것일까?

퇴근길 지하철은 모두가 파김치다. 사람들은 남남이라 차마 서로 기대지 못하고, 은빛 쇠기둥에, 플라스틱 손잡이에 기절하듯 몸을 의탁한다. 지하철이 덜컹댈 때마다 승객들 몸은 파도처럼 휘청인다. 얼굴이 빨간 취객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어폰을 낀 직장인은 고개가 뒤로 꺾인다. 객실은 만석인데 눈과 입이 모두 닫혀있다. 나는 이 속에서 그들 중 하나의 얼굴을 하고 집으로 간다. 따뜻한 햇반과 캔 참치가 있는 곳으로. 함께 걷던 길 위를 벗어나 각자의 방으로.

Advertisements
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