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Combinator는 어떻게 시작됐나

원문: http://www.paulgraham.com/ycstart.html

3월 11일이면, Y Combinator(이하 YC)는7번째 생일을 맞는다. 우리는 평소대로 매우 바빠서, 생일은 며칠이나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됐다. 나는 우리가 생일을 챙겨온 적이 없음을 함께 깨달았다.

2005년 3월 11일, 제시카와 나(폴 그레이엄)은 하버드 스퀘어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제시카는 당시 투자은행에 있었고, 그 직장이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보스턴 VC 펀드의 마케팅 디렉터 자리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당시 VC 펀드는 오늘날 벤처 캐피털이 하는 일과 유사했다: 투자하기까지 마음 먹기 같은 거 말이다. 나는 제시카와 함께 걸으면서 VC 비즈니스에 필요한 모든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이 YC의 초기 아이디어가 됐다. 여기서 필요한 변화란: 양복쟁이가 아니라 해커에게 투자할 것, 젋은 파운더에게 투자할 것 같은 것이다.

당시에 나는 엔젤 투자 몇 개를 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는 이 생각을 하기 며칠 전에 하버드 학부생 컴퓨터 클럽에서 “내가 어떻게 스타트업을 시작했는지”를 강연했었고, 이 강연에서 내가 진짜 원했던게 엔젤 투자였다는 것을 알게됐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엔젤 투자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모여있지만, 당시에는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때였다. 나는 그저 로버트 모리스와 트레버 블랙월과 같이 어떻게 일이나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하버드 스퀘어에서 집으로 가는 사이, 갑자기 아이디어가 스며나왔다. 그냥 바로 로버트, 트레버와 함께 투자사를 만들고 제시카를 이 회사에 다니게 하는게 어떨까 생각했다. 워커 가를 막 돌아나왔을 때, 나는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10만 달러를 새 펀드 만드는데 투자하고, 제시카도 퇴사하고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 며칠 후 나는 로버트와 트레버를 부르고 각각 5만 달러를 모았다. 그렇게 YC는 2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시작됐다.

제시카는 퇴사 후 자신의 회사를 가질 수 있어서 기뻤고, 나는 집에서 당시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당시 회사는 YC라는 이름이 붙기 전이었다. 맨처음 우리는 회사를 “케임브리지 시드”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이름은 하루도 채 되지 못했다. 우리는 회사 이름을 Y-컴비네이터라고 지었다. 우리는 사업 초기부터 우리가 무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이 사업을 케임브리지나 하버드 권역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벌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초기에, 우리는 YC의 일부 모습밖에 그리지 못했다. 우리는 시드 펀딩을 위한 기본적인 조항을 만들었다. YC이전의 시드 펀딩은 말 그대로 “제멋대로”였다. 당시 투자란, 당신의 부자 삼촌으로부터 받는 천만원의 종잣돈 같이 이뤄졌다. 투자 조항이라고 된 문서는 최악이었다. 투자자나 파운더 심지어 변호사조차 제대로 된 문서 형식을 만들지 못했다. 초기 페이스북은 아무거나 만들던 것이 어쩌다 잘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에 없던 일들을 해내야 했다: 시드펀딩에 대한 표준 조항을 만드는 것 말이다.

우리는 Viaweb을 시작했을 때 시드 펀딩에 대한 모델을 만들었다. 그 회사는 우리 친구인 줄리안 웨버의 회사로 1만 달러를 투자했다. 줄리안은 비즈니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양복쟁이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 회사에 투자했다. 그는 또한 변호사여서, 우리의 서류작업이 제대로 됐는지 봐주기도 했다. 우리의 1만달러 투자로 그는 회사를 세우고,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가르치며, 줄리안은 비아 웹으로 10%의 지분을 가졌다. 나는 줄리안이 좋은 딜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줄리안 없이는 Viaweb이 성공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딜이 그에게 좋았더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도 좋은 딜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YC 같은 작은 회사에도 기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회사 초기에 우리는 회사의 핵심 아이디어가 없던 상태였다. 우리는 회사를 동기적으로 투자했다. 하나의 라운드가 끝나면 다른 회사를 찾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고수하는 대신, 우리는 썸머 프로그램을 만들고, 여러 스타트업에 동시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진 깨닫지 못했다.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우리가 엔젤 투자자로서 배우는 것이 많아지는 것도 있겠지만, 학부 창업자들이 바르게 자라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알바를 했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름방학에 학부생들을 모아놓고 스타트업을 시키는 일은 알아서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우리가 엔젤 투자자로서 이들을 케어한다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학부 창업자들이 여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이미 계획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로채고, 스타트업들에게 늘 하는 말을 가르쳤다: 빨리 론칭하라는 말 말이다. 이 글에도 여름 창업자 프로그램 지침설명을 달아놓겠다.

결국 첫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이상적인 YC 사이클이 어느정도 갖춰졌다. 이것은 어찌보면 행운이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이상적인 구조를 구축한 것이니까. 첫 배치 창업자들의 수준이 좋았던 것 또한 행운이었다. 우리는 첫 배치에서 돈을 벌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당시 우리가 투자하는 돈이 교육비이자 자선 도네이션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첫 배치 파운더들은 놀랍게도 잘 해냈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도 나왔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 중 다수와 친구다.

절대다수는 YC의 초기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YC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진 않는다. 왜냐면 우리도 처음부터 여름 프로그램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여름이 지나면서 우리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감명받았다. 제시카와 나는”YC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창업자들을 직접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충격 받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었다. 첫 여름에 YC를 찾아 격려사를 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보이스카웃 부대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이 저녁을 마치고 YC를 떠날 때,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들은 진짜, 어떻게든 성공할 것 같네요.”

이제 YC는 충분히 성공했고, 사람들은 우리의 투자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 투자가 성공으로 드러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우리가 “장난감” 같아 보여서 투자를 거절당한 아이디어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YC 또한 한 번은 같은 이유로 기각됐었다.

우리는 회사들이 동기적으로 잘 투자하고 자란 경험 이후에, 계속 이 정책을 고수 하기로 했다. 우리는 한 해에 딱 두번 배치로 투자한다.

당시 우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두 번째 배치 투자를 했다. 이것은 정말이지 금방 결정된 일이었다. 나는 당시 해커 행사를 가려고 했던 때였다. 베이 에어리어는 보스톤보다 스타트업하는 사람들의 밀도도 높았고,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베이에어리어에 있으면 90년대를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게데가 나는 어떤 사람이든 자신들이 실리콘벨리의 YC라고 카피하고 다니는 꼴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YC가 실리콘 밸리에서도 YC이길 바랐다. 그래서 겨울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 배치 투자를 감행했고, 우리는 이곳에 정착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YC는 버클리에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베이 에어리어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기도 한데, 당시 버클리에는 우리가 원하는 건물을 살 시간이 없었다. 버클리 어디서도 마음에 드는 건물을 살 시간이 없었다.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트레버의 마운틴뷰 사무실에 일부를 빌려달라 말하는 것 뿐이었다. 이것 또한 우리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왜냐면 머잖아 마운틴뷰는 YC 같은 투자 회사들의 성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이뤄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신히 이뤄낸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먹었던 첫 저녁이 생각난다. 우리는 트래버의 건물을 쓰고 있었는데, 같이 있는 창업자들에게 벽을 만지지 말라고 했었다. 왜냐면 페인트가 아직 마르는 중이었거든.

트래버와 RTM이 앉아있는 모습.

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