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것들과 “그것들”의 윤리

지평(L’Horizon) 연구공동체의 여정 님은 명제의 존재와 이를 표현/동작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형태(언어, 글, 규범)의 한계와 충돌을 이야기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으로 가설과 탐구를 수행합니다.

본문이 아래로 이어집니다. 실험으로 시작되어 보통명제를 이끌어내기까지 논지 흐름이 매끄러워서 외부 링크라는 섹션을 만들면서까지 이 곳에 보전하고 싶었어요.

 

L'Horizon

이 글은 후기이면서 동시에 복기이다. 나는 여기에서 4월 특집으로 게재한 <복제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윤리>에 대한 재검토,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말하기”를 해 낼 것이다. 왜 나는 나의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말하려 하는가? 여러 언어를 통해 쓰인 병렬적인 텍스트들이 동시에 한 곳을 향하고 있다면, 그 모든 텍스트들은 신뢰 가능한 기반을 넓히게 되리라는 소박한 기대 때문이다. 파상은 그 텍스트들이 향하는 바로 그 지점에 각각의 텍스트들이 도달하지 못하리라고 주장할 것이다. 즉 그는 “실패”를 말한다. 그럼에도 실패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아진다면 그것은 또다른 규칙이 되는 법이다. 반드시 규칙을 만드는 것이 규칙일 필요는 없다.


-또다시, 이하는 시론들의 병렬이며 각 시론은 독립적인 단편의 연언이다.

다시 쓰기 하나.

<i>

나의 주장을 다시 쓰도록 하자. 주장의 핵심은 변함이 없다. 어떤 윤리적인 행위는 상대를 고유한 무엇으로 포착할 때 시작된다. 그런데 그 고유한 것으로 포착된다는 것은 그를 오로지 보편화된 형태로서가 아니라, 보편화되지 않은 어떤 으로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 행태에서 이 포착은 ‘이름짓기 관행’으로 가장…

원본 글 보기 3,242단어 남음

Advertisements
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