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1월을 마감하며

두 달을 한꺼번에 눌러씁니다. 폐관 수련이 끝나면 어떤 이는 도인이, 또 어떤 사람은 괴인이 된다고 합니다. 빠른 것이 많이도 변했어요. 따뜻한 물이 담긴 유리잔 한 컵과 작게라도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이 글에 어울립니다. 감히 적합성을 논해봅니다. 그 이유는 거대한 줄 알았던 몸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관련이 있어요. 이제 저는 표현과 진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바람을 말하는 것과 진실을 전하는 것은 다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자신을 설명하는 과정은 지향점이 엇갈립니다. 저는 도시를 빠져나왔습니다.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껏 몸을 웅크려 한 줌의 온기를 만들었어요. 그것을 당신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냠냠 쩝쩝. 소리가 날 정도로 맛있었네요. 약간 부족한 것이 터질듯한 것보다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적정량을 한 번에 알 수는 없었습니다.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는 경험도, 굶주림에 입술이 마르는 경험도 모두 보내야만이 적절한 양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굶고 배부른 경험도 하나같이 소중하다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침이면 콧구멍 언저리가 마르기 시작하는 것이 딱 겨울입니다. 어떤 날엔 창문 바깥으로 얇고 커다란 눈이 날렸어요. 그것은 마치 종이를 찢어 날리는 듯 해서, 저는 체계가 붕괴된 어떤 도시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엉뚱하게도 칼국수가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엔 칼국수가 좋겠습니다. 얇게 채 썬 호박이 진하게 풀린 육수에 녹아 흐물흐물해질 때에 그것을 식도 위로 얹어 리드미컬하게 밀어보는 것 입니다. 뜨끈한 온기가 한껏 몸을 덥힙니다. 식사를 시작할 적엔 마른 나뭇가지처럼 차가웁던 몸이, 그릇을 내려놓을 때면 온돌처럼 훈훈합니다.

겨울엔 해가 져도 어둡지가 않습니다. 낮에 사람들이 나무 위로 전구 타래를 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각, 그것은 어둠을 천막 삼아 빛을 수놓습니다. 안경에 김이 서려 빛망울이 지천입니다. 저는 성냥을 팔던 소녀의 형상을 그립니다. 작은 불을 켜서 먹을 것을 부르고, 다시 한 번 불을 켜서 나의 집과 사람을 그렸던. 한 작은 영혼을 생각합니다. 그 이의 염원일란 뜨거운 눈물로 보석처럼 바닥을 구릅니다. 저는 그것을 닦아 가슴에 품는 사람. 당신과 함께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고파. 화려하고 빛이 많이 모이는 장소 말고. 밀려난 마음이 이불 밖 신체처럼 차가워지려 할 때에 그것을 손에 쥐고 호호 몸을 불어 덥히는 그런 사람. 그렇지만 바람은 입김처럼 가볍게 날려서, 손을 뻗어 흔들 수록 더욱 빨리 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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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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