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여정

지수님과 같이 뮤지엄 산에 갔다왔다. 즉흥계획이었다. 전날엔 20년도 첫 음주를 했고, 숙취로 열두시쯤 일어나 도무지 지적 활동(ex) 유튜브 보기, 책 들고 잠들기)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운전을 하기로 했다.

뮤지엄 산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웅진 재단 미술관이다. 뮤지엄은 골프장 스키장에 들렀다가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나 들러야 할 것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냥 생각이 하기 싫단 이유로 지구온난화에 일조하기로 한 것. 왕복 약 140km의 여정이었다.

지수님이 선약이 있어 3시까지 기다렸다. 지수님은 약 20여 분 늦었는데, 내 약속이 즉흥이었고, 만남에 정시가 어딨냐 싶기에 한 시간이고 더 기다릴 수 있었다. 미술관이 6시에 마감이라기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다. 다이어트 콜라 두 병을 사들고 지수님 있는데로 움직였다. 지수님을 만나 이런저런 멍소리를 했다.

갈색 낙엽이 바닥에 깔리고 헐벗은 막대가 솟아오른 겨울 산이 아름다웠다. 운전하며 사진을 찍진 못 했다. 그냥 좋았다. 이동중에 무슨 소릴 했는지 모두 기억이 나지만 멍소리라 여기 옮겨 적을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한다.

약 한 시간을 달려 뮤지엄 산에 도착했다. 그때가 오후 다섯시 사 분. 시간을 똑똑히 기억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차를 대고 기분좋게 인증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기분좋게 뮤지엄 리셉션에 들어섰다. 그런데 커다랗게 적혀 있는 안내문 하나:

입장 마감 시간:

17:00

지수님은 곧장 시간을 확인하시더니 ‘한국인의 유도리’ 스킬을 시도하셨다. 가만히 계셨다면 내가 그랬을 것인데, 역시 그는 고도로 발달한 지적 인류답게 내 생각을 읽고 먼저 나서주셨다.

“죄송합니다. 네.”

과연, 웅진의 고오급 미술관다운 처사였다. 나는 외국인인 척 하며 “오늘이 한국 여행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 오고 싶어서 이역만리를 날아왔어요.” 스킬을 시전하려다 다음에 또 올것을 생각하고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빠르게 머리를 굴릴 뇌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멍때릴 시간이 필요해서 출발한 여정이었으니.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 주차장 자갈밭에서 발길질을 한 두어 번 하고, 멍소리를 두 합 정도 주고 받았다. 예를 들면, “이 언덕 높이가 얼마나 될까요?” “13미터 정도 되겠는데요, 자갈 떨어지는 시간이 1초가 넘어요.” 같은 것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닭 쫓기가 끝난 멍멍이처럼 말없이 차 문을 닫았다.

집에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30센티 정도 되는 소시지 두 개에 8,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간식을 사 먹었고, 감자 10알에 4,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황금 먹듯 했다. 생각해보니 아메리카노가 4,000원이다. 아메리카노 아까웁진 않은데 소시지가, 감자가 아깝다니. 속물이다.

집에 오는 길에 1만원 어치 주유를 했다. 차 안에서 다시 멍소리 시작. 연비는 20km/l 가 나오는데, 버스가 싼 걸까? 같은 말을 했다. 버스비(1,350)보다 싸면 운전을 해야하나 같은 생각을 했다. 내 운전 노동 시간은 생각도 안 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버스 타도 유튜브만 본다.

지수님께 멍소리만 하다 와도 괜찮은 사람이라 고맙다고 말했다. 안되면 좀 어때 싶은 사람이 있고, 원할 때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혼자 생각했다.

원래는 지수님 집 근처에 내려드리고 집에 가야되는데, 그래도 아쉽다고 지수님 집에 가서 유튜브 보고 놀았다. 배가 허전해서 지코바 매운맛을 시켰다. 적당히 배고파질때 배달이 와서 물, 우유, 갖은 열 식힘 장치를 놓고 한 마리를 다 먹었다. 열두시 가깝게 놀다가 집에 왔다.

나는 이렇게 산다. 친한 사람이 나에게 뭐해? 라고 묻는다면, 나는 “숨 셔.”라고 답할 것이다.

소고

장미라는 이름을 바꾸어 불러도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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