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소설/수필

구토(sickness)

내가 육체적 반응 중 흥미롭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간지러움이고, 두 번째는 잠이며, 마지막이 구토다. 내게 간지러움은 몸에서 발생하는 에러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에러 투성이듯, 조물주의 형상도 가끔 에러를 내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어딘가가 간지러울 때면 ‘아, 이 부분에서 에러가 났구나.’하며 손가락을 갖다 댄다. 잠은 흥미롭지만 그 정체를 알 길이 없다. 밤 새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20대의 연애는 아플 수밖에 없다

어제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철학과 교수님과 밥을 먹었다. 항상 내게 아낌없는 지지와 물질적 후원을 해 주시는 분이다. 이분은 항상 따뜻하고 반짝거려서, 가만히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햇살 좋은 날 손바닥 위에 올라 있는 유리구슬을 보는 것 같다. 어제 우리는 파전과 막걸리를 먹었고, 자리를 옮겨 뱅쇼와 오렌지 케이크를 먹었다. 먹고 또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다양했다. 자본주의와 삶, 사람의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나 답다’는 말은 결국 모순이겠죠

그거 참 너 답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너 답다’라는 말. 그 속에는 <나의 예상 범위 안에 있는 당신>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감히 꺼내선 안될 말이다. 필자는 자기다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영상이나 다른 읽을거리로 자신을 채우곤 한다. 마치 콜라주 같다. 나를 스스로 구성해 보다 보면 영화의 […]

더 보기
ART, 미술, 소설/수필

자기 앞의 생: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전

2017년 9월 30일 소고 단편 소설 생후 삼십하고도 두 해가 지났다. 나는 이제야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 전에는 체면을 지키느라, 더 정직하게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밝히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해, 나는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심경으로 운을 뗄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이성과 만남에 목을 매며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친구 놈의 표현을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안녕-또 안녕.

팔월 십오일 새벽 두 시쯤. 나는 마음 아픈 사람. 지나간 사람 마음 깨끗하게 치우지 못해,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 사실은 그 곳에 손도 못 대. 그 공간은 아내의 마지막 숨이 담긴 비치볼 같은 거라서. 나는 사랑할 준비도, 받을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 그래. 못 하는게 아니라 하지 않은 거야. 미안, 그게 못 하는 거란다.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서울 야행(首尔夜行)

  어제는 서울의 일부를 걸었어요. 혼자 있는 방 안이 너무나 답답해서, 나는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밖으로 나가면서 휴대폰에 익숙한 이들의 번호를 적었지만, 대뜸 “나와, 걷자.” 차마 말 못 하여 혼자로 했어요. 집에 가는 사람들, 산책 나온 부부, 운동하는 사람들, 음악을 듣는 사람들. 그-물-결 속에서 혼자가 아닌 듯 유사 위로를 받으니 나는 그들에게 민폐인 것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틴케이스/구슬

예술 경험은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것이어서, 그것을 들켰다 생각이 드는 날에는 똑 코 끝이 간지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것을 만나는 시각은 정해진 것이 없고, 삶마다 그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여름 득세가 한 풀 꺾이고 바람이 슬슬 추운 입김을 내려던 어떤 날, 하늘엔 잠자리가 꽃가루처럼 날리는 오후 한가운데.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뭉친 가래를 뱉듯 세상에 혼잣말을 던집니다. “세상 참 예술이네.” 당신의 허리춤에는 훌라후프처럼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손/거울

소고 수필선 참 작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평소 누군가가 제 손을 자세히 품평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엄마 손에 따라갔던 미용실 누나가 한 말이 귓가에 남았습니다. 누나는 “손가락이 짧고 뭉툭한 것이 꼭 개구리 손 같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저는 그제야 제 손이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그것과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컴퓨터/추억

나는 이따금 한량처럼(타자의 시선엔 아저씨처럼), 유년기를 반추할 때가 있다. 그중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장면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집에 컴퓨터를 처음 들이던 날에 대한 기억이다. 시기는 94년 겨울. 예전 겨울은 요즘의 그것보다 해가 빨리 졌고, 어둠은 더욱 짙었다. 문 틈 새로 찬 바람이 살살 치던 저녁, 아버지께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오셨다. 박스는 어찌나 […]

더 보기
ART, 소설/수필

넛셸Nutshell, 햄릿의 재해석

넛셸(Nutshell), 햄릿의 재해석 책은 단도직입적이다. 빙글빙글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해낸다. 덕분에 어디에서 햄릿의 대사를 오마쥬 했는지, 우리가 알고 있던 햄릿의 재창조는 어디서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치 샘플링을 잘 해낸 대중가요 같다. 읽기 편하다는 뜻이다. 넛셸의 뜻부터 잠깐 이야기하자. nutshell 미국·영국 [nʌ́tʃèl] 영국식 1. 견과의 껍질 2. 아주 작은 그릇[집]; […]

더 보기